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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 선교사의 타자기

 

한국 개신교 초기 선교사 중 언더우드는 다른 선교사들에 비해 유난히 많은 기록을 남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타자기 사용에 능했다는 점이다.

 

언더우드 집안은 1870년대부터 당시 첨단 산업이었던 타자기 관련 사업에 참여했고, 1896년에는 세계적인 타자기 브랜드 중 하나인 ‘언더우드(Underwood)’를 론칭했다. 이 브랜드는 이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예전에 중국 상하이에 갔을 때, 중국의 국부인 쑨원의 부인 쑹칭링(宋庆龄, Soong Ching-ling)이 사용한 타자기 브랜드가 ‘언더우드’였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타자기 제조와 관련된 가문 출신이었던 언더우드는 자연스럽게 타자기 사용에 익숙했고, 이를 선교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것이다.

 

자료를 보니, 미국에서 타자기가 상업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870년대였고, 관공서나 은행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라고 한다. 일반 사무실이나 개인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부터라고 한다.

언더우드 집안이 타자기 생산에 참여한 시점이 1870년대고, 자체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 1896년이니, 한마디로 언더우드 타자기는 시대를 앞서간 제품이자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도 든다. 타자기로 벌어들인 수익 중 상당 부분이 조선 선교 자금으로 쓰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언더우드가 타자기에 익숙했던 덕분에 조선 선교에 관한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기술 혁신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셈이다. 당시의 타자기 사용은 출판 문화의 발전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다.

 

언젠가 조선을 찾은 가톨릭과 개신교 선교사들이 가져온 서구 문물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