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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신이 보낸 사람> (2014) -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 희망



북한의 기독교


해방이 되던 1945년. 한반도에는 35만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신자의 60%인 20만명이 지금의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남한과 북한의 인구 비례가 2:1 정도 되었는데 확률적으로 전체 기독교인의 30%선 이어야 할 북한 지역의 신도수가 전체의 60% 넘었다는 것은 그 만큼 기독교가 북한 지역에 깊은 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1880년대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이전부터 조선 정부의 감시를 피해 평안도와 함경도 국경 부근에는 이미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신자가 된 이들이 있을 정도였고 1907년에는 한국 기독교 부흥의 기원인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평양 숭실학교, 정주 오산학교, 함흥 영생학교 등 많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학교가 세워지며 민족지도자를 양성했다.


해방이후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경계했던 대상이 바로 기독교인들이었다. 한반도 북부의 중심도시였던 평양은 일제시대부터 형성되어 왔던 기독교 민족주의 세력의 본토와도 같았다. 사회지도자들과 지역 엘리트들 중 기독교인의 비율이 높았을 뿐 아니라 교회와 신도들도 지역 단위로 잘 연결 되어 있어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들어온 공산주의자들에게 기독교는 함부로 할 수 없는 눈엣 가시 같은 존재였다. 평안도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서북지역의 기독교 세력은 도산 안창호(1878~1938), 남강 이승훈(1864~1930), 고당 조만식(1883~1950) 선생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을 배출해 왔다. 특히 고당 조만식 선생은 해방 이후 북한 공산정권이 민족주의 인사들을 배제하고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것에 대해 항거하며 남한으로 가지 않고 평양에 남아 투쟁을 하다 결국은 1950년 가을 공산 정권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이생에서의 가슴 아픈 최후는 북한 당국이 기독교를 얼마만큼 경계하고 탄압했는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한 당국은 겉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듯 하면서 사유재산 몰수, 종교 활동 감시, 일요일 정치 행사 동원, 목회자 협박 등으로 은밀하게 종교 조직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을 하기 시작했고 그 숫자는 북한 지역의 20만 성도의 40% 가량인 8만명 정도로 추산 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에 남은 신도들은 은밀히 모여 예배를 하며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갔다. 북한 당국은 전쟁 이후 사회체제 정비를 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강도를 높였다. 그리고 남은 신도들은 교회에 출석했다는 이유로 북한 체제에 유익하지 않은 반동으로 분류되며 대부분 하층 계급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신도들이 그들의 신앙을 버리지 않고 지켜 나갔다. 흔히 말하는 북한의 지하교회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 되었다.


북한의 지하교회는 월남하지 않고 남은 기존 신도들을 중심으로 근근히 명맥을 이어오다 1990년대 초반 북한의 식량난의 가중 되고 중국, 러시아 국경을 넘는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중국 등지에서 한국선교사들의 도움을 받다가 신앙을 갖게 된 이들이 생겨나고 기독교 신자가 된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 기독교를 전하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은밀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북한 지하교회 신도수가 대략 15~20만명 정도라고 한다. 북한 당국은 어떻게든 이들을 색출해서 지하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신도들의 신앙을 포기하게 하려한다. 북한 당국이 내세우는 공식적인 절대자는 오로지 김일성과 그 일가(一家)뿐이며 나머지 종교는 그저 사람과 사회를 현혹시키는 ‘아편’과 같은 존재로 취급한다. 하지만 종교와 신앙의 의미를 안 지하교회 성도들은 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 외부의 강한 힘이 작용하면 그들의 내면은 절대자에 대한 강한 의지로 다져지는 것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


김진무 감독의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은 이러한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한 영화다. 영화는 음산한 고문의 현장에서 고막을 찢어질 듯한 신음이 울려 퍼지며 시작된다. 북한 함경도의 어느 지하교회에서 몰래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주철호(김인권)는 기독교신자라는 것이 발각이 되어 아내 영미와 함께 1급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다. 그곳에서 철호는 두 손이 묶인 채 고문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아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울부 짖는다. 아내 영미는 고통 속에서도 성경 시편을 외워가며 처절히 죽어간다.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 못한 철호는 2년뒤 고향 마을로 향한다. 죽은 아내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남조선 가기 위해서다. 주철호가 돌아오면서 작은 산골 마을에 예기치 않은 소용돌이가 인다. 폐탄광에서 비밀리에 예배하며 신앙을 지키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철호의 탈출 계획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는다. 철호의 뜻에 따라 탈북을 준비하던 마을 사람들은 국경경비대에 잡히는 두려움에 떨게 되고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던 중국 선교사마저 연락이 두절되면서 탈북 계획에 차질을 빚기 시작한다.


