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이만희 감독의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반공영화이다. 제작된 지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이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만희 감독은 후속 작품인 <7인의 여포로>(1964)의 몇장면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4조 1항 위반으로 구속 된다. 1964년 당시 검찰은 영화 <7인의 여포로>가 “감상주의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군을 무기력한 군대로 그린 반면, 북한의 인민군을 찬양하고 미군에게 학대받는 양공주들의 비참상을 가장 묘사, 미군철수 등 외세배격 풍조를 고취했다”며 이만희 감독의 반공법 위반 사유를 밝혔다.
검찰이 문제를 삼은 영화 속 장면은 이렇다. 북한군에 잡힌 여자포로를 겁탈하려는 중공군을 북한군 장교가 막아내는 장면에서 한 여자포로가 그 북한군 장교에 대해 “참 멋진 남자야. 여자라면 누구나 사랑을 안 하고는 못 배길 거야…”라고 독백을 했다. 검찰은 이 장면에 대해 ①‘북한군’이 ‘중공군’의 범죄를 막는다는 것, ②‘장교님의 행동은 훌륭했어요’는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고무했다고 봤다. 남녀간의 로맨틱한 감정마저도 이념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다. 아니 이념 앞에 사람에 대한 호감은 누려서는 안 될 ‘사치’에 불과 했다.
<7인의 여포로>의 이만희 감독은 한국영화인협회를 비롯한 예술계의 적극적인 구명활동 끝에 문제가 된 장면을 수정하기로 하고 가까스로 석방되기에 이른다. 당시의 영화 검열 제도는 사소한 대사 하나를 문제 삼아 반공법 위반으로 감독을 구속기소하거나 아예 제작 자체를 사전에 막을 수 있을 만큼 막강했다. 1962년 공포된 제 5차 개정헌법 18조 2항은 “공중도덕과 사회윤리를 위해서는 영화나 연예에 대한 검열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러한 검열의 기준은 마음만 먹으면 반공법, 형법, 공연법 등 다양한 실정법으로 영화검열을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제작신고와 각본 심의, 영화 완성후의 실사 심의, 상영장에서의 임검조항까지 존재해, 겹겹의 심의를 통과해야했다. 이러한 각종 규제는 영화인들의 자기검열의 족쇄로 작용했으며 권위주의 정부 시절 <7인의 여포로>를 비롯한 적지 않은 예술 작품이 ‘검열’이라는 명목 하에 예술적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적어도 1990년대 이전까지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는 감히 넘을 수 없는 ‘금단의 영역’ 이었다.
영화 <적과의 동침>
2013년 한반도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민주화된 사회 분위기 덕택에 서슬퍼런 권위주의 시절 보다 많은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특히, 분단 소재 관련 영화속 표현의 자유는 과거의 그것 보다 놀랄 만큼 진일보 해졌다. 물론 가끔 영화와 다큐멘타리를 혼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잡음이 일기는 하지만 말이다. 2011년 개봉된 박건용 감독의 영화 <적과의 동침>은 한국전쟁 당시 남침해온 인민군과 평화로운 시골마을 석정리 사람들 간에 서서히 피어나는 우정,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설희(정려원)와 옛 사연을 안고 마을을 찾은 외모와 성품이 준수한 인민군 장교 정웅(김주혁)의 애틋한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속 배경인 석정리는 경기도 평택에 있는 실제 마을 이름이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인 배세영은 할머니로부터 전쟁 당시시 자신이 살고 있던 마을을 점령한 인민군 (주로 어린 학생들)을 마을사람들이 따뜻하게 맞아줬으며 인민군들 역시 마을사람들을 가족처럼 따르며 정을 쌓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 <적과의동침> 시나리오를 써 내려갔다.
1950년 여름. 평화로운 마을 석정리는 구장 손녀 딸 설희(정려원)의 결혼식 준비로 떠들썩 하다. 마을 사람들은 설희의 할아버지이자 마을의 가장 웃어른인 구장(변희봉)댁 경사를 제 일처럼 반긴다. 설희도 화촉을 밝힐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음 설렌다. 라디오마저 잘 안 나오는 이 외진 마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긴 했으나 사람들은 무사태평이다. 하지만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오며 평화롭던 마을의 적막함은 이내 깨지고 만다.
빨갱이들은 머리에 뿔 달린 놈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석정리 사람들은 잠시 반항을 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인민군 장교 정웅(김주혁)의 눈에 들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처음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마을 사람들의 호의는 점점 살가운 인정으로 변해간다. 인민군 장교 정웅은 마을 주민을 대할 때 강압 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동을 색출해서 처형하자고 주장하는 부하에게 적개심은 반동을 만든다며 주민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말 것을 명한다. 부대원들과 주민들은 함께 먹고 생활하며 불안정 하지만 어느 정도의 인간적 유대가 생긴다.
