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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북한학 통일학 한사람의 인생을 건 결단과 헌신이 오늘날 북한과 통일 문제를 학문적으로 조명함에 있어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박재규 총장과 같은 분들의 헌신 위에 현재 ‘북한학’, ‘통일학’, ‘국제학’등을 통해 학문과 자신의 삶을 접목시켜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에 기여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학’, ‘통일학’, ‘국제학’은 말 그대로 북한과 통일문제를 연구하고 국제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이 세 학문은 통일과 한반도의 주변정세를 연구하는데 있어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중요한 학문들이다. 이 학문들은 학문과 학문이 만나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 나가는 학제간 협력 연구 성격이 강한 학문으로 폭넓은 교양과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 평화와 번영에 깊은 안목을 길러 주고 있다. .. 더보기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스토리 1963년 가을 마침내 나는 뉴욕에 도착했다. 우선 뉴욕 콜럼비아대학의 어학원에 입학해서 1년 간 영어와 힘겨운 씨름을 해야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웃지 못할 실수도 많았다. 슈퍼에 가서 깡통 수프(soup)를 사려고 하면 점원은 비누(soap)를 집어다 주었다. 내 발음이 ‘수프(soup)’와 ‘소프(soap)’를 구분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래도 영어가 어지간히 의사소통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즈음 나는 페에레이디킨슨대학(FDU)에 입학하였다. 전공은 국제정치학이었지만 온갖 필수과목을 택해야 하는 나로서는 코피를 흘리며 밤을 새워야 하는 날도 많았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느낌으로 헤쳐나갔다. 그래서 3년 안에 학사학위를 끝낼 수 있었다. ‘공부는 고통.. 더보기
북한 소식 이렇게 접한다. 우리가 접하는 북한 내부 뉴스는 대부분 기자들이 직접 현장에서 작성한 글들이 아니라 북한에서 간행된 자료를 인용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과 같은 경로를 통해 북한 내부 소식이 우리에게 전달된다. 1. 북한 관영 언론매체 이용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북한 자체 뉴스를 일반인등레게 공급하는 방식이다. 신문의 경우 로동신문, 민주조선, 교원신문등 북한에서 간행되는 신문들을 남한 기자들이 직접 보고 나서 그것을 다시 편집한 경우다. 1999년 북한이 위성 방송을 실시한 이후에는 방송을 직접 모니터 해서 그것을 뉴스로 내보내는 방식이다. 2. 북한 방문자 인터뷰 북한을 방문한 정부당국자, 기업인, 종교인, 사회문화 인사, NGO 관계자등을 인터뷰하거나 그들이 갖고온 각종 자료들을 인용.. 더보기
통일, 북한 관련 방송 프로그램 2000년 3월 9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의 연설에서 남북간의 화해와 경제사회적 협력에 관한 일명 ‘베를린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1970년대 중동특수 못지않은 북한특수’가 올 것이라는 정부 당국자의 장밋빛 기대를 그대로 내보냈다. 곧이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말로만 듣던 ‘북한특수’를 담은 남북교류의 비전과 청사진이 발표 되었다. 이때 발표되었던 개성공단, 남북철도연결, 관광사업등은 아직까지 열매를 보지 못한 채 걸음마 아닌 걸음마 단계를 계속 거닐고 있다. 정작 ‘북한특수’를 맞은 곳은 ‘언론’과 ‘북한 전문가 그룹’ 이었다. ‘북한 특수’에 대한 기대 심리는 국민들의 호기심을 자극 했고 북한․통일 관련 뉴스들이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다. 기자들.. 더보기
반공시대의 북한 정보 #1 1970~1980년대.. 토요일 오후에 방송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배달의 기수’가 있었다. 국방부에서 20~30분 가량의 영상물로 제작되어 일반 공중파 텔레비전의 전파를 탄 이 프로그램은 한국전쟁 당시의 국군의 활약상을 그린 미니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의 북한과 한반도 주변 정세까지 상세히 국민들에게 전해주는 반공이념에 기초한 ‘안보 교육의 종합 선물 세트’였다. 북한에 대해 적개심만 가득한 시절 국민들은 그러한 정보를 통해 북한을 인식 했다. #2 1980년대 후반 대학가(大學街).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이 지나가고 대학에 ‘북한’ 바람이 불었다. 88년 대학가의 이슈는 국민적 관심사였던 서울 올림픽이 아니라 ‘남북학생회담’의 성사였다. 이듬해인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 임수경 학생의 .. 더보기
