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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영화 <길소뜸> (1986) - 핏줄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현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83년 6월 ‘KBS 한국방송’은 텔레비전을 통해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중에 흩어진 가족을 찾는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이산가족이 몰려들었고 이후 KBS는 모든 정규방송을 취소한 채, 세계 방송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이산가족찾기' 릴레이 생방송을 진행하게 된다. 이 방송은 78%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고 138일 동안 총 453시간 45분 방송됨으로써 단일 주제 생방송 기록을 남겼다.


이산가족 찾기는 1970년대 초반부터 신문이나 라디오 등을 통해 간간히 진행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1983년처럼 대중적인 폭발력을 가지지는 못했다. 신문은 활자 매체의 한계가 있었고 라디오는 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정보제공이 되지 않아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가족 확인이 어려웠고 어디에선가 정보를 접해도 확인이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83년 이산가족 찾기는 경제 성장으로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방송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민들 가슴속에 맺혀있던 한을 조금 이나마 풀어주었다. 1983년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천 달러 수준이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 한 세대 전 잃어버린 가족을 찾고자 하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또한 1983년 텔레비전 보급률이 82.5%에 달해 전 국민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1983년 KBS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통해 총 10만 952건의 신청건수가 접수되어 1만 180여 가족이 헤어진 혈육과 상봉했다. 만남을 이룬 모든 가족의 이야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이산가족들의 사연은 방송을 타고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영화 <길소뜸>


이산가족 상봉은 감동의 스토리였지만 그 이면의 곳곳에는 ‘현실’의 문제들이 있었다. 전쟁 중 헤어진 부부가 각기 재가를 해 다시 만난 경우도 있었고 30여년간 헤어진 뒤 다시 만난 형제들이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활환경에 소원한 관계가 된 경우도 있었고 재산 등의 문제로 갈등하는 일도 발생했다. 1985년 한국 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이산가족의 상봉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고 그들의 상봉이 또 다른 혼돈의 시작일 수 있다는 인식을 담은 영화 <길소뜸>을 제작한다.


‘이산가족 찾기 운동’ 뜨거웠던 1983년, 황해도가 고향인 화영(김지미)은 이산가족 상봉의 순간들을 보며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다. 현재 남편과 자녀 셋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화영에게는 한국전쟁 통에 헤어진 연인 동진(신성일)과 아들 성운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의 남편(전무송)은 화영에게 헤어진 가족을 찾아 볼 것을 권한다. 지난 기억을 되새기며 방송국 주변을 맴돌던 화영은 대형 TV 화면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찾고 있는 춘천의 한 사내(한지일)의 모습을 보게 되고, 아들 성운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사로잡힌다. 춘천의 그 사내를 찾던 중 우연히 옛 연인 동진과 마주친다. 화영과 동진이 다시 만나 서로를 알아보면서 영화속 이야기는 30여년전으로 되돌려 진다.


황해도 길소뜸이 고향인 화영(아역 이상아)은 어릴 적에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부모와 동생을 모두 잃고, 아버지의 친구 집에 양녀로 입양된다. 그곳에서 화영은 의붓 오빠인 동진과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갖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진의 집안은 발칵 뒤집어져 화영은 강원도 춘천 이모 집에 보내지고, 이후 병환이 심해진 아버지의 청에 따라 동진은 화영을 데리러 간다. 뜨거운 여름날 더위를 무릅쓰고 춘천에 도착한 동진은 화영이 아이를 낳으러 길소뜸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바로 이날 한국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진과 화영은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춘천에서 아들 성운과 함께 살던 화영은 옛날 음악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힘겹게 살아간다. 하지만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 뜻하지 않게 10여년의 옥살이를 하게 되고 아들 성운과도 헤어지게 된다. 화영의 옛 연인 동진 역시 화영을 잊지 못한 채, 화영과 아들을 찾아 헤맸지만 이들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30여년이 흘러 이들은 각자 가정을 이루었으나 옛일과 옛 사람에 대한 기억은 가슴속의 아련함으로 남아 있다.


