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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 (2010) - 축구로 뭉친 그들만의 리그 서울과 평양을 오고간 ‘경평(京平)축구’ 우리나라에 축구가 들어온 것은 1882년 즈음이다. 당시 인천 제물포항에 입항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 승무원들이 배에서 내려와 공을 찬 것이 한국 축구의 첫 시작이다. 본격적인 축구 보급에는 선교사들의 공이 컸다. 그들의 도움으로 전국의 마을과 청년단체 등 친목회 단위에서 축구가 퍼져 나갔다. 축구가 민족적 스포츠로 관심과 열기가 높아진 계기는 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전이 열리면서 부터다. 1929년 10월 조선일보 주최로 서울 휘문중학교(현대 계동사옥 자리)에서 경평축구 1회 대회가 열렸고, 2회 대회는 1930년 경성운동장에서 사흘간 열렸다. 평양 팀은 체력으로 밀어붙이기에 강했고,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선수들이 주축인 서울 팀은 전술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더보기
북한도 한때 남한에게 전기를 공급해 주었다 (?) 남(南)과 북(北)에 체제의 성격이 다른 독립적인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남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남쪽으로의 전기(電氣) 공급을 중단 시켜 버렸다. 일제시대 대단위 공업지대가 함경도 지역 등에 조성 되면서 공단에 공급될 전기 에너지 생산 시설도 원할 한 수급을 위해 지금의 북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 되었다. 해방이후 국토는 분단 되었지만 남과 북은 남한이 북한에 필요한 각종 물자를 공급해 주고 북한은 남한에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물물교환의 형식으로 ‘산업의 동맥’인 전기에너지를 공유했었다. 하지만 북한의 일방적인 단전(斷電) 조치 이후, 전체 전기에너지 수요의 70% 가량을 북에 의지하고 있던 남한은 전기 부족으로 큰 혼란을 겪었으며 남북은 경제공동체의 마지막 끈인.. 더보기
'초코파이'와 '한류(韓流)' 그리고 '혁명' 나는 누구일까요? 출생년도 : 1974년 몸무게 : 35g 구성 : 밀가루, 백설탕, 물엿, 계란, 코코아 분말 등 뿜어내는 열량 : 155 kcal (밥 한공기는 300 kcal) 나의 첫 느낌 : 달콤함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 군인 아저씨 나와 물물 거래를 하고 싶다면 : 헌혈 한번 하세요.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 정(情) 이쯤 되면 답이 생각날 것이다. 바로 국민간식 ‘초코파이’다. 초코파이는 유치원에서 경로당까지 모든 연령대의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다과회, 등산, 체육대회의 간식으로 거의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또한 식사 시간을 놓쳤을 때 초코파이와 우유한잔은 식사대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우리 국민 누구나 초코파이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초코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