인터넷에서 통일을 만나다. 인터넷은 어느덧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도구가 되어 버렸다. 1969년 인터넷이 탄생하고 1994년 여름 한국사회에 처음으로 상업적인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 되면서 우리의 중요한 생활양식들이 하나 둘씩 거대한 인터넷의 블랙홀로 빠져 들기 시작했다. 이메일, 미니 홈피, 인터넷 쇼핑, 인터넷 뱅킹 등 인터넷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필수 도구가 되어 버렸다. ‘북한’, ‘통일’문제도 역시 인터넷을 빼 놓고서는 상상 할 수 없다.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통일정책과 통일 관련사업들을 인터넷을 통해 공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피드백을 받는 코너를 마련하고 있다. 통일교육단체들을 사이버 공간에서 각종 아카데미 강좌를 하고 있으며 각 연구소들은 ‘북한’, ‘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물들을 인터넷에 게재하고 있다. .. 더보기
미국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미국 워싱턴 D.C National Park에 위치한 한국전 참전기념비에 가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 이를 우리말로 옮겨 보면 “ 그들이 알지도 못했던 나라, 만나보지도 못했던 국민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응답한 우리의 아들들과 딸들을 존경하며 영예롭게 여 긴다 “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과 미국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너무나도 잘 반영한 문구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한국에는 장님 코끼리 만지듯 많은 미국에 대한 견해가 존재한다. 미국을 무조건 숭상하는 숭미.. 더보기
'통일IQ'를 높이는 7가지 습관 1. 매일 매일 중보기도를 하자. 2. 핵심 사이트에 접속해 보자. 3. 검색의 달인이 되자. 4. 북한/통일 뉴스에 민감해 지자. 5. 글로벌한 시각으로 한반도 문제를 보자 6. 자원봉사와 재정후원으로 섬김을 실천하자. 7. 세미나와 포럼등에 참석해 보자. 더보기
한국전쟁 영상기록 '전쟁과 인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피할 수는 없다. - 박명림 한국전쟁 발발 57주년이 되는 2007년. 전쟁을 체험한 세대는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지고 있고 전쟁을 모르는 세대는 80%를 넘는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전쟁은 실감할 수 없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와도 같다. 그러나 전쟁의 비극적 실상을 모르고서는 진정한 평화와 상생의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풍요로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신세대에게 그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비극을 당시의 영상으로 생생하게 전하고자 한다. 전쟁의 기억은 전후세대들에게도 현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존이라는 또 하나의 전쟁! 참혹한 민간인 피해, 집중조명! 한국전쟁은 2천 5백만 인구 중 민간인 4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의 한복판.. 더보기
'초코파이'와 '한류(韓流)' 그리고 '혁명' 나는 누구일까요? 출생년도 : 1974년 몸무게 : 35g 구성 : 밀가루, 백설탕, 물엿, 계란, 코코아 분말 등 뿜어내는 열량 : 155 kcal (밥 한공기는 300 kcal) 나의 첫 느낌 : 달콤함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 : 군인 아저씨 나와 물물 거래를 하고 싶다면 : 헌혈 한번 하세요.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 정(情) 이쯤 되면 답이 생각날 것이다. 바로 국민간식 ‘초코파이’다. 초코파이는 유치원에서 경로당까지 모든 연령대의 한국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다과회, 등산, 체육대회의 간식으로 거의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또한 식사 시간을 놓쳤을 때 초코파이와 우유한잔은 식사대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우리 국민 누구나 초코파이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은 갖고 있다. 초코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