화영과 동진이 살아온 지난 세월의 간극은 서로를 기쁘게 만은 하지 않았다. 어색한 만남 속에서 살아온 얘기를 해오던 이들은 헤어진 아들 성운 일 것만 같은 그 사내를 만나기 위해 함께 춘천으로 간다. 석철이란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내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하루하루 막일로 살아가고 있다. 화영은 석철이 아들 성운이라고 본능적으로 느끼지만 그의 생활고에 찌든 모습에서 전해지는 이질감에 당황한다. 또한 물질적인 도움을 노골적으로 표시하는 석철과 그 가족들에게 환멸감마저 느낀다.


친자 확인을 위해 춘천의 대학병원에서 피검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동진은 그 사내가 아들인 것이 증명되면, 친자로 호적에 입적하겠다고 말해 평화롭던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피검사에서 친자임을 부정할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의사의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화영은 이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오랜 세월 계속된 삶의 간극은 천륜(天倫)인 모자관계 마저도 부정하게 만들었다. 동진과 화영 그리고 석철. 전쟁이 아니었으면 부부로 그리고 부모와 자식으로 살았을 이 세 사람은 서로의 연락처마저 남기지 않고 각자의 발걸음을 돌린다. 냉정하게 친자임을 거부했던 화영은 서울로 돌아가던 도로에서 순간 운전하던 차를 멈추고 핏줄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한다.



그래도 다시 만나야 한다.


영화 <길소뜸>은 이산가족이 격동의 시대 속에서 겪은 이별과 재회, 반복되는 헤어짐을 통해서 분단의 비극은 전쟁이 끝난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차분히 이야기해 준다. 우리나라의 이산가족 문제는 식민지와 분단, 전쟁이 남긴 가슴 아픈 유산이다. 


개인과 가족의 헤어짐이 자의(自意) 보다는 민족사의 소용돌이에서 비롯했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나라에선 보기 어려운 '한국형 이산가족'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땅에 대규모 이산가족이 생긴 것은 해방 이후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다. 정부가 규정하고 있는 이산가족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즉, 8.15 이후 38선을 경계로 가족.친지의 왕래가 단절된 사람, 한국전쟁으로 월남 또는 월북해 가족과 헤어진 사람, 국군포로·납북자 등이다.


KBS 등 언론기관이 70~80년대에 전개한 이산가족 찾기운동은 남한 내 이산가족들의 상봉을 1만건 이상 이나 성사시켰다. 그러나 남과 북에 흩어져 있는 이산가족 문제는 제대로 풀지 못했다. 1985년 사상 첫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이후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가물에 콩나듯 아주 간헐적으로 이루어졌고 상봉 가족수도 전체 이산가족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지금 고령인 이산가족 1세대들은 갈수록 조바심이 가득하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이생에서는 헤어진 가족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제 남북은 더 늦기전에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만약,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남북은 ‘형제지간’에서 머지않아 ‘사촌지간’이 되 버릴지도 모른다.


과거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산가족간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동서독은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 극복 수단으로 개인간 상호왕래가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1972년 동서독간 기본조약 체결 이전부터 이산가족의 상봉을 허용했다. 1947년 이후 서독인 8명 중 1명이 정기적으로 동독을 방문했으며 5명 중 1명은 편지·소포를 교환하는 등 교류가 이어졌다. 지속적인 이산가족 교류가 동서독간 신뢰형성에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의 지도자들이 인도적인 입장에서 큰 결단을 하고 다소 불편하고 답답해고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국민정서를 가질 때에만이 지속가능하게 이루어 질수 있다. 지금 남북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 보다 자주 만나 대화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 (통일음반 프로젝트 - 통일염원 LOVE 中에서)


수 없이 계절은 바뀌어도 변치 않는 단 하나

그대를 향한 내 그리움 그리워 너무 그리워

우리의 이별은 너무 길다 이젠 만나야만 한다

서운한 마음은 모두 잊자 우리는 하나니까

우리의 소원은 단 하나 다시 만나야만 한다

너와 나 두 손 꼭 잡고서 기쁜 노래를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