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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지슬>(2012) -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는 역사 영화 1945년 광복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 항쟁인 제주 4.3사건은 한국 현대의 아픔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주도 사람들 이외에는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못했다. 2013년 오멸 감독은 4.3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독립영화 을 제작한다. 이 영화는 제주도에서 촬영하고, 제주도 출신 감독이 연출한 '지슬'은 그야말로 제주 영화다. 영화 속 마을주민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제주도 방언을 있는 그대로 구사한다. 실제로 마을 주민을 연기했던 대부분의 배우들은 제주도 출신들이다. 그래서 한국 영화로는 아주 드물게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 자막이 나온다. ‘지슬’은 제주 4·3항쟁 속에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 더보기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2004) - 1950년 두 형제 이야기 회한과 소망의 세월 메모라이즈 | Memorize 태극기휘날리며 OST 수 많은 눈물과 아픔들이 서린 세월바람도 구름도 갈 수 없는 회한의 고향 수 많은 고통과 슬픔으로 굳어진 산하잊혀져 바래진 이름모를 내 형제들의 숨결기억하나요 그 깊은 슬픔을 기억하나요 갈라진 대지에 당당히 흘러 넘치던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염원이 거룩한 기도의 강물이 되어하나된 숨결과 하나된 믿음이 이 땅위에 가득히 넘쳐나는 그날을. 2005년 결성된 한국 최초의 혼성 팝페라 듀엣 ‘휴 HUE:’는 2003년에 개봉된 영화 OST에 가사를 입힌 노래 Memorize 발표한다. Memorize의 노래에는 분단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회한과 소망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사실 OST는 영화가 개봉 된지 10여년이 지난 지.. 더보기
영화 <쉬리>(1999) - 분단 영화의 새로운 한 페이지 강제규 감독은 1998년 영화 제작 작업에 돌입한다. 수많은 기획회의와 시나리오 집필 과정을 통해 탄생한 는 멜로 라인과 액션 라인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10억 원 안팎으로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 30억 원의 제작비와 80회의 촬영회차는 실로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영화 개봉과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1997)의 한국 관객수를 돌파하며,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록인 6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쉬리가 타이타닉을 침몰 시켰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쉬리’를 계기로 한국 영화계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영화 영화 가 개봉된 1999년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1998년 가을에는 금강산관광이 이루어졌고 1999년초에도 각종 대북지.. 더보기
영화 <신이 보낸 사람> (2014) - 가장 어두운 곳에서 피어난 희망 북한의 기독교 해방이 되던 1945년. 한반도에는 35만명의 기독교 신자가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신자의 60%인 20만명이 지금의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남한과 북한의 인구 비례가 2:1 정도 되었는데 확률적으로 전체 기독교인의 30%선 이어야 할 북한 지역의 신도수가 전체의 60% 넘었다는 것은 그 만큼 기독교가 북한 지역에 깊은 뿌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1880년대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들어오기 이전부터 조선 정부의 감시를 피해 평안도와 함경도 국경 부근에는 이미 기독교 신앙을 접하고 신자가 된 이들이 있을 정도였고 1907년에는 한국 기독교 부흥의 기원인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평양 숭실학교, 정주 오산학교, 함흥 영생학교 등 많은 기독교 정신을 바.. 더보기
영화로 통일을 읽다-공동관람구역 (저자:전병길) 이 책은 분단/북한/통일 관련 소재의 영화를 에세이로 풀어낸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한국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분단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이다. 현실이 문제이다 보니 그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왔고 그 이야기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우리나라에 분단 영화라는 독특한 장르의 영화가 시작된 것은 1940년대 후반부터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많은 분단영화들이 제작 되었고 대부분의 영화는 ‘반공(反共)’의 색채를 강하게 띄고 있었다. 한국영화에서 분단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 부터이다. 분단 영화가 일대 변화를 겪게 된 것은 강제규 감독의 (1998) 였다. 남북 분단 소재를 첩보액션물로 활용한 이 작품은 처음으로 북한 사.. 