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다문화사회
2010년 여성가족부와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한 한국인의 ‘다문화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다문화 사회라는 데 74.7%가 동의했다. 한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한국을 다문화사회라고 보는 셈이다. 2011년 기준으로 국내 결혼이민자는 21만명, 이들의 자녀는 14만명이다. 체류 외국인 역시 120만명이다. 여기에 단기연수생이나 비공식적인 불법 체류자까지 보태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속도만큼, 국민의 다문화 가족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아직 한국 사회는 다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 응답자의 80%가 다문화 사회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그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높아진다’가 57%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다문화가족의 증가가 사회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타났다. 다문화가족 증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문화적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유발된다’(47%)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 가까이 됐다. ‘단일민족 국가 전통이 약화되므로’(22%), ‘한국 고유의 문화가 변질되므로’(19.4%) 등 한국의 고유한 정체성이 흔들리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다문화 현상은 도시 보다는 비교적 보수적인 농촌공동체에서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사회가 급격히 산업화 되면서 많은 농촌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었다. 20여년전부터 농촌에 거주하거나 거주를 희망하는 결혼적령기의 여성이 부족하게 되었고 농촌 총각들은 배우자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대안은 외국에서 신붓감을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농촌총각+외국인 아내’의 혼인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도 매년 6,000명 이상의 외국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한국 농촌으로 이민을 온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
순박한 시골 노총각들의 결혼원정을 그린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이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만든 황병국 감독은 혼기를 넘기고도 장가를 못간 시골 노총각들의 결혼원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담고자했다. 경북 예천에 살면서 나이 서른 여덟이 되도록 연애는 고사하고 여자 눈도 한 번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순박한 농촌 총각 만택(정재영)과 같은 노총각 신세인 희철(유준상)과 밤늦게 동네가 떠나가도록 술주정이나 하는 것으로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달랜다. 이를 보다 못한 동네 어른들은, 마침내 만택과 희철에게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신부감을 데려오라는 특명을 내린다.
두려움과 설렘으로 우즈벡 맞선 여행은 시작 되지만 안 되는 영어까지 구사하며 현란한 작업을 펼치는 희철에 반해, 답답할 정도로 순진한 만택은 번번히 퇴짜맞기 일쑤다. 이런 상황에 맞선 중계 회사의 현지 커플 매니저인 라라(수애) 역시 만택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보다 못한 라라는 우즈벡 인사말부터 맞선 예절까지 만택의 특별 개인 교습에 나선다. 라라의 철두철미한 교습과 희철의 애정어린(?)충고 덕에 드디어 만택에게 기회가 생기지만, 진심 없이 꾸며낸 말로 얻어낸 데이트는 영 불편하기만 하다. 오히려 만택은 우즈벡 여성이 아닌 고려인이라 소개한 가이드 라라에게 점점 마음이 쏠린다. 라라가 쪽지에 적어준 우즈벡 인사말 "내일 또 만나요"라는 뜻의 "다 자쁘뜨러"를 되뇌이며 말이다.
영화 초중반부에서 만택의 현지 커플매니저인 라라는 만택의 결혼을 성사시키려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려인인줄 알았던 라라는 사실 탈북자 ‘순이’였고 동생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이후 러시아를 거쳐 우즈벡에와서 통역과 커플매니저 일을 하며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만택의 맞선 건만 잘 성사가 되면 라라의 한국행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만택과 만나면서 계획들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만택과 라라는 각기 현지 신부감을 찾기 위해, 그리고 한국으로 가는 중간기착기로 우즈벡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뜻하지 않게 서로를 향한 순정과 진심을 느낀다.
