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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통일한국 스토리텔링

좌정우정(左情右情) - 좌파든 우파든 북한 주민들에게 초코파이(情)만 전해주면 된다.

흑묘백묘(黑猫白猫)

언론 매체에 중국의 경제개혁을 빗댄 표현으로 흑묘백묘(黑猫白猫)란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흑묘백묘는 '부관흑묘백묘(不管黑猫白猫), 착도로서(捉到老鼠) 취시호묘(就是好猫)'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묘(猫)는 한자로 고양이 묘(猫)자다. 즉 검은(黑) 고양이든 흰(白)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흑묘백묘론은 오늘날의 중국을 있게 한 1등 공신인 덩샤오핑(鄧小平 1904~997))이 본격적으로 주창했다. 덩샤오핑은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문화혁명으로 피폐되어 있던 중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일으키며 개혁·개방을 시작하게 된다. 이때 덩샤오핑이 이야기한 것이 바로 흑묘백묘다. 즉 고양이 빛깔이 어떻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이,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이다. 흑묘백묘론은 부유해질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유해지라는 뜻의 선부론(先富論)과 함께 덩샤오핑의 중국의 경제정책을 가장 잘 대변하는 되었고 1980년대 중국식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경제는 흑묘백묘식으로 추진하고, 정치는 기존의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정경분리의 정책을 통해 덩샤오핑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탄생시켰다. 덩샤오핑의 이러한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거듭하였고 오늘날 미국과 함께 G2의 위상을 가진 무시할 수 없는 나라고 성장하였다.



북한식 흑묘백묘는 ?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도 이미 30여년전부터 외국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고자 고민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 조총련계 자금을 유치하였고 1984년에는 외국자본을 들여오는 것을 법으로 제정한 일명 ‘합영법’을 만들었다. 조총련계 자금 유치와 합영법은 말은 거창 했지만 자금과 시설만 외부로부터 들여오고 이를 운영하는데는 투자자들이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기형적인 제도였다. 이후 라진-선봉 경제특구, 금강산 관광, 신의주 경제 특구 등 자본주의 요소들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나고 만다. 북한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외부의 자금과 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는 강한 마음을 갖고 있으나 그에 따르는 제반 여건과 ‘우리식 사회주의’ 정체성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은 남북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위기 속에서도 숨을 졸이며 가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대북 투자가 적지 않게 진행 되고 있긴 하지만 개성공단이 갖고 있는 잠재성과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파급효과에는 미치지를 못한다.

얼마 전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북측 근로자가 5만명을 돌파했고 업체수도 123개에 이르며 2011년 개성공단 생산액이 4억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등 남북의 공식적인 관계는 아직 긴장관계속에 있음에도 개성공단은 쉬지 않고 계속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외화를 얻을 수 있고 남한은 저렴한 노동력을 통해 제품을 생산할 수 있으니 지금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은 없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생각하고 있는 흑묘백묘의 보루이며 가능성 일지도 모른다.



남쪽이 취할 자세는 ‘
좌정우정(左情右情)’

개성공단의 가동 되면서 심심치 않게 북측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제공되는 ‘초코파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자주 오르내리고있다. 북측 근로자들이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밖으로 가져가 이를 판매하고 있으며 장마당 (북한식 암시장)을 통해 평양 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 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부에서는 중동에서 불고 있는 쟈스민혁명이 북한에서는 일종의 ‘초코파이 혁명’으로 승화 될 수 있다는 말도 서슴치 않고 있다. 초코파이 혁명이란 용어 때문에 북한 당국의 초코파이에 대한 경계심을 품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초코파이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들은 초코파이를 조금이라도 더 받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이미 초코파이의 애칭인 ‘개성빵’(개성에서 온 빵)은 북한에서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상징하는 ‘특별한 그 무엇’ 자리를 굳히고 말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남한에서는 진영 논리에 빠져 ‘초코파이’를 지나치게 이용하거나 외면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개성빵 초코파이는 ‘진보적인 가치’의 실현이었다. 대북포용 정책의 결과물로 만들어 진 것이 개성공단이며 개성빵 초코파이는 개성공단이 낳은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어쩌면 개성빵 초코파이는 대북포용 정책이 갖고 있는 이상향의 한 단면일수도 있다. 진보논객인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저서 <진보집권플랜>에서 ‘천안함과 초코파이’란 꼭지글을 통해 ‘천안함’을 하드파워 갈등의 결과물로 표현했고 ‘초코파이’를 소프트파워의 열매로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초코파이’는 진보만의 가치로 끝나서는 안 된다. 보수에서도 초코파이개성빵을 이야기해야 될 때가 왔다. 아니 이미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1월 20일 설 연휴를 앞두고 탈북자/북한 민주화 단체들은 강화도에서 초코파이 100kg을 풍선에 실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진보적 가치의 전유물 이었던 ‘초코파이’가 보수도 함께 이야기 하는 ‘실용적인 가치’로 전환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부터 좌파든 우파든 상관없이 북한 주민들에게 ‘초코파이’만 전달되면 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일명 ‘좌정우정(左情右情)’이다. 여기서 정(情)은 초코파이의 브랜드 컨셉인 ‘정(情)’을 의미한다. 북한 내 초코파이 현상의 기초를 진보가 놓았다고 해서 그 열매를 진보만 누려서도 안되고 보수는 또 그것을 외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초코파이를 진보-보수가 같이 공유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실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좌정우정(左情右情)’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진영논리에 묶에 북한/통일문제에 극단의 대립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차이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아 뜻을 융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통일의 과정과 이후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보든 보수든 북한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이미 초코파이의 보급으로 북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맛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실용적인 가치에 입각하여 잠시의 달콤함을 지속적인 느낌으로 만들어 주어야한다.

30여년전 덩사오핑이 ‘흑묘백묘’를 이야기하며 중국이 G2가 되는데에 초석을 놓았듯이 이제는 우리가 통일한국의 새로운 한반도를 디자인할 차례다. ‘좌정우정(左情右情)’의 기치를 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