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해방 이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지역에서는 권력을 잡은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에 대한 핍박에 열을 올렸다. 기독교와 공산주의 세력과의 싸움은 일제하인 1920년대에 한반도에서 생격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제국주의 앞잡이, 민중의 아편, 미신 등이라 비판했고, 기독교는 공산주의가 가진 무신론과 유물론 사상 때문에 함께 갈 수 없었다.
1945년 겨울부터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조만식 장로를 비롯한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체포 구금 되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재산을 몰수 당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핍박 당하며 순교자의 길을 가던지 아니면 신앙과 삶의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가던지 또는 공개적으로 신앙을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던지 선택해야 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월남 이후 남한 기독교의 주류세력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는다. 월남한 기독인들중에는 서북세력(평남, 평북)이 많았다. 해방전후 조선의 기독교인은 장로교인이 전체 기독교인의 3/4쯤 되었는데, 그중 북한에 존재했던 서북세력이 장로교의 60%를 차지하고 있었다.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이다. 해방직후 공산주의와의 갈등과 또 토지개혁 문제로 북에서 남으로 월남한 기독교인이 7-8만 명이나 되었는데 이는 당시 북한 기독교인 숫자 20만 명의 35-40%에 달하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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