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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통일시대를 살다

영화 <인생> (1994) - 한 가족의 눈물 겨운 투쟁사 영화 은 중국이 자랑하는 감독 장예모이가 제작하고, 배우 공리가 출연한 걸작이다. 이 영화는 중국 현대사의 굴곡이 한 가족의 시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 의 주된 시대적 배경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다. 영화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아젠(공리)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후우쿠이(갈우)는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노름에 빠져 있는 한량이다. 후우쿠이는 노름을 좋아해 재산을 날리고 파산하고 만다. 파산의 충격으로 후우쿠이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화병으로 자리에 눕게 된다. 이에 후우쿠이는 과거를 뉘우치고 성실한 노동자의 삶을 살게 된다. 어찌 보면 다소 꼬인 인생일 수도 있으나,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처럼, 후우쿠이는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한.. 더보기
만약에...중국 문화혁명이 일어 나지 않았더라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1959년~1976년은 참 묘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초점은 대외보다는 대내였다. 10억 인구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주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며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고 했다. 대외무역이나 외국 자본 및 선진 기술 도입을 통한 산업화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전략을 통해 단순 임가공부터 시작해 경공업, 중화학 공업, 전자산업 등을 추진해 산업화에 길에 들어선다. 저렴한 임금의 우수한 노동력, 외자 도입, 정부의 강력한 수출 진흥책 등이 한국 경제를 키운 요인들이다. 이때 아시아에서 한국의 경쟁자는 대만, 홍콩, 싱가폴 같은 한국보다 체구가 작은 곳들이었다. 한국은 이들과 .. 더보기
‘천리마’와 ‘대약진’ 다니엘 고든의 카메라 영국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다니엘 고든(Daniel Gordon)의 작품들은 북한 사회를 세세한 면까지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든은 지금까지 세 편의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집단체조(매스게임)에 참여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 월북한 한 주한미군의 평양에서의 삶을 다룬 , 그리고 1966년 런던 월드컵에서 북한이 세계적 축구 강호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이뤄낸 당시 북한 축구단의 후일담을 담은 다큐멘터리 이다. 은 월드컵 축구 역사상 손꼽히는 장면에 드는 1966년의 북한 축구팀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의 카메라 비친 당시 북한팀의 모습은 체구는 작았지만 수준 높은 실력, 자신감.. 더보기
냉전의 시대 1950년 6월. 바로 그 시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스포츠 종목은 단연 축구이다. 규칙이 단순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고, 키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이나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다. 공과 발이 지닌 원초적인 불안전성으로 인한 팽팽한 긴장과 승리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그래서 축구는 나라, 민족, 이념, 종교를 뛰어 넘는 스포츠로 각광받고 있다. 1930년부터 4년에 한번 열리는 FIFA 월드컵은 지구촌 최대의 축구 축제이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해 1942년과 1946년에는 아쉽게도 월드컵이 개최되지 못했다. 1950년 6월 24일 오후 3시, 지구촌 남반부 브라질에서는 1938년 프랑스 대회 이후 12년 만에 FIFA 월드컵 축구대회의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 첫 경기 .. 더보기
혼돈의 세계 ‘The Great War’ 를 아십니까? 제1차 세계대전의 영어 표현은 The 1st World War이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은 The 2nd World War이다. 지금이야 이 두 번의 세계전쟁이 1, 2차로 구분이 되지만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1차 대전을 The Great War(대전쟁)라 불렀다. 1차 대전은 규모나 사용된 무기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전쟁이었다. 현대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탱크와 기관총, 참호전이 이때부터 등장했고 대량 살상무기는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 12월 크리스마스에는 영국군-독일군 사이에 세계 전쟁사에서 유래가 없었던 ‘크리스마스 휴전’도 이루어졌다. 