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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 여덟발의 총성, 그곳의 진실





최전방, 캠프 보니파스 Camp Bonifas


판문점을 가기 위해 ‘국도 1호선’을 타고 임진각을 넘어 민간인 통제구역을 20분 남짓 달리다 보면 군부대 앞에 서게 된다. 부대 앞 간판에는 영문과 한글로 이러한 슬로건이 쓰여 있다.


‘In front of them all’

‘최전방에서’


이곳은 남한 쪽에서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 내에 위치한 판문점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군부대인 ‘캠프 보니파스 (Camp Bonfas)’이다.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근무하는 ‘캠프 보니파스’의 부대 명칭에는 1976년 이곳에서 벌어진 가슴 아픈 사건이 담겨져 있다.


1976년 8월 18일 오전 10시경 미군 장교 2명을 비롯한 UN군 소속 군인 11명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남쪽 UN군 관할 제3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치는 한국인 노무자 5명의 작업을 지휘 ·경호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 군인 수십 명의 작업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 측 경비병이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하자 갑자기 수십 명의 북한군 사병들이 트럭을 타고 달려와서 도끼와 몽둥이 등을 휘두르며 폭행, 미군 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하고 나머지 9명에게는 중 ·경상을 입힌 뒤 사라졌다. 이때 희생당한 미국 장교 중 한명이 ‘아서 G 보니파스’ 대위이다. ‘캠프 보니파스’는 보스파스 대위를 기념하며 명명된 곳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미군 병사들이 희생당한 사건이 바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한반도를 전쟁 위기에 까지 몰아넣었던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이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 돌입)를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미군은 전투기 대대를 한반도에 증파하고,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국 해역으로 항진 시키는 등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UN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1976년 9월부터는 판문점에서 상호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남과 북의 구역을 나누어 각각 경비를 서게 되었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일어나기 전에는 남북의 병사들이 한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초소에서 경비를 서며 때로는 같은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기도 했다. 말 그대로 ‘공동경비구역’이었다.



영화 속 여덟 발의 ‘총성’


남북 분단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사건 사고도 많았던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동안 보통 사람들에게는 금단의 지역이었다. 2000년 박찬욱 감독은 박상연의 소설 <DMZ>를 바탕으로 비무장지대 속 남북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을 제작한다. 이 영화는 한국인에게 호기심의 영역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남북 병사의 총격사건의 진실을 추리극 형식으로 그렸고 남북한 병사들의 우정과 분단의 아픈 현실을 담았다.

영화는 여덟발의 총성과 함께 시작한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벌어진 남북 군인들 사이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북한 초소병 정우진(신하균) 이 처참하게 살해되었고 그 옆에 북한 장교(김명수)가 쓰러져 있다. 그리고 남북 군사분계선 한가운데 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인 젊은 한국군 병사 이수혁(이병헌) 병장이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사건 이후 북한은 남한의 기습 테러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의 납치설로 각각 엇갈린 주장을 한다.


정전협정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원회에서는 책임 수사관으로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이영애) 소령을 파견, 사건의 정황을 수사한다. 소피 소령은 사건 당사자인 남한의 이수혁 병장과 북한의 오경필 중사(송강호)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듣게 되지만, 그들은 서로 상반된 진술만을 반복해 사건은 점차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러던 중 사건 최초의 목격자인 남성식 일병(김태우)이 돌연 투신자살을 한다. 베일에 쌓여 있는 거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소피 소령은 리워진 의혹을 조금씩 벗겨나간다. 소피 소령이 알아낸 진실은 실로 놀라웠다. 정찰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고 낙오한 한국군 이수혁 병장을 북한군 오경필과 정우진이 우연히 구해준 뒤로 인간적인 우정이 오가던 중,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이들은 총을 겨누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영화 중반부까지 남북한 병사들은 친형제처럼 어울리며 ‘우리는 하나여야 한다’라는 뜨거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왜 총을 겨누고 죽일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이 의문에 대해 영화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의 벽속에서 ‘너와 나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극중 한국군 이수혁은 “형이고 뭐고 다 필요없어. 결국 우린 적이야...” 라며 울먹이며 잠시나마 형제애를 나눈 북한 군인들에게 총을 겨눈다. 남북 청년들의 우정도 이 짧은 한마디 앞에 쉽게 날아가 버렸다. 이 장면은 우리가 처한 냉혹한 현실의 모습이기도 하다. 과연 ‘공동경비구역 JSA’의 남북 군인들은 만나서는 안 되는 사이었을까? 오늘도 판문점에서 경비를 서는 남북 군인들은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을 경계하며 응시하고 있다. 이들에게 영화는 그저 영화일 뿐이다.



