통일한국/통일한국 스토리텔링 썸네일형 리스트형 <통일시대를 살다>...서문 이 책에 담겨 있는 3개의 키워드는 ‘복음·민족·역사’다. ‘복음·민족·역사’는 1990년대 초 중반 캠퍼스선교단체 연합모임인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개최하던 청년대학생을 위한 통일집회의 이름이었다. 1993년 10월 30일 토요일 오후 스무 살의 청년이었던 본 저자는 당시 같이 성경공부를 하던 예수제자운동(JDM)동아리 친구들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열렸던 ‘복음·민족·역사’ 집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임진각 너머북녘 땅을 향해 나아가라’는 강한 부르심을 체험했다. 그날 이후 북한과 통일 문제는 내 삶의 핵심 가치가 되었다. 북한과 북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뉴스에 북한 소식이 나오면 주의 깊게 들었다. 좋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 함께 공부할.. 더보기 “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생님이 묻는다.“얼음이 녹으면 뭐가 될까요?”한 아이가 대답한다. “얼음물요.”또 다른 아이가 대답한다. “그냥 물요.”늘 확산적인 사고력을 보이는 아이는 이렇게 대답한다.“봄이 와요” 이걸 통일쪽에 응용해 보면...“통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북한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 붕괴해야 합니다.““주변 4강 국가와 협력해야 합니다...” “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야 합니다.” 더보기 해방 이후 북한 기독교 1945년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지역에서는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핍박에 열을 올렸다. 기독교와 공산주의 세력과의 싸움은 일제하인 1920년대에 한반도에서 생격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제국주의 앞잡이, 민중의 아편, 미신 등이라 비판했고, 기독교는 공산주의가 가진 무신론과 유물론 사상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었다. 1945년 겨울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만식 장로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체포 구금 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재산을 몰수 당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핍박 당하며 순교자의 길을 가던지 아니면 신앙과 삶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가던지 또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지 선택해야 했다. .. 더보기 평양 문배주 북한 평양에는 문배주라 불리는 전통주가 있었다. 원래 문배주는 평안도산 찰수수와 메조로 술밥을 만들고 대동강변의 석회암층에서 솟아나는 ‘주암산 샘물’로 빚어 평양 감흥리의 고령토로 구워낸 술병에 담아 마셔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문배주’란 이름은 마시면 입속에 도는 향이 은은한 문배 꽃내음과 비슷하다는 데서 얻었다. 문배주는 평양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6.25 전쟁중 월남한 문배주 제조 기술자 이경찬씨가 남한에서 그 맥을 계속 이어나가 지금은 후손이 4대째 문배주를 만들고 있다. 평양 근교에서 집안 대대로 문배주를 만들어오던 전통은 4대째 이어져 온다. 이경찬씨가 빚어온 문배주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6호로 지정됐다. 하지만 상품화된 것은 1990년에 이르러서였다. 1990년 남북고위급회담이 .. 더보기 세월은 흘렀지만... 1980년대 우리나라 어느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는 뉴스 원고에 있는 ‘사회정의에 입각한’을 그만 ‘사회주의에 입각한’으로 잘못 읽고 말았다. 한번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는 법. 아나운서는 이내 등골이 오싹해졌고 앞으로 닥칠지도 모를 일에 대한 두려움에 다음 뉴스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뉴스 후반부에 아나운서는 방금 전 했던 사회주의 발언(?)을 정정하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이념적 분단을 겪고 전쟁을 치른 한국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는 써서는 안 될 금기의 용어였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분명한 서로 다른 개념의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공산주의=빨갱이=인간 말종, 민족의 원흉’이란 등식은 지난 세월 우리의 모든 가치와 .. 더보기 평화경제 1.0 - '소떼'와 '쉬리' 1997년 겨울 온 나라가 얼어 붙었다. 사상 유례 없는 자연적인 겨울 한파가 온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잘 굴러 갈 것 같은 한국의 경제가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지탱 할 수 없어 국제 사회에 손을 내민 것이었다. 