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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태풍>(2005) - 버림받은 자의 분노





아름답지 못한 핵(核) 무기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시(詩) '진달래 꽃' 한 구절이다. 김소월은 서른 두 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산유화' 등 향토색 넘치는 글의 향기를 남겼다. 소월에게 고향 평안북도 영변의 뛰어난 풍광은 아름다운 시를 읊는 훌륭한 터전이었다.


하지만 소월이 그토록 아름다워 했던 영변은 지난 20여년간 국제 사회를 긴장 시킨 ‘북한 핵(核)’ 문제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소련과의 협정을 통해 원자력 기술연구를 해왔으며, 1987년부터 평안북도 영변에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등 원자로 건설과 농축우라늄 개발을 본격화해왔다. 그러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이후, 북한에 대한 핵의혹 제기와 북한의 반발, 핵확산금지조약 NPT탈퇴 등으로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적으로 대두되었다.


핵문제의 시작은 8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물리학의 진보에 따라 1930년대에 핵분열의 원리가 발견되어 그 에너지의 이용가능성 예견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주요 교전국에서는 핵에너지의 이용에 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였다. 미국은 아인슈타인 박사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세계최초로 핵폭탄을 개발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영국 등에서도 경쟁적으로 핵실험에 성공하면서 국제사회는 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담는 그릇이 필요하게 되었고 원자력을 평화적 이용하고 관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원자력 발전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를 얻기에 많은 국가들이 이에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편리한 원자력은 무기로 변형 되었을 때 이전의 재래식 무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대량 살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기존 패권국가에 대항하는 세력들은 내심 핵을 보유하고 싶어 한다. 핵만 갖고 있으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대내외적으로 수세에 몰린 북한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내세울 수 있는 카드는 ‘핵’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 이해관계자들을 피곤하게 하며 ‘핵’ 있음을 자랑하고 ‘핵’을 보유하고 있는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 요구를 안 들어 주면 당신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하면서 말이다.



영화 <태풍>


곽경택 감독의 영화 <태풍>은 남북한 모두에서 버림받고 분노의 화신이 된 탈북자가 핵무기를 통해 복수를 꿈꾸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타이완 지룽항 북동쪽 220km 지점 해상에서 운항 중이던 한 화물선박이 해적에게 탈취당하는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은 이 배에 핵 미사일 위성유도장치인 ‘리시버키트’가 실려 있었고 선박을 탈취한 해적이 북한 출신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비밀요원인 엘리트 해군장교 강세종 대위를 태국 방콕에 급파한다. 강세종은 해적의 우두머리인 ‘씬’의 본명이 최명신 이라는 사실과 일가족과 탈북후 망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한중관계를 우려한 한국정부가 이를 거부했고 최명신과 누나 최명주(이미연)을 제외한 일가족 전부가 처참하게 희생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탈북자 출신 해적 ‘씬’은 헤어진 누나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을 버린 한반도를 ‘핵’으로 날려 버려야겠다는 분노에 가득 차 있다.


씬은 이러한 계획의 첫 단계로 핵 미사일 위성유도 장치인 ‘리시버키트’를 손에 넣고 처절한 복수의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 한편 강세종은 방콕 등지에서 씬의 흔적을 탐문하다 그가 과거 자신의 가족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은 당시 한국의 외교특사를 살해하기 위해에 국내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인을 보호하려는 강세종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씬은 자신이 계획했던 일을 마치고 유유히 한국을 빠져나간다. 이 과정에서 강세종과 씬은 처음으로 마주치게 된다. 씬을 놓친 강세종은 씬이 누나 최명주를 찾으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최명주가 있는 러시아 하바로프스크로 간다. 강세종은 사창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최명주를 만나 그들의 기구한 가족사를 더욱 자세히 알게 되면셔 탈북자 해적 씬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


강세종은 사창가를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로부터 최명주을 빼내고 최명주와 씬의 만남을 주선한다. 하지만 미국과 외교 마찰을 우려한 국정원은 강세종에게 씬과 그의 누나 최명주를 처잘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이를 눈치 챈 씬은 누나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탈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강세종은 씬을 제거할 수 있었음에도 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해적기지로 돌아간 씬은 러시아에서 구입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의 핵폐기물을 한반도에 뿌리려는 계획을 준비한다. 씬의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한 한국 정부는 핵폐기물로 무슨 음모를 꾸밀지 의아해 하지만 씬은 이미 태풍속에서 풍선에 매단 핵 폐기물을 날리려는 대담한 일을 꾸미고 있었다.


