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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한 고려항공 로고 변경 (2024) 올해 연초부터 북한에서는 통일추구를 중지하며 통일 관련 조직 폐지, 통일은 연상케 하는 국가(國歌) 및 노래 가사 변경, 통일 이미지 삭제 등 사회 곳곳에서 통일 지우기를 하고 있습니다.며칠 전 대북전문매체인 NK뉴스에서는... 북한의 유일항공사인 ‘고려항공’에서 한반도를 연상케 하는 로고를 변경한 것을 보도 했습니다. https://v.daum.net/v/20240426065323593 하지만 국내 언론에서 크리 비중있게 보도되지 않아..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추가해 여기에 적습니다.북한의 항공사는 고려항공(Air Koryo)입니다. 1992년 이전에는 조선민항(Korean Airways)란 이름을 썼습니다. 대한항공의 영문명은 Korean Air Lines입니다. 항공사 영문.. 더보기
사회주의 속 시장, ‘장마당’ 사회주의 계획 경제인 북한에서는 학용품, 옷, 가구, 공구, 식품 등 모든 생활 필수품들을 국영상점에서만 배급을 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북한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거의 대부분 국가에서 배급해 왔기 때문에 시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공장에서 각종 물자 생산이 안되었고 국영 상점에는 물건이 없어 문을 열지 못하는 곳이 많아졌다. 그나마 문을 연 상점에서 파는 물건은 된장, 간장, 소금 등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이기 때문에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구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주민들은 '장마당' 이라고 불리는 농민시장을 통해 국가에서 정한 가격보다 80배에서 100배나 높은 가격으로 물건을 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한마디로 장마당은 북한에서 자연 발.. 더보기
통일양묘장 조선사보 (2017. 09) 2017년 9월 14일, ‘통일양묘장 기공식’이 강원도 철원에서 있었다. 이번 기공식은 이 사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모니터하는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이사장 안병훈, 이하 ‘통일과나눔재단’)과 사업 기획 및 실행을 담당하는 기후변화센터 아시아녹화기구(운영위원장 고건, 이하 ‘아시아녹화기구’), 그리고 양묘장 부지를 제공하는 강원도(강원도지사 최문순) 삼자 간의 업무를 협약하는 자리로서의 의미가 깊었다. 통일과나눔재단의 ‘2017 통일나눔펀드 지원사업’을 통해 지원하는 기관 중 아시아녹화기구는 황폐한 북한 산림에 심을 묘목을 생산하는 ‘통일양묘장’ 구축사업을 기획하여 선정되었다. 현재 북한 당국은 북한의 산림 복구 노력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대내적으로는 산림 복구를 강조하고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 더보기
북한지역에 대한 일본의 관심 19세기말 개항이후 일본 상인은 대개 몰락한 상인이나 무사층 출신으로서 돈을 벌기 위하여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영사 재판권, 수출입 상품에 대한 무관세 및 일본 화폐의 사용 등이 인정된 불평등 조약을 이용해 약탈적인 무역을 자행하였다. 일본 상인은 고리대를 이용하여 우리 농민의 토지를 헐값으로 사서 점차 농장을 확대해 갔다. 이러한 토지 약탈은 1904년 러·일 전쟁을 계기로 철도 부지와 군용지 확보라는 명목 아래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또한 열강의 이권 침탈이 본격화되면서 금광 채굴권, 철도 부설권, 삼림 채벌권 등 여러 이권이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에게 넘어갔다. 조선 정부는 열강의 이러한 경제적 침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조선이 외국에 넘긴 사업의 대부분은 오늘날의 함경도,.. 더보기
영화 <신이 보낸 사람> (2014) -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 희망 북한의 기독교 해방이 되던 1945년. 한반도에는 35만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신자의 60%인 20만명이 지금의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남한과 북한의 인구 비례가 2:1 정도 되었는데 확률적으로 전체 기독교인의 30%선 이어야 할 북한 지역의 신도수가 전체의 60% 넘었다는 것은 그 만큼 기독교가 북한 지역에 깊은 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1880년대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이전부터 조선 정부의 감시를 피해 평안도와 함경도 국경 부근에는 이미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신자가 된 이들이 있을 정도였고 1907년에는 한국 기독교 부흥의 기원인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평양 숭실학교, 정주 오산학교, 함흥 영생학교 등 많은 기독교 정신을 바.. 