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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크로싱>(2008) - 살기 위해 헤어지다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 외톨이 신세가 된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전 북한은 소련 등으로부터 국제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진영이 사라지만서 ‘사회주의 우호 가격’이라는 그들만의 시장 거래가 사라지고, 구 사회주의권 나라들도 자본주의 질서 하에 국가 시장가격에 따라 원자재와 물품을 거래하게 된다. 사회주의 우호 가격 시스템의 붕괴는 북한 경제를 회생 불능의 상태로 빠져 들게 했다.


고난의 행군시기로 알려진 1990년대 중반 북한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원자재의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발생한 생산의 부진은 다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수출상품의 생산 부족으로 이어졌다. 이는 다시 외화의 부족으로 이어져 석탄, 석유, 곡물 등의 원자재 난을 불러오는 악순환을 촉발했다.


북한은 개방과 고립의 갈림길에서 결국 고립을 택하게 된다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을 주장하며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차별화를 선언한다. ‘우리식 사회주의’는 ‘조선민족의 사회주의’이고, 다른 국가와 다른 민족과는 다른 차원의 사회주의로 절대 외부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속사정은 북한 주민들이 동요하고 결속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내세웠지만 극심한 경제난으로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아사자(餓死者)와 식량을 구하기 위해 국경을 넘는 탈북자가 급증하였다.



영화 <크로싱>


1990년대 중반 북한에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아사자(餓死者) 속출하자 많은 북한 주민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갔다. 이들은 다시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중국 전역으로 흩어졌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중국과 접한 제3국의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왔다. 이들이 국경을 넘어 자유의 땅으로 넘어가는 것을 ‘크로싱’(Crossing)이라 한다. 2008년 김태균 감독은 탈북자들의 삶을 그린 영화 <크로싱>을 제작했다. 영화 <크로싱>은 한 가족의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인차 다녀올게. 다녀 올때 우리 준이 축고 볼도 사오고 신발도 사올게. 우리 준이 엄마 잘 돌볼 자신있지?” (탈북하기 직전 용수가 아들 준에게)


2007년, 북한 함경도 탄광마을의 세 가족 아버지 김용수(차인표), 어머니 용화(서영화) 그리고 열 한 살 아들 김준(신명철)은 넉넉하지 못한 삶이지만 함께 있어 늘 행복하다. 어느 날, 엄마 용화가 쓰러지고 폐결핵이란 사실을 알게 되자 아버지 용수는 중국행을 결심한다. 고생 끝에 중국에 도착한 용수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게 되지만 중국 공안에 발각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용수는 간단한 인터뷰만 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베이징 주재 외국공관에 잠입하지만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국으로 오게 된다.


“저기 보이는 저 언덕을 따라 꿋꿋이 올라가다 보면 중국 철조망이 보일겁니다. 그러면 떼까닥 철조망을 넘으시오. 일단 철조망을 넘으시면 이짝에서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중국-몽골 국경에서 탈북 브로커)


한편 용수가 떠난 뒤, 아내 용화는 병세는 악화되고 결국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11살 아들 준이는 무작정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용수는 한국에서 브로커를 통해 준이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되고 준이와 용수의 만남이 시도된다. 극적으로 용수와 아들 준이는 전화 통화를 하게 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준이는 중국-몽골 국경에서 ‘크로싱’을 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그리고 용수는 절규한다. 아버지 용수와 아들 준이 간절한 약속은 안타까운 엇갈림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아버지가 너무 늦게 와 미안하다 준이야” (용수가 아들 준의 시신을 안고)


영화 <크로싱>의 주제는 지극한 가족 사랑이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북한 체제에 대한 분노를 일으킨다. 영화 <크로싱> 주인공 용수를 통해 가족이 없는 남한에서의 풍요로운 삶은 큰 의미가 없을 알려준다. 가족들에게 줄 비타민제를 사들이던 용수는 아내의 죽음을 전해 듣고 이렇게 목이 메어 말한다.


“예수님은 어떻게 남조선에만 계십니까? 예수님은 부자 나라에만 사십니까?”


이 말은 주인공 용수의 절규이자 ‘왜 말로는 동포 사랑을 외치면서, 정작 실천은 하지 않느냐’는 강한 메시지이다. 아내를 살리기 고향과 가족 품을 떠나야 했던 용수에게 정치적 수사로 가득한 분단과 통일의 이야기는 큰 의미가 없다. 영화 <크로싱>은 우리에게 통일의 시간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전에 최소한의 인간의 기본권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북한의 불합리한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것을 권하고 있다.



