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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 (2010) - 축구로 뭉친 그들만의 리그



서울과 평양을 오고간 ‘경평(京平)축구’


우리나라에 축구가 들어온 것은 1882년 즈음이다. 당시 인천 제물포항에 입항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호 승무원들이 배에서 내려와 공을 찬 것이 한국 축구의 첫 시작이다. 본격적인 축구 보급에는 선교사들의 공이 컸다. 그들의 도움으로 전국의 마을과 청년단체 등 친목회 단위에서 축구가 퍼져 나갔다. 축구가 민족적 스포츠로 관심과 열기가 높아진 계기는 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전이 열리면서 부터다.


1929년 10월 조선일보 주최로 서울 휘문중학교(현대 계동사옥 자리)에서 경평축구 1회 대회가 열렸고, 2회 대회는 1930년 경성운동장에서 사흘간 열렸다. 평양 팀은 체력으로 밀어붙이기에 강했고, 연희전문과 보성전문 선수들이 주축인 서울 팀은 전술 위주의 경기를 펼쳤다. 경기가 있는 날엔 서울 시내의 가게가 거의 철시할 정도였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렸던 경평 축구는 광복 이듬해인 46년 3월 서울운동장 경기까지 모두 8회에걸쳐 23경기가 치러졌다. 그후 44년간 남북을 서로 오가는 축구교류는 끊겼다. 해외에서 청소년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이 한차례씩 만났을 뿐이다.


그러다가 남북화해 분위기를 타고 1990년 10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교환경기’가 열려 국민을 열광케 했다. 하지만 그것도 일회성에 그쳤다. 그동안 정부 대한축구협회 서울시 등이 나서서 여러 차례 경평축구를 부활시키려 애썼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남북관계가 꼬였기 때문이다.


축구에 대한 관심은 한국만 높은 것이 아니다. 북한 역시 축구 열기는 대단하다. 축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이면 북한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에 들었다는 것과 197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 축구의 강자였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


계윤식 감독은 이러한 남북한의 축구 열기를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로 녹여냈다. 이 영화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한다. 시간적 배경은 익숙하지만 공간적 배경은 참 낯 설은 곳이다. DMZ 북한군 433GP 북한 감시초소 1분대장 이철수 (이성재)는 평소에 “축구공은 둥글다”, “축구엔 국경이 없다”는 말을 다고 다니는 축구광이다. 비록 분대원들과 함게 바람 빠진 축구공을 차지만 홍명보부터 박지성, 차두리까지 남한의 축구선수 명단을 줄줄이 꿰고 있다. 한국이 폴란드들 상대로 월드컵 첫 승을 거둔 후 남한의 한 병사가 무전으로 북한을 향해 승리의 기쁨을 무전으로 보냈다. 남한 병사는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도 없고 특정 수신처도 정해 놓지 안고 그저 승리의 기쁨만을 전하고자 했다. 433GP 감청병으로부터 한국팀의 선전 소식을 들은 1분대장과 분대원들은 내일처럼 즐거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 수색을 하던 1분대원들은 멧돼지를 쫓다가 한국군과 마주친다. 서로 총을 겨누던 북한군과 한국군은 함께 멧돼지 바비큐를 즐기며 경계를 풀게된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 화제는 단연 월드컵 축구 경기였다. 이후 한국군은 북한 병사들이 월드컵 중계를 들을 수 있도록 신호를 보낸다. 1분대원들은 월드컵 중계를 청취하기 위해 몰래 무전기를 조립한다. 1분대원들은 청취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갈등하지만 결국 청취를 결정하고 월드컵 중계에 흠뻑 빠지고 만다.


무전을 통해 대화 채널을 만든 남과 북의 병사들은 급기야 비무장지대에서 그들만의 축구경기를 하기에 이른다. 축구 경기를 하는 동안 이들은 총을 들지 않았다. 단지 공과 사람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친선 경기를 마치고 위성으로 중계되는 한국-이탈리아의 월드컵 16강 경기를 같이 관람한다. 이탈리아는 북한에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에 패했고 2002년 월드컵에서 패한팀이다. 당시 한국응원단은 'AGAIN 1966'이라는 강렬한 카드섹션을 하기도 했다.


한국-이탈리아 경기를 지켜보는 한국 병사들은 열정적으로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친다. 이 부분에서 북한 병사들은 어색함을 느낀다. 북한 병사들은 이내 “우리민족 짝짝짝 짝짝”으로 바꿔 외친다. 한국이 강호 이탈리아를 꺽자 기운찬 발걸음으로 이들은 각자의 처소로 돌아간다.