더보기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2003) - 북한 군인들의 남한표류기 남쪽으로 표류한 사람들 서해안 연평도는 북한 해안선으로부터 거리가 12㎞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북한 주민이 탈북하거나 조류에 떠내려 온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2월 5일 북한 주민 31명이 어선을 타고 서해 연평도 인근 우리 해상으로 넘어왔다. 이를 발견한 우리 해군은 즉시 출동해 조사한뒤 우리쪽으로 배를 예인했다. 황해도 남포에서 출발한 북한 어선에는 남자 11명, 여자 20명이 타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넘어온 이배에 타고 있던 31명중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제외한 나머지 27명은 다시 북으로 송환 되었다. 이 같은 북한 주민의 월남은 서해와 동해상에서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며 북한송환 혹은 남한 잔류를 선택하게 해주고 있다. 육안으로.. 더보기
영화 <적과의 동침> (2011) - 전쟁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들과의 동거 그 때 그 시절 이만희 감독의 영화 (1963)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반공영화이다. 제작된 지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이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만희 감독은 후속 작품인 (1964)의 몇장면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4조 1항 위반으로 구속 된다. 1964년 당시 검찰은 영화 가 “감상주의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군을 무기력한 군대로 그린 반면, 북한의 인민군을 찬양하고 미군에게 학대받는 양공주들의 비참상을 가장 묘사, 미군철수 등 외세배격 풍조를 고취했다”며 이만희 감독의 반공법 위반 사유를 밝혔다. 검찰이 문제를 삼은 영화 속 장면은 이렇다. 북한군에 잡힌 여자포로를 겁탈하려는 중공군을 북한군 장교가 막아내는 장면에서 한 여자포로가 그 북한군 장교에 대해 “참 멋진 남자야... 더보기
영화 <태풍>(2005) - 버림받은 자의 분노 아름답지 못한 핵(核) 무기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시(詩) '진달래 꽃' 한 구절이다. 김소월은 서른 두 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산유화' 등 향토색 넘치는 글의 향기를 남겼다. 소월에게 고향 평안북도 영변의 뛰어난 풍광은 아름다운 시를 읊는 훌륭한 터전이었다. 하지만 소월이 그토록 아름다워 했던 영변은 지난 20여년간 국제 사회를 긴장 시킨 ‘북한 핵(核)’ 문제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소련과의 협정을 통해 원자력 기술연구를 해왔으며, 1987년부터 평안북도 영변에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등 원자로 건설과 농축우라늄 개발을 본격화해왔다. 그러다 1.. 더보기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 (2010) - 축구로 뭉친 그들만의 리그 서울과 평양을 오고간 ‘경평(京平)축구’ 우리나라에 축구가 들어온 것은 1882년 즈음이다. 당시 인천 제물포항에 입항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 승무원들이 배에서 내려와 공을 찬 것이 한국 축구의 첫 시작이다. 본격적인 축구 보급에는 선교사들의 공이 컸다. 그들의 도움으로 전국의 마을과 청년단체 등 친목회 단위에서 축구가 퍼져 나갔다. 축구가 민족적 스포츠로 관심과 열기가 높아진 계기는 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전이 열리면서 부터다. 1929년 10월 조선일보 주최로 서울 휘문중학교(현대 계동사옥 자리)에서 경평축구 1회 대회가 열렸고, 2회 대회는 1930년 경성운동장에서 사흘간 열렸다. 평양 팀은 체력으로 밀어붙이기에 강했고,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선수들이 주축인 서울 팀은 전술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더보기
북한도 한때 남한에게 전기를 공급해 주었다 (?) 남(南)과 북(北)에 체제의 성격이 다른 독립적인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남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남쪽으로의 전기(電氣) 공급을 중단 시켜 버렸다. 일제시대 대단위 공업지대가 함경도 지역 등에 조성 되면서 공단에 공급될 전기 에너지 생산 시설도 원할 한 수급을 위해 지금의 북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 되었다. 해방이후 국토는 분단 되었지만 남과 북은 남한이 북한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공급해 주고 북한은 남한에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산업의 동맥’인 전기에너지를 공유했었다. 하지만 북한의 일방적인 단전(斷電) 조치 이후, 전체 전기에너지 수요의 70% 가량을 북에 의지하고 있던 남한은 전기 부족으로 큰 혼란을 겪었으며 남북은 경제공동체의 마지막 끈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