동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외환위기 우리 국민들은 IMF 사태로 이일을 기억한다. 외환위기는 단지 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금융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혈맥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피가 멈추거나 잘못 흐르면 큰 문제가 나듯 온 나라가 기존의 질서와 방법과는 다른 아주 새로운 길로 가게 되었다. 그해 겨울을 시작으로 구조조정, 공적자금, 부채비율, 흑자도산, 실업, 마이너스 성장, 양복입고 등산가는 40대 남성들, 학비가 없어 휴학하는 대학생등 신문 지상에는 온통 암울만 소식만 가득했다. 이런 와중에.. 더보기 4월 15일이 담고 있는 3가지 의미 - ‘태양절’이 아닌 ‘타이타닉’과 ‘다빈치’를 생각하다. 1. 1912년 4월 15일은 북한이 자랑하는 ‘태양절’ 연인원 10만명이 동원되는 북한의 군중 마스게임 에는 통일 염원을 담은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가 나온다. 별생각 없이 들으면 그냥 통일을 바라는 노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핏줄도 하나 하나 이 땅도 하나, 둘이 되면 못 살 하나“ 그런데 노래 마지막 부분에 좀 거시기한 표현이 나온다.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 이 노래가 남한에서 불려 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태양”이란 표현 때문이다. 여기서 “태양”은 그냥 자연의 태양이 아닌 “민족의 태양 김일성”을 가리킨다. 북한은 김일성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始祖)이며 민족의 태양”으로 깎듯이 모신다. 그래서 김일성이 태어난 4월 15일을 ‘태양절’로 기.. 더보기 4월15일이 담고 있는 의미...강성대국이 아니라 타이태닉과 다빈치를 생각하라 강성대국이 아니라 타이태닉과 다빈치를 생각하라... 한은 2012년 까지 강성대국 진입을 선포한다... 왜 2012년 인가...그건 김일성 생일 100주년 이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 사이에 태어났다... 2012년 4월 15일은 북한이 그렇게 갈급해 하던 강성대국의 원년인 김일성 100주년이다... 근데 이날은 또 하나의 100주년이 있다.... 타이태닉 100주년이다.... 당시 세계 최대, 최고의 배...하지만 첫 항해에서 대서양에서 침몰 사회주의는 실패로 끝난 세계 최대의 실험,,,하지만 1989년 빙산의 충격을 받고 도미노 침몰...동구권을 거쳐...중국은 변형 되었고 배의 꼬리에 해당되는 극동지역의 북한만 남겨 놓고 있다... 북한의 침몰을.. 더보기 좌정우정(左情右情) - 좌파든 우파든 북한 주민들에게 초코파이(情)만 전해주면 된다. 흑묘백묘(黑猫白猫) 언론 매체에 중국의 경제개혁을 빗댄 표현으로 흑묘백묘(黑猫白猫)란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흑묘백묘는 '부관흑묘백묘(不管黑猫白猫), 착도로서(捉到老鼠) 취시호묘(就是好猫)'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묘(猫)는 한자로 고양이 묘(猫)자다. 즉 검은(黑) 고양이든 흰(白)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흑묘백묘론은 오늘날의 중국을 있게 한 1등 공신인 덩샤오핑(鄧小平 1904~997))이 본격적으로 주창했다. 덩샤오핑은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문화혁명으로 피폐되어 있던 중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일으키며 개혁·개방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덩샤오핑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흑묘백묘다. 즉 고양이 빛깔이 어떻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더보기 사선 넘나든 남북大使 '동반 탈출' (연합뉴스 2011. 11. 22) 어제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 하나가 인상에 남는다... 내용인즉 1991년 소말리아 내전 사태당시 ...이념을 떠나 남북 외교관들이 함께 위급한 상황을 탈출한 이야기다. 현재 구상중인 책에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로 넣어야겠다.. =============================== 연합뉴스 2011. 11. 22에서 발췌... 사선 넘나든 남북大使 '동반 탈출' 생지옥' 소말리아 내전현장서 12일간 '동거' 극적체험 강신성 前대사 회고..총알 뚫고 케냐로의 '대탈출' 성공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정묘정 기자 =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현실의 제 위치로 돌아가야지요." "그럼 잘 들 가십시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오겠지요." 예고된 '숙명의 이별'이었지만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애..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