그러던중 주철호는 자신과 죽은 아내 영미를 당국에 고발한 장본인이 지하교회의 신앙지도자 박성택(안병경)이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이중성에 치를 떤다. 철호는 복수를 결심하고 박성택이 거짓 간증을 하고 있는 평양 칠골교회에 잠입하여 응징의 칼을 들었으나 성택으로부터 그의 아내에게 가해진 고문 때문에 변절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함경도 고향마을로 발길을 되돌린다. 그 사이 마을에는 군인들이 들이 닥쳐 한차례 피바람이 불은 뒤였고 철호 역시 1급 정치범으로 검거령이 내려져 있었다. 마을에서 체포된 철호는 심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내가 부르는 찬송가 소리를 환상 속에서 들으며 해맑은 미소로 이생을 생을 마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가 있는 하늘나라로 간다.



지상낙원(?)속 지하교회


북한 당국은 스스로를 가리켜 남부러울 것 없는 ‘지상낙원(地上樂園)’이라 말해왔다. 북한 헌법만 보면 분명 북한은 지상낙원을 지향한다. 북한 헌법 제64조 “국가는 모든 공민에게 참다운 민주주의적 권리와 자유,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북한 헌법 제67조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시위와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국가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의 자유로운 활동조건을 보장한다.” 등 말로만 치자면 국민을 위한다는 북한의 헌법은 분명 달콤하다.


하지만 소수의 특권층만 빼고는 사람으로서의 기본 권리도 보장 받고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적지 않은 북한 사람들이 당국의 감시와 통제에도 불구하고 지상낙원(?)에서 지하교회로 들어가고 있다. 이는 요란한 구호와 플랜카드속에만 있는 낙원이 아닌 내 삶속, 내 마음속의 자유와 평안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으로서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의 표현이기도 하다. 물론 북한에도 당국에서 세우고 인정한 교회와 예배 처소가 몇 군데 있긴 하다. 영화 <신이 보낸 사람>에 등장하는 평양 칠골교회도 그 교회중 하나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이들 예배당과 예배 처소에는 우리가 누리는 것 만큼의 신앙의 자유는 없다. 기독교의 형식은 있지만 예배와 설교, 목회자 양성, 각종 대내외 활동 등에서 북한 당국의 간섭 아래 자유롭지 못하다. 이를 두고 한국의 기독교계에서는 북한당국에서 인정하는 봉수교회, 칠골교회가 진짜냐 가짜냐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북한의 공식 교회는 분명 문제투성이고 북한 당국의 지하교회 핍박은 분노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의 섭리가 그곳에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기 1~3세기 초기의 기독교인들이 당시 세계 최강제국 로마의 통치 아래 핍박을 당하고 있을 때 어느 누구도 기독교가 이렇게 생명력을 이어오리라고는 상상치 못했던 것 처럼 말이다. 북한의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다. 한 때 기독교가 부흥했던 곳이 지금은 가장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는 곳이 되었고 또 감시를 피해 지하교회가 부흥하는 곳이 되었다. 이제 목숨 걸고 지하교회에서 예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배의 자유가 필요하고 당국의 통제를 받고 있는 봉수교회, 칠골교회 신도들은 모순되고 가공된 신앙이 아닌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을 접하는 역사가 이루어져야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안에서 이념적인 잣대나 정치적인 논쟁 보다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민감한 자세가 필요하다.


“남조선은 가나안 땅 입니까?”. 영화 <신이 보낸 사람>은 이렇게 묻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가나안. 성경 속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헤매 이면서도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가나안은 곧 편히 거할 수 있는 이상향이자 낙원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은 북한 사람들에게 가나안 땅일까? 이 문제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자 역사속의 큰 뜻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