더보기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2003) - 북한 군인들의 남한표류기 남쪽으로 표류한 사람들 서해안 연평도는 북한 해안선으로부터 거리가 12㎞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서 북한 주민이 탈북하거나 조류에 떠내려 온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2011년 2월 5일 북한 주민 31명이 어선을 타고 서해 연평도 인근 우리 해상으로 넘어왔다. 이를 발견한 우리 해군은 즉시 출동해 조사한뒤 우리쪽으로 배를 예인했다. 황해도 남포에서 출발한 북한 어선에는 남자 11명, 여자 20명이 타고 있었다. 비자발적으로 넘어온 이배에 타고 있던 31명중 귀순의사를 밝힌 4명을 제외한 나머지 27명은 다시 북으로 송환 되었다. 이 같은 북한 주민의 월남은 서해와 동해상에서 종종 발생하곤 한다. 그때마다 우리 정부는 이들의 자유의사를 존중하며 북한송환 혹은 남한 잔류를 선택하게 해주고 있다. 육안으로.. 더보기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2008) - 전쟁을 겪은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노르웨이 라면왕 이철호 노르웨이는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에 있는 산과 호수의 나라요, 해운 왕국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르웨이는 인구 500만의 단촐한 규모이지만 석유가 생산되는 산유국이면서 1인당 국민 소득 10만달러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된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국가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노르웨이에는 2명이 왕이 있다는 조크를 던지고는 한다. 한 명은 노르웨이 국왕이고 또 한 명은 '라면 왕' 이철호 씨다. ‘미스터 리’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라면왕 이철호의 이름은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인간승리와 성공의 상징이기도 하다. 라면왕 이철호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요리사, 뷔페식당 사장, 식품관련 공장장 등 인간승리의 삶을 살아왔다. 머나먼 노르웨이에서 꽃핀 이철호 씨의 인생역정은 이렇게 시작한다. 농.. 더보기
영화 <고지전> (2011) -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얻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 2년간의 휴전회담 “1950년 6월 25일 평온했던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6.25 한국전쟁은 대부분 이렇게 기술되며 사람들의 고통어린 기억을 자극한다. 기습적인 공격을 받은 국군은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가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으로 38선 이북으로 북진하였지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1951년 1월 다시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 하였다가 반격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51년 여름 교착 상태에 빠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 회담이 시작된다. 휴전 회담은 마치 긴 마라톤과 같았다. 금세 타결 될 것 같았던 휴전협정은 군사분계선의 설정, 휴전감시방법 및 그 기구의 설치, 전쟁 포로 처리 등의 문제로 밀고 당기며 2년의 시간을 보냈다. 전쟁의 당사자였던 한국은 휴전 보다는 ‘북진통일’.. 더보기
영화 <적과의 동침> (2011) - 전쟁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들과의 동거 그 때 그 시절 이만희 감독의 영화 (1963)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반공영화이다. 제작된 지 5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이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만희 감독은 후속 작품인 (1964)의 몇장면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4조 1항 위반으로 구속 된다. 1964년 당시 검찰은 영화 가 “감상주의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국군을 무기력한 군대로 그린 반면, 북한의 인민군을 찬양하고 미군에게 학대받는 양공주들의 비참상을 가장 묘사, 미군철수 등 외세배격 풍조를 고취했다”며 이만희 감독의 반공법 위반 사유를 밝혔다. 검찰이 문제를 삼은 영화 속 장면은 이렇다. 북한군에 잡힌 여자포로를 겁탈하려는 중공군을 북한군 장교가 막아내는 장면에서 한 여자포로가 그 북한군 장교에 대해 “참 멋진 남자야... 더보기
영화 <태풍>(2005) - 버림받은 자의 분노 아름답지 못한 핵(核) 무기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시(詩) '진달래 꽃' 한 구절이다. 김소월은 서른 두 살의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엄마야 누나야', '금잔디', '산유화' 등 향토색 넘치는 글의 향기를 남겼다. 소월에게 고향 평안북도 영변의 뛰어난 풍광은 아름다운 시를 읊는 훌륭한 터전이었다. 하지만 소월이 그토록 아름다워 했던 영변은 지난 20여년간 국제 사회를 긴장 시킨 ‘북한 핵(核)’ 문제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소련과의 협정을 통해 원자력 기술연구를 해왔으며, 1987년부터 평안북도 영변에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등 원자로 건설과 농축우라늄 개발을 본격화해왔다. 그러다 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