그러나 이들에게 우즈벡은 스쳐가는 이방의 땅일 뿐 안식처가 아니다. 한사람은 베필이 될 사람을 찾기 위해 입국했고 다른 한사람은 불법 체류자일 뿐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우즈벡의 남남북녀는 아쉬움을 남기며 기약 없이 헤어지게 된다. 탈북자라는 신분(여권이 없음)때문에 라라는 공항 한켠에 숨어서 만택을 배웅하고 만택은 라라를 향해 공항로비에서 큰 소리로 "다 자빠뜨려 (다 자쁘뜨러- 내일 또 만나요)~"를 외친다. 비록 정확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내일 또 만나요'라고 외치는 만택의 외침은 라라를 향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었다. 기다림이 추억이 될 듯한 시간이 흐른 뒤 라라가 극적으로 독일대사관에 들어가 한국 망명을 희망하게 되면서 이들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영화 <나의결혼원정기>가 건드리고자 하는 핵심은 ‘남남북녀’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며 이해, 심지어 사랑과 결혼에 이를 수 있는가이다. 기존의 분단 영화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만났다는데 있다. 우즈벡보다 한국의 국가 부의 축적이 많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러한 원정 맞선 방식의 국제결혼이 없었더라면, 탈북과 농촌문제가 없었더라면, 두 사람의 만남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산업화와 세계화의 산물들이 새로운 ‘남남북녀’의 양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또한 이 영화는 우즈벡이라는 제3국을 등장시키고 러시아와 우즈벡에서 삶의 경험이 있는 탈북 여성을 주요 캐릭터로 하면서 다문화 시대의 통일문제를 자연스럽게 부각시켰다.
‘남남북녀’와 ‘남녀북남’ 그들은 행복할까?
만약에 농촌총각 만택과 탈북여성 라라의 결혼 생활 이야기를 다룬 후속작 (가칭)<나의 결혼생활기>를 제작하면 어떻게 될까? 영화가 실제라면...2005년에 결혼을 했으니 만택은 45살이 되었을 것이고 아이도 2명 정도 있을 듯싶다. 라라 역시 더 이상은 불안정한 북한 출신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 아닌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 만택과 라라는 계속 시골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으며 아이들 교육 문제와 농촌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결혼 7년차 부부인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잠재적인 불만이 가장 클 지도 모른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 우즈벡을 거쳐 한국에 온 라라가 겪었을 문화적인 충격은 38년을 한 마을에서 거주했던 만택 그것 보다 더 클것이다.
‘남남북녀’라는 인식 때문에 많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여성들에게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다. 남한 남자들의 가장 큰 착각중 하나가 북한여자들은 순종적이어서 남자들을 꼼꼼하게 챙겨줄 것이란 기대감이다. 남한남자와 북한여자가 결혼해서 살다 보면 오히려 남자들이 한국 실정에 어두운 북한여자들을 세심하게 챙겨줘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는 거주 지역을 벗어나려면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금방 나오지도 않고 받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집안의 경조사가 있을 때 참가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여 집안 모임 때 해야 할 예법을 익히지 못한 여성들도 많다. 남한에서 결혼한 북한 출신 여성중에는 남편 집안의 경조사를 챙기지 못하거나, 모임 시 해야 할 일에 서툰 사람이 많은데 남한 사람들은 이런 점을 이해 못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함이 쌓이다 보면 불만이 커지고 결국에는 서로에게 깊은 감정의 생채기를 내게 된다.
남한사람들은 북한출신이라면 70년대 한국사람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그들은 한국과는 전혀 다른 사회 구조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들이다. 대부분 한국남성이 ‘같은 민족인데 문제 될 것이 뭐가 있겠나’ 라고 생각하지만 구체적으로 남북 간의 차이점을 찾아 인정한 후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힘들어져서 갈등을 불러오고 만다.
흔히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 말한다. 연애의 과정에서 성장배경이 다른 타문화권의 이성은 많은 매력을 발산한다. 나와 다른 것에 신기해하며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알아가고자하는 마음이 크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닌 또 다른 삶의 시작이다. 어느 정도의 호기심이 충족 되면 동질화된 것을 찾게 된다. 상대방과 같이 호흡하고 대화하며 맞추어 가면 큰 문제가 없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심각한 갈등을 불러온다. 사실 같은 문화권에서 낳고 자란 사람들도 이 문제는 쉽지 않다. KBS 드라마 ‘사랑과 전쟁’을 보면 결혼 생활에서 일어나는 온갖 갈등의 유형들을 다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지금 한국 부부들이 겪고 있는 삶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포용이다. 특히, 한국에 온 탈북자는 통일을 대비하는 우리에게 미리 내려준 예습과제와 같다. 목숨을 걸고 탈북한 후 남한행을 선택하고 남한에서 인연을 만나 ‘남남북녀’ 혹은 ‘남녀북남’의 커플이 된 이들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차후 다가올 통일의 시기에 풀어야 할 숙제는 더욱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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