때 마침 한반도에는 각기 다른 방향에서 두 개의 태풍이 불어오고 있었고 곧 두 태풍이 만나 사상 초유의 초대형 태풍이 형성될 거라는 일기예보가 내려지게 된다. 뒤늦게 씬의 핵풍선 계획을 인지한 한국 정부는 씬의 배를 해상에서 저지하려 한다. 미국 정부 역시 씬의 배 를 침몰 시키기 위해 잠수함을 발진 시킨다. 


씬을 막기위한 공식 작전에서 배제된 강세종은 자신의 해군사관학교 동기들을 모아 작전지시에 항명하는 형식으로 헬기를 타고 씬의 배로 향하는 무모한 일을 벌인다. 씬의 배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씬의 누나 최명주가 사망하게 되고 씬은 핵풍선 일부를 날리긴 하지만 대다수의 풍선은 강세종과 그 일행들에 의해 배 안에서 불태워지고 폭파된다. 어떻게 해서든 실행하려는 씬과 이를 막으려는 강세종 사이에는 마지막 사투가 벌어지고 되고 결국 씬은 자결하며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작전을 마치고 귀국한 강세종은 씬이 풍선만 날렸을 뿐 의도적으로 터지지 않게 조작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씬이 복수를 포기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풍선이 자신의 분노와 한을 담은 것이 아닌 자신을 기억해 달하는 의미가 담긴 풍선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핵(核)’에 담겨 있는 ‘행간(行間)’ 읽어라.


글에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아니하나 그 글을 통하여 나타내려고 하는 숨은 뜻을 비유적으로 이르러 ‘행간(行間)’을 읽는다고 한다. ‘북한 핵’ 문제가 갖고 있는 ‘행간(行間)’은 두려움이다. 체제 위기의 두려움을 느낀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것은 이를 통해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 두려움을 주기 위해서다. 만약 우리가 북한 핵 문제에 두려움을 느끼고 북한에 대해 극도로 분노한 감정을 표출하거나 적대적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북한이 만들어 놓은 두려움의 ‘프레임웍 framework’ 에 말려드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북한 핵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해 지는 것이 북한을 오히려 두렵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난 2월 12일 북한 3차 핵실험이 있던 날. 한국의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는 ‘북한 핵실험’이 아니라 ‘이니스프리 화장품’ 할인행사였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 들은 ‘안보의식부재’라며 성토했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가장 당황한 곳은 다름 아닌 북한 지도부였을 것이다. 천문학적 금액을 들여 핵 실험을 하며 위협을 가했지만 정작 일개 화장품 브랜드의 할인 행사보다도 못한 인기(?)를 누렸으니 말이다. 물론 북한에 도발에 대비해서는 군과 정부를 중심으로 철통같은 안보태세를 지녀야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위기의 조짐이 보일 때 정부를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안보태세는 일사분란하게 사회가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이 통제 되는 전체주의적인 ‘병영국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변에서 시작된 북한 핵에 대한 두려움의 프레임웍이 아니라 옛날 김소월의 시에 나타난 영변이 가진 아름다움의 가치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 마음속에는 봄이 오면 진홍빛 진달래가 물들여진 영변 약산과 그 속에서 뛰어 노는 어린이들의 해 맑은 영혼이 늘 새겨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 가운데는 영화 <태풍>속의 주인공 최명신과 최명주 남매의 굴곡진 인생이 아닌 웃음 가득한 평범한 일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김소월이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공포와 두려움이 아닌 일상속의 맑은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