북한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이념의 철옹성과 같은 북한에도 변화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의 미래를 이야기 할 때 마다 언급되는 것은김정은 체제가 지속가능할 것인지와 북한 핵문제 해결 등 지금 당면한 문제들이다. 북한 체제는 단 1년 아닌 수개월 앞도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다. 남한 정부도, 북한 전문가도, 언론도, 모두 북한 최고 지도자들의 정치적인 리더십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설사 김정은의 리더십이 굳건해 지고 핵을 통해 나름의 이익을 계속 취하더라도 북한 체제는 10년 안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은 과거처럼 중앙의 절대 권력이 강력한 정보 통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묵인 아래 곳곳에 장마당이 성행하고, 수시로 중국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거와 같은 정보 통제가 힘들다는 것을 북한 당국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전과 다른 다양하고 새로운 현상들이 북한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에 부는 ‘한류’ 문화 현상이다. 한류 문화 콘텐츠는 중국-북한을 거치는 유통구조가 반영돼 북한 내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더 이상 북한에서 만든 자체 콘텐츠는 북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한다.


또한 10년 뒤 북한의 위기는 내부 ‘인구’에 구성의 변화에도 있다.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08년 북한 인구센서스를 통해 본 북한 보건지표 평가'에 따르면 2008년 북한의 인구 연령분포를 보면 경제적인 형편이 비교적 좋았던 1960년대 초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인구는 많은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출생자는 적은 편이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성장기에 나라가 경제적 위기를 맞아 영양 상태가 좋지 못하고 과거 세대만큼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 2020년이 되면 북한 체제의 전성기인 1960년대에 태어나 안정적인 시스템에서 양육된 이들이 50~60대에 이르게 된다. 이들 역시 북한 체제에서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성장기 때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성장기에 제대로 먹지도, 교육받지도 못한 이들의 첫 세대인 1980년대 출생자들은 30~40대가 되어 나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엘리트층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안정되게 커왔겠지만 그 이외의 계층은 이전 세대와 확연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절대 인구가 부족해져 군대, 공장 같은 북한 운영에 필요한 각종 일터에 사람이 부족한 시대가 도래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인구마저 성장기 때에 영양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이들이 많아 사회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 사람이 없는 인구난과 양질의 인적 자원 부족이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적으로 북한은 2012년 군대 입대 자격이 되는 신장의 하한선을 145cm에서 142cm로 낮췄다. 2012년 군 입대 대상자는 1995년생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시점이다. 남한에서는 11-12세 어린이의 평균 신장이 이미 145cm를 넘어섰다.


지금 북한에게 남은 것은 ‘허울뿐인 체제에 대한 자존심’, ‘핵 기술’ 그리고 ‘평양’이라는 우리식 사회주의 상점의 쇼윈도(Show Window) 뿐이다. 그 이외에는 없다. 외화난, 에너지난, 식량난, 원자재난에 이어 향후 인구난까지 예상된다. 북한의 다음세대는 지금 보다 형편이 여러모로 더 열악할 것이다. 북한은 지금 새로운 사회를 위한 디자인이 필요한 때다. 그 디자인의 핵심은 사람에 대한 ‘존중’에 있다.



이제 그들을 위해 함께 울자.


영화<크로싱>에 출연한 배우 차인표는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을 했다. 배우로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 같지 않았고, 대본과 감독, 프로듀서만 있는 상태에서 과연 투자를 받아 만들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대본을 읽은 뒤에 ‘탈북자’라는 단어는 서서히 그에게 스며들었고 그렇게 ‘크로싱’과의 인연이 시작 되었다. 차인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북한 함경북도 청진역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의 사진 한 장 이었다. ‘이 아이가 죽기 전 누구의 도움을 바랐을까?’, ‘나는 살아오면서 과연 무얼 했나?’ 물음을 던지며 영화 <크로싱>에 출연하게 된다.


<크로싱>은 소위 말하는 대박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탈북자 문제의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차인표는 친분이 있는 연예인들과 함께 북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노래 Cry with us 발표한다. 이 앨범에는 가수 원더걸스, 인순이 등이 참여했고, 차인표가 직접 노랫말을 만들었다. 이들이 음반을 발표한 이유는 단 하나 그들과 함께 울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