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표류한 사람들
서해안 연평도는 북한 해안선으로부터 거리가 12㎞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북한 주민이 탈북하거나 조류에 떠내려 온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2월 5일 북한 주민 31명이 어선을 타고 서해 연평도 인근 우리 해상으로 넘어왔다. 이를 발견한 우리 해군은 즉시 출동해 조사한뒤 우리쪽으로 배를 예인했다. 황해도 남포에서 출발한 북한 어선에는 남자 11명, 여자 20명이 타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넘어온 이배에 타고 있던 31명중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제외한 나머지 27명은 다시 북으로 송환 되었다. 이 같은 북한 주민의 월남은 서해와 동해상에서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며 북한송환 혹은 남한 잔류를 선택하게 해주고 있다.
육안으로 경계선을 확인할 수 있는 바다를 통해 북한에서 벗어난 이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화제를 불러 오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87년 김만철씨 일가의 탈북 사건이다. 11살 어린이부터 68세 노인까지 총 11명이었던 김만철씨 일가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기위해 1987년 1월 14일 북한 청진항을 출발했다. 이들은 일본과 대만을 거쳐 남한에 왔다. 남한에 도착 했을 때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영웅이 따로 없었다. 김만철 일가에게는 살기 위한 투쟁 이었지만 남한 사회에서는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 할 수 있는 한편의 귀순드라마였다. 이후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말은 북한에 대한 남한의 비교우위를 나타내는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북한에서 남쪽으로 표류한 사람들에게 한국은 참 낯선 곳이다. 그래서 그 낯섦은 참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안진우 감독의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이는 의도하지 않게 남한으로 온 두 북한 병사의 표류기를 그렸다. 그리고 그 낯섦을 코미디의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
“고죠 술 몇잔에 헤까닥 하면서 어떻게 조국 통일 하겠다는 건지...” (림동해)
북한 강원도 동해안에 위치한 조선 인민군 해군 제 13전대 매봉산 기지. 이곳에는 과묵한 엘리트 해군장교 최백두 함장 (정준호)와 자본주의 사회를 동경하는 말년 사병 림동해(공형진)이 있다. 최백두와 림동해는 바다로 낚시하러 나갔다가 기분에 술한잔을 걸치게 된다. 살랑 살랑 부는 바닷바람에 두 사람은 살며시 잠이 든다. 하지만 이내 풍랑이 불고 백두와 동해는 정처 없이 표류하고 만다.
“우선 지형정찰을 한다. 가능한한 공화국 말을 피하고 보급 투쟁으로 식량을 확보하라.” (남한으로 표류한 후 최백두가 림동해에게)
정신을 차려보니 이들이 도착한 곳은 여름철 피서 인파가 가득한 남한 동해안의 어느 해수욕장이다. 비키니 입은 아가씨들이 활보하는 해수욕장의 광경에 놀란 이들을 보고 놀라움을 표시하것도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북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벡두와 동해는 좌충우돌 하며 어색한 행동을 하지만 오히려 조선족 연변 총각으로 무시당한다. 남한 생활이 하루 이틀 계속 되면서 투철한 혁명정신으로 무장된 백두 보다 평소 자본주의 사회를 동경해온 동해의 적응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동해의 상관인 백두는 이런 동해의 생각과 습관을 모방해 나간다.
“위에서 왔수다.” (림동해)
고민 끝에 자수를 결심한 백두와 동해는 파출소를 찾아간다. ‘위’에서 왔다고 고백하니 파출소에서는 경찰서장이 보낸 형사들 인줄 알고 가출한 경찰서장 딸인 고3 소녀 한나라(류현경)를 인계해준다. 나라와 같이 있게 된 백두와 동해는 이내 나라를 찾는 두형사 (박철, 박상욱)에게 쫒기게 되고 여러 차례 위기를 모면하게 되면서 이들은 가까워진다. 이때 해수욕장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리고 1등 수상자에게는 금강산 여행권 상품으로 주어진다는 공고가 붙는다. 백두와 동해는 나름 합법적(?)으로 북으로 돌아 갈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연습을 한다. 결과는 예선탈락. 백두와 동해는 실망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실체를 알게 된 나라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오히려 격려하며 북으로 돌아 갈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다. 현실적으로 표현하면 나라의 행동은 당연히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이다. 하지만 이는 영화상의 설정일 뿐이다.