또한 정웅은 어린 시절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다니다 만난 적 있는 설희를 남모르게 연모한다. 할 말은 기어코 하고야 마는 고집센 설희 주변을 맴도는 정웅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인민군 장교 임에도 불구하고 미제 초콜릿을 선물하는 반동(?)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이때 설희의 정혼남인 택수가 부상을 당한 채 마을에 숨어들고, 전세가 기울자 마을 사람들을 몰살하고 퇴각하라는 인민군 상부의 지시가 내려지면서, 설희와 정웅의 전쟁중에 피어난 로맨스는 서서히 비극적 결말은 향해 나아간다. 영화 분위기는 마지막에 급변한다. 방공호를 둘러싼 씁쓸하면서 역설적인 소동이 벌어진다. 미군의 공습에 대비하게 위해 주민들이 방공호를 파지만 정웅은 최대한 천천히 파라며 마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정웅은 인민군 상부에서 반동세력의 첩자노릇을 하는 주민들을 색출해 방공호에서 처형하라는 명령을 애써 늦추고 있었다. 이윽고 퇴각하던 정웅의 상관인 인민군 연대장이 마을에 도착하게 되고 정웅과 연대장의 의견이 맞서게 되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쪽과 해치우려는 쪽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정웅과 설희는 목숨을 잃는다. 마침내 석정리 마을에 미군이 들어오고 주민들은 미군 앞에서 목이 터져라 다시 만세를 부른다. 이때 인민군에게 협조하며 팔에 빨간색 완장을 둘렀던 '백씨'(김상호)는 만세를 부르며 재빨리 완장을 떼어낸다.
영화 속 등장인물 ‘백씨’와 소설 ‘꺼삐딴리’
영화 속 등장인물 중에는 변신의 귀재 '백씨'(김상호)가 있다. 백씨는 격동의 시대 한 가운데서 생존을 위해 서슴없이 변화를 거듭하는 인물이다. 일제시대 창씨 개명에 앞장서고, 기모노를 입는 등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광복이 오자 독립투사였던 것처럼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그 누구보다 목청껏 "대한독립 만세!"를 외쳐 살아남는다. 이어 공산정권이 수립된 북에 맞서 남한에서 반공정책이 강화되자 남로당원인 큰아버지를 당국에 고발하면서 "나는 어머니가 외도로 낳은 자식이라 친척이 아니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아 목숨을 부지한다. 남침한 북괴군이 자기 마을에 쳐들어오자 이번에는 자신이 '빨갱이'라고 고발한 큰아버지를 극진히 보살핀 것처럼 위장하고, 집에 김일성 사진을 거는 등 또 한 번 변신해 일신의 안전을 꾀한다. 영화 속 백씨의 모습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의 모습이다.
혼돈의 역사가 계속 되다 보면 이러한 기회주의자는 곳곳에서 출현한다. 일제말기와 해방,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예술작품들에는 이러한 기회주의 성향을 갖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한다. 1962년 <사상계>에 발표된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리’의 주인공 이인국도 영화 <적과의 동침>의 백씨와 비슷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외과 의사이면서 종합병원 원장인 이인국은 일제강점기에는 친일을 했다가 광복 후에는 소련인에게 아부를 하고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이후로는 미국인에게 접근하여 자기만의 영달을 꾀하는 카멜레온같은 기회주의자로 한국 현대사의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영화속 백씨 처럼 이인국에은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에 크게 염두를 두지 않는다. ‘꺼삐딴’은 영어의 캡틴(Captain)에 해당하는 러시아어로, 소련군이 북한에 주둔하면서 ‘까삐딴’이 우두머리 또는 최고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그 발음이 와전되어 ‘꺼삐딴’으로 통용된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꺼삐딴 리’라는 제명을 통해 주인공 이인국이 출세와 영달에 눈먼 기회주의자의 최고봉인 동시에 사회의 지도층임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 만약 영화 <적과의 동침> 후속편이 만들어 진다면 기회주의자 백씨의 어떤 모습을 보일까? 아마도 한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손에는 성조기를 들며 내가 왜 당신들의 편인지를 설명하며 새로운 권력과 민초 사이의 중재자를 자처할런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는 지난 격동의 역사 가운데 그러한 모습을 너무도 자주 보아왔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극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한편의 시(詩) 처럼
세상은 어찌보면 백씨와 이인국 같은 기회주의자 무리들이 좌지우지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역사의 발전은 현실의 장애물을 넘어 돌파하고자 하는 대의명분과 열정을 갖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 시작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날과 새로운 인생을 찾아 익숙하지 않고 끝이 안 보이는 고난의 길을 가야했다. 영화 속에서 다소 낭만적인 사고를 소유하고 있는 정웅은 백석의 시집에 "이념도 체제도 시(詩)처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날, 다시 만나요"라는 문구를 써 넣어 설희에게 전한다.
오늘날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통일은 남북한 사이에 과도한 치킨게임의 결과물이 아니라 "이념도 체제도 시처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을 꿈꾸는 이들이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 증거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통일한국을 바라보는 열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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