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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통일한국 스토리텔링

4월 15일이 담고 있는 3가지 의미 - ‘태양절’이 아닌 ‘타이타닉’과 ‘다빈치’를 생각하다.

1. 1912년 4월 15일은 북한이 자랑하는 ‘태양절’


연인원 10만명이 동원되는 북한의 군중 마스게임 <아리랑>에는 통일 염원을 담은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가 나온다. 별생각 없이 들으면 그냥 통일을 바라는 노래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핏줄도 하나

하나 이 땅도 하나, 둘이 되면 못 살 하나“


그런데 노래 마지막 부분에 좀 거시기한 표현이 나온다.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

이 노래가 남한에서 불려 질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태양”이란 표현 때문이다. 여기서 “태양”은 그냥 자연의 태양이 아닌 “민족의 태양 김일성”을 가리킨다. 북한은 김일성을 “사회주의 조선의 시조(始祖)이며 민족의 태양”으로 깎듯이 모신다. 그래서 김일성이 태어난 4월 15일을 ‘태양절’로 기념하여 ‘그들만의 민족명절’로 기린다. “태양절”이 되면 큰 축제들이 벌어지고 주민들에게 평소에는 구경하기 힘든 식량과 생필품을 보급하기도 한다.

2012년 4월 15일은 김일성이 태어난지 100년 되는해다. 1990년대 중후반 체제의 위기 겪고 있던 북한은 2012년까지 '사상과 군사강국의 위력으로 경제 건설' 하여 일며 ‘강성대국’을 이룩하겠다는 국가 비전을 대내외에 선포한다. 여기서 2012년은 바로 김일성 출생 100년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양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 사이에 태어났다. 청년의 시기에는 항일무장투쟁을 했고 30대 때에는 소련의 도움으로 북한 최고 권좌에 올라 북한 정부를 수립하였고 한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사회주의 북한을 건설하였고 주체사상을 통해 주민들을 통치해 나갔으며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건설한 ‘사회주의 조선 왕국’은 지금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그와 외모가 가장 많이 닮은 손자가 아들의 대를 이어 통치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손자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유전적인 할아버지의 이미지뿐이다.

북한 체제 내에서는 정치적인 자유가 허락되지 않아 10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으며 그토록 자랑하던 사회주의 계획 경제는 이미 오래전에 붕괴되어 주민들은 암시장에서 생계를 연명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남한과 한반도 주변 4개 국가들과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으며 ‘먼저 주먹을 날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내가 맞게 되어 있다’는 강박 관념에 잡혀 군사안보적인 노이즈 마케팅을 쉴새 없이 하고 있다.



2. 1912년 4월 15일은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날

현재 북한은 언젠가는 침몰할 줄 알면서 근본적인 처방 없이 임시 방편 속에 침몰을 면해 보려는 난파하고 있는 배의 모습과 같다. 공교롭게도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 4월 15일은 당시 세계 최대 초호화 유람선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날이기도 하다. 타이타닉은 영국 화이트스타라인사가 건조한 호화여객선으로 무게 46,328t. 길이 259.08m. 너비 28.19m. 깊이 19.66m로 당시 최대 규모였으며 최첨단 내부 시설과 초호화 인테리어를 자랑하던 여객선이었다. 1912년 4월 15일 새벽 영국 사우샘프턴 항구에서 미국 뉴욕항으로 향하는 처녀항해 중 대서양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떠다니는 빙산과 충돌하여 충돌 2시간 40분 후에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승선자 2,208명 중 1,513명의 희생자를 내어 세계를 놀라게 한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였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의 첨단 기술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타이타닉은 획기적인 이중 선저와 방수구획을 채용하여 빙산에 부딪쳐도 절대 침몰하지 않는 안전한 배라는 것을 출항 전부터 자랑삼아 강조해왔다. 하지만 빙산이 배 옆으로 충돌하는 것에 대한 대비가 없었고 결국 첫 출항에서 예상치 못한 그 상황이 발생하여 참변을 당하게 된다. 타이타닉이 갖고 있던 시대의 상징성, 승선했던 다양선 사람들의 생존과 죽음에 대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타이타닉은 그동안 수차례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지금 북한은 빙산에 부딪힌 채 아직 가라 앉지 않은 타이타닉호의 배 끝부분과 같다.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로 귀결된 인류 최대의 실험이었다. 러시아에서 시작된 사회주의 혁명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고 한 때 세계의 절반이 사회주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사회주의는 국가 체제를 바꾸려 했고 사람마저도 개조 하려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던 인류 최대의 실험은 비효율적이고 효과를 내지 못하는 체제 자체의 모순에 빠져 버렸고 결국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야했다.

사회주의가 타이타닉처럼 큰 빙산에 부디치며 침몰을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이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곧 동구권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사회주의 노선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1991년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붕괴되면서 1917년 이래 계속 되어 왔던 사회주의 통치는 74년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 베트남은 ‘흑묘백묘’와 ‘도이모이’로 통칭되는 과감한 경제 개혁과 개방을 통해 변형된 노선의 걷게 된다. 사회주의의 뱃머리에 해당되는 동유럽은 이미 침몰했고 중국과 베트남은 침몰하기 전 과감히 탈출했으며 이제 남은 것은 배의 꼬리에 부분에 해당되는 극동지역의 북한뿐이다.