“나라야 우리 다음에 만나면 친구하는거야” (최백두)
이윽고 탈출용 뗏목이 만들어 지고 백두와 동해, 그리고 나라는 눈물을 머금고 헤어진다. 동해와 백두는 과연 북한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영화는 안타깝게도(?) 두 북한 병사가 아열대기후의 어느 섬에 다시 표류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곳이 괌일지, 사이판일지 아님 그들의 가장 싫어하는 나라의 섬인 ‘하와이’일지도 모를 그런 섬에 말이다. 과연 그곳에서도 동해와 백두는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 필사의 탈출을 하려 할까? 아니면 이국적인 자연과 여유로운 원주민이 주는 삶의 편안함에 푹 빠지게 될까? 답은 혁명 의식이 투철했던 ‘최백두’의 의지에 달려있는지 모르겠다.
‘북한’이라는 웃음의 코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 낯선 남한사회에 들어온 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코미디적인 상황 표현했다. 남한의 사람들과 문화에 반응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은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어떻게 보면 북한과 북한 사람들을 희화화 시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주변의 북한에 관련된 소재들은 대부분 부정적 혹은 희화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8년 KBS의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개콘)’에서 북한을 소재로한 코너인 ‘대포동 예술극단’이다. ‘대포동 예술극단’은 과거 ‘개콘’에서 인기를 누렸던 코너나 캐릭터를 다시 한 번 조명해보며 북한을 패러디했다. 이 방송에 대해 “대포동 예술극단 너무 재미있어요. 북한 실상에 대해 적절히 풍자한 것 같아요”라는 평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북한 모습을 왜곡되게 그리는 것 같아 얼굴이 좀 찌뿌려지네요”, “북한의 부정적인 모습만 집중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라는 평도 있었다.
사실 코미디 소재를 제한하거나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코미디에는 풍자의 정신이 필요하다. 당연히 권력도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독재 권력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지나친 희화화가 미칠 부정적 영향이다. 분단 소재들을 다룬 영화들을 보면 유독 북한 인물들 이름에 ‘리’씨와 ‘림’씨가 많이 나온다. <간첩 리철진>의 주인공 리철진이 그렇고 <이중간첩>의 림병호,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림동해, <베를린>의 리학수와 련정희, <동창생>의 리명훈 등 각 성씨가 차지하는 인구 비례에 비해 많다. 왜 그럴까? 같은 한국어를 쓰지만 남한은 두음법칙을 사용하고 북한은 그렇지 않다. 자연스럽게 성씨에서 남한의 ‘이(李)’는 북한의 ‘리’가 되고 ‘임(林)’은 ‘림’이 된다. 이러한 두음법칙이 가져다주는 차이점을 북한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한 캐릭터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때로는 영화를 넘어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표현 할때도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극우정치 사이트는 ‘일베’에서는 정치인 이석기, 이정희, 임수경 등을 두고 ‘리석기’, ‘리정희’, ‘림수경’으로 표현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이 정치적 성향을 두고 북한과 정서적으로 통하는 점이 있으니 이름도 이렇게 부르는 거다. 솔직히 남한에서도 자신의 성에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는 이들도 있는데 말이다. 대표적으로 ‘류(柳)’씨가 그렇다. 이씨나 임씨중에서도 두음법칙을 사용하지 않는 이들도 제법있다. 두음법칙을 사용하고 안하고가 무슨 옳고 그름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통해 상대방을 이념적으로 덧칠 하는데 있다. 사실 ‘북한’이란 소재는 이질적인 것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 북한 사람, 그리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과 교감을 갖고자 하는 이들에게 색깔이 입히고 상처를 줄수 있는 위험적인 요소도 함께 존재한다.
소문만복래 (笑門萬福來) 하여 '웃으면 복이 들어온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상대방 배려하지 않는 웃음을 그저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정도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 북한을 소재로한 코미디가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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