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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출근 마지막 날 (2024. 4. 29) 재단 출근 마지막 날.퇴근하기 전,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리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몇 년이 지난 후, 내가 다시 이 사무실을 방문하게 된다면그 자리에 여전히 앉아 있는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아니, 이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 있을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괜한 남 걱정일지도 모르지만,그동안 직원들의 사직서를 받을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지금은 일이 재미있고, 옆에 함께하는 사람들도 있다.무엇보다도 이 일이 현실적인 직업이기도 하다.하지만 몇 년 후에도 이 상황이 지속될 수 있을까?그동안 나는 사람들이 계속 일할 수 있는 구조,즉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 왔다.하지만 역부족이었다.주변에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았고,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그래.. 더보기
Underwood's typewriter One of the early Protestant missionaries to Korea, Horace Underwood, left behind a lot more written records than most other missionaries.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this, but one important reason is that he was really good at using a typewriter. Underwood's family had been involved in the typewriter business since the 1870s, which was a cutting-edge industry at the time. In 1896, they even la.. 더보기
언더우드 선교사의 타자기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사 중 언더우드는 다른 선교사들에 비해 유난히 많은 기록을 남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타자기 사용에 능했다는 점이다. 언더우드 집안은 1870년대부터 당시 첨단 산업이었던 타자기 관련 사업에 참여했고, 1896년에는 세계적인 타자기 브랜드 중 하나인 ‘언더우드(Underwood)’를 론칭했다. 이 브랜드는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예전에 중국 상하이에 갔을 때, 중국의 국부인 쑨원의 부인 쑹칭링(宋庆龄, Soong Ching-ling)이 사용한 타자기 브랜드가 ‘언더우드’였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타자기 제조와 관련된 가문 출신이었던 언더우드는 자연스럽게 타자기 사용에 익숙했고, 이를 선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자료를 보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