1차 세계대전은 19.. 더보기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 찰리 채플린은 20세기를 풍미한 가장 위대한 배우 중 한 사람이다. 채플린은 사회 약자를 위해 자신의 모습을 희화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950년대 채플린은 진보적이며 사회고발성이 짙은 작품들에 출연하였다. 그 때문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에서 추방되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는 매카시즘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채플린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웃음을 주고자 했던 휴머니스트일 뿐이다. 채플린은 희극 속에서 비극을 이야기했고, 현실의 모순들을 스크린 속에 적나라하게 담았다. 채플린이 주연한 영화 (1936)는 산업화가 가져온 인간소외의 문제를 통렬하게 풍자한 일종의 ‘블랙 코미디’이다. 영화 속에서 찰리는 컨베이어 벨트 공장에서 일한다. 그의 하루 일과는 나사못 .. 더보기
‘대량생산’ 그리고 ‘인간소외’ ‘우미관’과 ‘찰리 채플린’ 일제 강점기에 경성(서울)의 문화는 일본인의 남촌(명동, 충무로)문화와 조선인의 북촌(종로)문화로 거의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당시 남촌의 거리는 식민지 수도 경성의 정치와 상업의 중심지로서 관공서, 은행, 상가, 도로 포장, 신호등, 가로등, 네온 광고판 등 근대 도시의 겉모습을 갖추고 있었지만, 북촌의 거리는 그렇지 못하였다. 북촌상가는 일제의 억압과 통제 그리고 낙후된 환경 속에서도 남촌상가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민족계 상업자본을 형성했다. 당시 김두한과 같은 협객들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들이 북촌(조선상권)을 배경으로 남촌(일본상권)에 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다. 당시 북촌인 종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관인 ‘우미관’이 있었다... 더보기
영화 <레즈> (1981) -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본 러시아혁명 급진 성향의 미국 저널리스트는 존 리드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취재하기 위해 유럽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러시아혁명의 현장을 몸으로 체험하게 되고, 1919년 그 경험담을 적은 르포르타주 문학인 을 출간한다. 배우이자 영화감독인 워렌 비티는 1981년 이 책을 바탕으로 존 리드의 격정적인 생애를 담은 영화 를 만들었다. 존 리드(워렌 비티)는 하버드대학 출신의 유명 언론인이다. 1914년 에 멕시코혁명을 보도하여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격정적인 인생의 한 복판에는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던 루이스 브라이언트(다이앤 키튼)와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열혈전도사와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사랑이 순탄할 리 없다. 루이스에게 혁명만을 꿈꾸는 존은 다소 부담스러운 상대다. 하.. 더보기
붉은 깃발 이데롤로기 갈등을 이야기 하기 전에 1910년 한국이 일본에게 강제로 병탄된 이후 공식적인 국가로서의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사라져 버렸다. 단지 임시정부와 한국인들만 있었다. 한국이 일본의 테두리 속에서 갇혀 있는 동안 세계사의 흐름도 변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의 ‘평화’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정치-경제적으로 얽혀 속으로 곪아 있던 관계가 폭발하여 결국 영국·프랑스·러시아 등의 협상국(연합국)과 독일·오스트리아의 동맹국 사이의 전쟁으로 치달았다. 평화는 깨지고 사람들은 전쟁터로 나갔다. 기관총, 탱크 같은 첨단 무기들이 이 전쟁부터 사용되어 대량 살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전쟁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러시아는 전쟁 도중 혁명이 발생하면서 전쟁에서 이탈하고 만다. 러시아 혁명의 배경을 알기 위해.. 더보기
아 ! 대한제국 벨 에포크 La belle epoque 1900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유럽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세상은 어떤 모습 이었을까? 결론부터 내리자면 정치는 안정되고 경제는 발전되고 사회는 한층 더 풍요로워지는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었던 희망의 세상이었다. 1900년대 초 유럽과 미국의 도시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것들을 둘러보며 뿌듯해했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서로 경쟁관계이면서도 세심한 외교를 통해 1871년 보불전쟁이 끝난 이후 30년간 평화를 유지하던 때였다. 대서양을 끼고 있던 유럽과 북미 대륙 모두 이런 평화와 안정이 영원할 거라고 믿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열린 파리 박람회는 그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19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