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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고지전> (2011) -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





2년간의 휴전회담


“1950년 6월 25일 평온했던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한국전쟁은 대부분 이렇게 기술되며 사람들의 고통어린 기억을 자극한다. 기습적인 공격을 받은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가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38선 이북으로 북진하였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1951년 1월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 하였다가 반격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51년 여름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 회담이 시작된다. 휴전 회담은 마치 긴 마라톤과 같았다. 금세 타결 될 것 같았던 휴전협정은 군사분계선의 설정, 휴전감시방법 및 그 기구의 설치, 전쟁 포로 처리 등의 문제로 밀고 당기며 2년의 시간을 보냈다. 전쟁의 당사자였던 한국은 휴전 보다는 ‘북진통일’이 정부의 공식적인 방침이었기에 휴전 회담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서’에도 유엔군, 북한군, 중공군의 회담 대표들의 서명만 있을 뿐 한국군측의 서명은 없다.


판문점에서 2년간 휴전 회담이 벌어질 동안 남북이 맞대고 있는 전선에는 회담과 무관하게 전쟁이 계속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일진일퇴를 거듭해야 했다. 당시 하늘의 제공권과 바다의 제해권은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북한 연안의 섬들도 국군이나 반공유격대가 차지하고 이를 거점으로 유격활동을 하여도 북한군과 중공군은 섬을 다시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육군에서는 우세를 점하기 어려웠다. 한반도는 산지가 많은 지형이어서 전차의 이동이 어려웠고 숨어 있는 적군을 폭격하는데도 용이하지 않았다. 화력은 유엔군과 한국군이 앞섰지만 인해 전술로 밀고 오는 중공군과 악으로 버티는 북한군의 기세가 팽팽히 맞서 쉽사리 전세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산악지대에서 대규모 전투가 아니라, 

고지를 뺏고 빼앗기는 고지전으로 이어진다. 사실 고지전은 고지 하나를 점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지 하나가 곧 반경 10~20km 를 점령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수시로 주인이 바뀐 고지전으로 인해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은 더욱 예측 불가능한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이 시기의 유명한 전투들로는 백마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이 있다. 그리고 휴전회담 기간 중 소모적인 고지 쟁탈전을 통해 남북의 젊은 병사 300만명이 희생 되었다.



영화 <고지전>


2011년 장훈 감독은 6.25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거의 다루지 않았던 ‘고지쟁탈전’을 다룬 영화 <고지전>을 제작한다. 이 영화는 고지전이 한창이던 1953년 2월부터 7월 27일 휴전때까의 치열했던 전선의 이야기를 그렸다.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AEROK)'고지에서 전사한 중대장 기철진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알이 발견된다. 상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적과의 내통과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에게 동부전선으로 가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애록고지로 향한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을 만나게 된다. 총쏘는 것 조차 힘들어 하던 유약한 학생이었던 ‘수혁’은 2년 사이에 이등병에서 중위로 특진해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가 되어 있었고, 그가 함께하는 악어중대는 명성과 달리 춥다고 북한 군복을 덧입는 모습을 보이고 갓 스무 살이 된 어린 청년이 대위로 부대를 이끄는 등 뭔가 미심쩍다. 


살아 돌아온 친구, 의심스러운 악어중대. 이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악어중대는 다시 애록고지를 탈환한다. 고지 탈환 후 은표의 눈에 비친 악어중대원들의 행동은 수상한 모습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은표는 북한군이 후퇴하며 남겨둔 북한 술과 북한군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고 이에 은표와 악어중대원들은 갈등을 빚게 된다. 이때 은표의 친구인 수혁은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하게 말해준다.



“이 고지의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을것 같냐? 아무도 모를거야. 나도 한 30번까지는 셋는데 그러다 보면 누구라도 똑 같은 생각을 했을거야. 후퇴할 때 이 많은 짐들을 다 가져가야하나. 여기 14벙커에 다 묻었어. 양말, 옷가지, 초콜렛, 담배, 군화 싹다..어차피 다시 올라올테니까...묻어 놓고 후퇴했다가 재탈환 했는데 여기 뭐가 들어있었게...‘똥’이야...모두 제정신이 아니었지..그래서 욕이란 욕은 다 쓴 편지를 묻어놨지...잠시 미쳤었나봐...제 정신이었으면 수류탄이나 부비트랩을 설치했겠지..