하지만 남과 북 병사들 사이의 밀월 관계는 북한 통신 감청단의 수사에 의해 점점 꼬리가 밟힐 위기에 처하게 된다. 433GP 근처에서 비밀스런 통신이 오고간 것을 파악한 감청단은 GP를 대상으로 조사에 들어간다. 이에 1분대원들은 남측에서 온 물건들은 소각하고 철저한 내부단속을 한다. 그래도 월드컵 중계만은 포기 할 수 없어 한국-스페인간의 8강 경기도 청취한다. 결국 감청단에 의해 1분대가 한국군과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1분대장은 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자백하기에 이른다. 


위기에 처한 이철수 분대장을 돕기 위해 분대원들은 분대장을 남쪽으로 보내기로 하고 한국군에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GP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분대장을 탈출 시킨다. 1분대장은 사력을 다해 남으로 뛰어가고 한국군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8년 뒤인 2010년. 남과 북이 처음으로 동반 출전한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철수 분대장은 해설위원 이철수로 변신하여 북한-브라질 경기를 중계하기에 이른다.



K리거 정대세의 ‘눈물’


2010년 5월 개봉된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는 가상의 북한-브라질전 중계방송 장면을 상상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영화 개봉 1달 뒤인 2010년 6월 16일 44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북한과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간의 실제 경기가 열렸다.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양측 국가가 울려 퍼지고, 북한 대표팀 정대세 선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동양인으로는 보기 드문 건장한 체격에 ‘인간 불도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스물여섯 청년의 눈물. 그의 굵은 눈물은 독특한 개인사와 오버랩되면서 전 세계 수많은 축구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대세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 교포 3세이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어머니는 조선 국적을 갖고 있어 정대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갖게 되었다. 재일 교포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징집되거나 징용으로 끌려가 일본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다. 당시에는 한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 모두 조선 국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일부는 북한 국적을, 일부는 한국 국적을 갖게 되었다. 조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지만 재일 교포에게는 영원히 분단되기 전의 ‘조선’이 고향이다. 그래서 많은 재일교포들이 “한국도 북한도 모두 조국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대세의 아버지는 대세를 일본 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대세의 어머니는 대세를 조선학교에 보낸다. 국적 문제가 자식들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자 대세의 부모님은 심하게 다투는 일이 많았다. 정대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조총련계 대학인 일본 조선대 졸업하고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 프로 축구선수로 활약한다. 


이어 북한팀 대표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한다.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북한 대표팀 선수로 출전하는 데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재일 교포의 역사적 현실과 특수한 상황을 세계축구연맹에 호소해 어렵게 북한 팀 대표선수로 뛸 수 있었다. 그리고 독일 FC쾰른을 거쳐 2013년 3월 부터는 한국 K리그 클래식의 수원팀에서 뛰고 있다. 한국국적인 재일교포 3세 출신의 북한 축구대표팀 선수가 한국 리그의 선수가 된 아주 특이한 경우가 되었다.


정대세의 수원팀 이전과 함께 수원팀은 그의 국적 문제를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의뢰했다. 정대세는 북한 대표팀이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북한 여권을 취득했다. 이 때문에 정대세는 소유 여권의 발행국을 기준으로 삼는 아시아축구연맹에는 북한 국적의 선수로 등록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대세가 수원 삼성에 입단하게 되자, 그가 북한 선수인가 한국 선수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아시아축구연맹은 사실상 그의 한국, 북한 이중국적을 인정했다. 이중국적을 인정받음으로써 정대세는 국가대표간의 경기인 A매치에서는 북한대표팀 선수로 뛰고,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 자격으로 뛰게 됐다.


복잡하고 우여곡절이 많은 상황속에서도 정대세는 이러한 고백을 한다.


“저보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 저는 ‘재일(在日)’이라고 대답합니다. 재일은 일본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 어디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집니다. 재일 사람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의 뿌리를 소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세계의 정대세가 되어 ‘재일’의 존재를 알려야 하는 것이 저의 존재 이유입니다.”


축구선수 정대세가 브라질전에서 눈물을 흘린 이유는 바로 그 재일의 의미였으며 그 이전에 ‘뿌리’에 대한 고민이 남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 <꿈은 이루어진다>의 남북 병사들도 결국은 축구를 통해 그 뿌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 거릴 필요가 없다. 정치적, 군사적, 이념적으로 보면 답답한 현실이지만 1930~40년대 서울과 평양을 오갔던 경평축구의 열기를 부활 시켜 통일의 불쏘기게 역할을 하는 노력이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해졌다. 앞으로 이루어질 꿈을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