초코파이 열풍을 예견하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남북의 군인들이 가수 김광석의 노래를 같이 들으며 ‘젊음’을 이야기하고 카드놀이를 하며 연예인과 이성에 대한 호기심들을 이야기한다. 북한에 한류 바람이 일기 전부터 영화는 벌써 북한 사람들이 한류에 심취하는 상황을 설정해 버린다. 영화에서 발휘된 상상력 중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바로 ‘초코파이’다. 극중 수혁은 초코파이를 매개로 경필에게 남쪽으로 내려 올 것을 권하고 경필 역시 초코파이를 매개로 북한에 자신이 남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경필 (북한군) : (초코파이를 들고서 기쁘게) “거저 공화국에서는 왜 이런 거 못 만드나 몰라? 응?”


수혁 (한국군) : (경필에게) “형, 저 아니 뭐 딴 거는 아니고...안 내려올래?”

                      “초코파이 배 터지게 먹을 수 있잖아. 어휴, 아니면 말고”


경필 : “거 이수혁이, 내 딱 한번만 이야기할 테니까 잘 들어드라우. 내 꿈은 말이야, 언젠가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훨씬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기야. 알갔어? 그때까진 어쩔 수 없이 이 초코파이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



수혁에게 초코파이는 남한 사회의 경제적 풍요로움을 나타내고 경필에게 초코파이는 북한의 일으켜야 하는 일종의 사명의 의미로 사용된다. 초코파이의 달콤함을 북한 사람들이 맛보게 하고 ‘우리는 왜 이런 게 없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듦으로써,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나타내려 했다. 북한과 초코파이를 연결시킨다는 것은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2000년 가을 개봉했다. 2000년 가을은 북한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의 열기로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가 그 어떤 때보다 높았던 시점이었다. 남북 화해 분위기로 인해 영화는 기대 이상의 관심을 받았다. 이런 고무적인 분위기는 흥행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만 해도 연평도 해전 등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 흥행여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지만 결국 <공동경비구역 JSA>는 <쉬리>의 흥행 바통을 이어 받으며 분단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리고 <공동경비구역 JSA> 성공의 밑 바탕에는 허구의 상황이지만, 남북의 병사들이 만나 초코파이 같은 나눔의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상상력이 깔려 있었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북한 사람들과 초코파이의 만남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현실속의 일이 되어 버린다. 상상이 현실이 되어 버린 현장은 영화 속 배경인 '공동경비구역 JSA'와 멀지 않은 북한의 개성공단이다. 2004년 개성공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들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간식을 제공했는데 그 간식이 초코파이였다. 개성공단에 입주해있는 200여개 남한 기업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4만 5천 여명으로 이들에게는 한 사람당 하루 2~3개의 초코파이가 지급된다. 그리고 각종 성과에 대한 포상으로 돈 대신 초코파이를 추가로 지급기도 한다. 그래서 공단 현지에선 기업의 실적을 초코파이가 좌우한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다. 개성공단 내에서 한 달 동안 소비되는 초코파이의 양만 250만개 이상이다. 남북 사이의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불협화음이 계속 되어도 개성공단의 초코파이 지급은 계속 되고 있다. 이렇게 서서히 북한 근로자들은 초코파이를 통해 남한과 자본주의에 대한 첫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서 초코파이의 달콤함을 맛 보았던 북한 사람들이 이제 실제로 그 맛을 보고 북한 사회 변화를 위한 내공을 쌓고 있는 셈이다. 시간이 좀더 흐른 뒤 북한 사람들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초코파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 평가를 하게 될까? 남한의 수혁과 북한의 경필 사이에 오고갔던 대사는 분명 훗날에도 두고두고 회자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