그런데 고지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은 어느 날 이었어...(여기에 술이 들어 있었어)...그 술은 뇌물이었어. 술이랑 그 옆에 두툼한 봉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봉투에 편지가 여러장 있었지. 인민군엔 남한에서 징용된 애들도 있고 남한에 있다가 월북해서 인민군이 된 애들도 있어. 그런 애들이 지 고향으로 편지를 부치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내가 싹다 부쳐줬어. 그 다음부터 우리는 화랑담배 같은 것 넣어 주었고 게들은 술, 성냥... 우리가 늘 성냥이 부족하거든...이 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군사기밀이라도 팔았을까봐?... 거기에 우리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은표는 혼란스러워진다. 미궁에 빠진 전임 중대장 기철진 죽음의 진실, 은밀하게 진행되는 남북 병사들의 생필품과 편지의 내통(?). 방첩대 장교이지만 전선에서 섣부른 판단을 하는 것이 힘들다. 그러는 사이 은표 역시 다른 악어중대원들처럼 은밀한 내통에 무뎌지고 그 현장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은표가 악어중대의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단독 행동을 하는 악어중대원들을 못 마땅해 하던 중대장 유재호 대위는 작전 중 자신의 명령에 불복종하는 중사 오기영(류승수)에게 사살위협을 가하고 그 순간, 수혁은 망설임 없이 중대장을 쏴 버린다. 눈 앞에서 벌어진 상관의 죽음,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은폐하는 그들과 무표정한 수혁. 순식간에 하나가 된 중대 전체에 은표는 당혹감을 느낀다. 악어중대원들에게 중대장은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자신들을 사지로 몰아 놓고 전공을 세우기에 바쁜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중공군이 몰려오는 절박한 순간 은표는 중대를 지휘하는 수혁의 행동을 눈감아준다. 탄약이 떨어져서 몰살위기에 처한 악어중대는 김수혁 중위와 신일영 대위의 지략으로 극적인 탈출을하게된다. 탈출 직후 수혁은 인민군 저격병에 의해 희생되고 얼마 안 있어 휴전 협정의 조인 소식이 전장에 전해지고 병사들은 이제 집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설레인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전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지전> 속 옥의 티


6.25 한국전쟁을 다룬 많은 영화가 그렇듯이 영화 <고지전>에도 상황 설정에 관련된 여러 옥의 티들이 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강은표가 악어 중대에 파견된 것은 전임 중대장 기철진의 의문사였다. 그것이 의문사로 여겨진 것은 기철진의 시신에서 ‘아군 지휘관용 권총탄’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총 한 자루, 탄 한 발이 아쉬운 전시였고, 어차피 쌍방에서 노획장비는 흔하게 사용되던 때였다. 노획장비 중에는 전투화도 있었다. 북한군의 전투화는 너무 조잡해 빨리 망가지는 바람에 북한군은 포로나 시체에서 노획한 미제 전투화를 선호했다. 때문에 북한군으로 변장한 김수혁이 신고 있던 미제 전투화 때문에 정체가 발각난다는 설정도 알고 보면 오류에 가깝다. 적지 않은 북한군들이 이미 국군이나 UN군의 전투화를 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고증상 가장 큰 무리수는 정전협정 발효를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최후의 고지전이다. 이 전투에서 악어 중대는 북한군이 지키고 있던 애록 고지를 공격, 처절한 백병전을 벌이다가 미군의 오폭에 휘말려들어 강은표 혼자만 남기고 모두 전사한다. 그런데 정전협정 발효되기 직전에는 그 어떤 전투도 없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조인 당시 UN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 장군은 UN군 부대에 협정이 조인된 27일 오전 10시부터 발효까지 12시간 동안은 군의 작전을 해군과 공군의 어떤 계획된 작전을 제외하고는 진지의 유지와 부대의 보존상태를 확인하는데 국한시킬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또한 6.25 한국전쟁 후반기의 고지전이 처절한 백병전으로 마무리된 경우는 적었다. 공산군이나 UN군이나 부대가 전멸할 위기에 놓이면 무리하게 백병전을 벌이지 않고 빨리 후퇴해 전열을 재정비, 고지 재탈환을 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들이 함께 부른 <전선야곡>


영화 <고지전>이 고증에 의한 리얼리티 구현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담겨 있는 시대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동안 한국전쟁 관련 영화들은 주인공을 영웅주의로 그리면 반공으로, 영웅주의를 지우면 좌파로, 이도 저도 아니면 역사에 대한 회피로 비난 받아왔다.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감정의 소비없이 전쟁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헤쳤다. 이 영화에는 눈물을 자아내는 희생의 숭고함이나 승리의 기쁨 혹은 패배의 절망도 없다. 그저 살고 싶은 악어중대원들의 ‘현실의 갈망’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주는 ‘전쟁’과 ‘생존’에 관한 메시지이며 그동안 6.25 한국전쟁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고지전>속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남북의 병사들은 시체로 가득한 ‘애록고지’에서 반드시 서로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서글픈 확신을 갖고 전쟁을 이어왔다. 이들은 전쟁의 마지막 순간 안개가 자욱한 애록고지에서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시대를 담은 노래 <전선야곡>을 함께 불렀다. 안개가 거친 후 이들은 살기위해 다시 총을 들었다. 단지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 순간이 지나면 마침내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전선야곡>


유호 작사/박시춘 작곡 /신세영 노래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아~~ 그 목소리 그리워


들려오는 총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길속에 달려간 내고향 내집에는

정안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어머님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오

아~~ 아~~ 쓸어안고 싶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