점점 침몰해 가는 북한을 바라보며 이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필요하다. 독재와 억압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인 자유를 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빵과 일자리를 주며 획일적인 사회 속에 다양성이 존중되는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동안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는 북한 동포들을 구하자는 운동은 주로 보수 성향의 탈북자단체, 북한민주화단체 등에서 주도해 왔다. 이러한 운동을 해왔던 탈북자 및 북한 민주화단체들은 2012년 ‘김일성 100년, 타이타닉 100년’을 설득력 있게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 사회주의 왕조 북한의 운명이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남은 배 꼬리 부분과 같기 때문이다. 올봄에는 이런 구호를 한번 외쳐 보자.


"2012년 4월 15일은 타이타닉 침몰 100년, 김일성 출생 100년 입니다."

"주체로 물든 ‘인민의 타이타닉'은 점점 가라앉고 있습니다...우리가 그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3. 4월 15일은 또한 창의력과 상상력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태어난 날

그렇다면 그동안 햇볕정책을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던 진보진영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일명 퍼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이란 불리는 대북포용정책은 금강산관광, 남북정상회담, 개성공단과 같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족적을 남겼다. 대북포용정책은 기존의 남북 관계에서 시도해 보지 못했던 상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과 금강산 유람선 관광은 관료적인 사고로 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 없는 기업가정신의 발현이었다. 이후 남북간의 교류 활성화는 <공동경비구역 JSA>,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분단을 다룬 영화들의 흥행으로 이루어지며 사회전반적으로 남북관계와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이러한 남북관계의 개선은 소수의 창의적인 노력과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갈망하는 국민들의 호응으로 연결되었다. 제러미 리프킨 저서 <엔트로피>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지난 20 만 년 간 인류문명 발전이 그 동안 이 땅에 살아온 모든 인류의 노력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진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0.1%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꾸며 모두가 가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 깃발을 꽂은 결과다.”

경계를 허물고 상식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천재가 인류의 문명을 한 걸음 더 진화하게 한다는 사실을 적절히 묘사한 표현한 말이다. 유럽 중세시대는 지극히 폐쇄적인 시대였다. 예술이나 과학, 철학의 경우에도 신학의 범주 안에서만 허용되었다. 특히, 사람의 생각을 다루는 학문인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푸념 섞인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는 서로 다른 영역을 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따라서 로마 카톨릭이 추구하는 신앙관을 조금이라고 벗어나거나 기존의 형식에 만족하지 못해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을 경우에는 ‘사탄’과 ‘마녀’로 몰리며 목숨을 담보해야 했다.

중세의 사회분위기는 대체로 그러했지만 극히 일부 예외도 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명문 재력가인 메디치(Medici) 가문의 후원아래 서로 다른 재능과 지식을 갖춘 예술가. 과학자. 시인 . 철학자가 교류하고 소통함으로써 서로 다른 역량의 융합으로 생겨나는 창조와 혁신의 이루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로 알려진 이 현상은 다양한 사람들과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이면서 르네상스의 새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되기도 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은 미켈란젤로(1474~1564) 였다. 조각가이자 건축가. 화가. 시인이었던 그는 청년시절 메디치가에서 활동하면서 과감한 발상과 창의력을 키웠다.

또 밀라노에서는 스포르차(Sforza) 가문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1452~1519) 역시 조각. 발명. 건축. 해부학. 식물학. 도시계획. 천문학. 지리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창의적 재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등을 남긴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이자 당대의 ‘팔방미인’이다. 예술과 과학을 종합시킨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시각적 관찰에 의한 경험주의자로 예술가를 ‘시각적 관찰에서 얻은 진실하고 정확한 체험의 자료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연법칙에서 숱한 비밀을 캐내려고 노력했다. 그 결구 ‘안경’과 ‘망원경’을 발명했으며 새를 관찰한 끝에 비행물체로서의 날틀, 노동력 절감을 위해 볼트와 너트, 지렛대, 방적기, 자전거 등 300여개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특유의 창의와 상상의 힘을 갖고 있던 다빈치는 비록 몸은 중세에 있었지만 생각은 이미 근대와 현대를 살고 있었다.

시대에 앞서 인류의 진보를 알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생일이 바로 공교롭게도 김일성과 같은 4월 15일이다. 보수진영이 김일성 출생과 동일한 날에 일어난 타이타닉 운명과 같은 북한의 주민을 구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 진보진영은 인류 최고의 혁신가 중 한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가졌던 창의와 상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비록 안개속에 갖혀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하는 답답한 현실에 있지만 생각은 언젠가 남북이 융합 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그 순간을 꿈꿔야 한다.

보수의 ‘타이타닉 마케팅’ 전략과 진보의 ‘다빈치 마케팅’ 전략은 가는 길은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큰 목표의 끝 지점에서 만날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린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단지 다를 뿐이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이 가는 길을 존중하는 것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다.

‘보수’와 ‘진보’여 !!!

‘타이타닉’과 ‘다빈치’를 잘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며 공감을 끌어내는 나름의 통일운동을 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