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이 만들어낸 경계와 두려움의 대명사, ‘간첩(間諜)’
한국 사회에서 ‘간첩(間諜)’이란 말 만큼 경계심과 두려움을 자아내는 단어는 없다. 간첩은 분단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단어이지만 같은 한자문화권인 중국과 일본 사람들에게는 그리 익숙하지가 않다. 間諜(간첩)은 間(간)과 諜(첩)의 합성어로 두 글자 모두 스파이를 의미한다. 間은 門 틈 사이로 빛(日)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모습에서 '사이 → 사이를 엿보다 → (엿보는) 첩자' 등을 뜻한다. 諜(첩)은 言(말씀 언)과 枼(목간조각 엽)의 합자이다. 목간조각은 곧 牒(첩)이고 牒은 명부 또는 관청의 공문서를 의미한다. 명부나 공문서는 적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보이다. 따라서 諜(첩)은 나라의 정보(牒)를 적에게 발설하여(言) 넘겨주는 이인 간첩을 뜻한다.
간첩이란 말이 적지에 잠입하여 동정이나 정보를 정탐하는 사람의 의미가 있게 된 것은 춘추시대 손무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 부터이다. <손자병법>에는 다섯 가지 간첩이 나온다. 첫째 연줄이나 동향을 이용, 적정(敵情)을 탐지하는 인간(因間), 둘째 적의 관리를 포섭, 간첩으로 이용하는 내간(內間), 셋째 적의 간첩을 역이용, 아군 간첩으로 쓰는 반간(反間), 넷째 목숨을 걸고 적지에 잠입, 허위정보를 주는 사간(死間), 다섯째 사간처럼 적지에 잠입, 용케도 생환해 적정을 보고하는 생간(生間) 등이다. 사실 분단국가에서 간첩을 심어놓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독일만 봐도 1974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를 사임하게 한 그의 동독 간첩 출신 비서 군터 기욤 사건 있었다. 비서 기욤은 미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브란트에게 보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 전략에 관한 친서들까지 포함된 비밀문서들을 통째로 동독에 넘겨줬다.
한국 사회에도 그동안 적지 않은 간첩과 간첩단 사건이 있었다. 한국전쟁 직전 발생한 엘리트 미녀간첩 김수임 사건에서 부터 최근의 위장 탈북자 간첩 사건까지 각 시대마다 다양한 유형의 간첩이 있었다. 이들의 활동은 각종 정보수집에서부터 요인 암살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들의 위협적이면서도 대담하고 비밀스런 행동에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남북관계를 다룬 영화중에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적지 않다. 그동안의 간첩 소재 영화들은 주로 긴박한 상황 속에 남북이 대결하고 갈등하는 구도를 그리고 있었다. 적어도 2010년 영화 <의형제>가 나오기 전까지 그랬다.
영화 <의형제>
장훈 감독의 영화 <의형제>는 기존 간첩 영화와는 달리 북으로부터 버림받은 간첩, 남한에서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생계형 간첩의 이야기를 시대 상황에 맞추어 풀어 내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여느 첩보 스릴러물과 같다. 영화 속 현재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6년전 서울 한복판. TV에서 가수 남궁옥분의 노래 '재회'가 흘러나오자 두 남자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한 남자는 북한을 등지고 전향한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다른 한 남자는 그 '간첩'을 잡기 위해 움직인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지 못한 남파 공작원 송지원(강동원)은 조직으로부터 버림받고, 남파 공작원 검거에 실패한 이한규(송강호)도 국정원에서 파면된다.
그리고 6년 후, 이한규는 국제결혼을 한 후 도망다니는 동남아 신부를 찾아 데려다주고 돈을 받는 ‘흥신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어느 날 한 건축공사장에서 6년 전에 놓친 남파공작원 송지원과 조우하게 된다. 둘은 첫눈에 상대를 알아보지만 서로의 정보를 빼내려고 신분을 숨긴다. 이한규는 그를 이용해 간첩단을 잡아 포상금을 얻을 생각으로 그리고 송지원을 그를 활용해 생계를 꾸리며 북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싶어한다. 이후 그 둘의 숨막히는 심리전이 시작된다.
아직도 이한규를 국정원 요원인 줄 알고 있는 송지원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북에 보고하고 그의 동태를 주시한다. 이한규도 역시 송지원을 주시하며 다른 간첩단과의 연락을 주시하며 검거시기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한규는 송지원을 추적하던 중 그가 북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그를 보며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이한규는 처음부터 송지원을 그런 목적으로 불러들였다는 것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서로 의심의 골은 깊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의형제’처럼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송지원과 함께 일하던 공작원이었던 암호명 ‘그림자’가 남한으로 내려와 마지막 기회라며 송지원에게 작전을 지시한다. 같은 시각, 국정원 요원들은 송지원과 그림자를 추적하고 있다. 송지원의 시계에 위치추적장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한규가 송지원을 찾아가 빨리 시계를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그림자가 이한규를 총으로 쏘려는 순간 송지원은 어쩔 수 없이 이한규를 살해하는 시늉을 낸다. 마지막 지시였던 전향한 남파공작원에 대한 암살 지시를 송지원이 따르지 못하자 그림자가 직접 행동에 옮긴다.
그리고 그림자가 송지원을 제거하려 하지만 의형제 이한규가 죽음을 무릅쓰고 송지원을 구해낸다. 이후 이한규는 간첩을 잡은 공로로 거액의 현상금을 받게 되고 다시 정보 요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느 날 이한규에게 '영국에 있는 가족들이나 만나라'는 송지원의 편지와 함께 런던행 비행기 티켓이 배달되고,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이한규는 비행기에서 송지원과 그의 가족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영화 <의형제>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엘리트 간첩, 정수일 이야기
간첩은 액션 영화 속 스파이 처럼 건장하고 싸움 잘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간첩이야기들 중에 1996년에 적발된 ‘교수 간첩 무하마드 깐수 (본명 정수일) 사건’이 있었다. 1996년 7월 국가안전기획부(현재의 국가정보원)은 "단국대 무하마드 깐수 교수가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고 밝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던 특급 스타 학자였다. '레바논 출신' 역사학자로 책 '신라-서역 교류사'를 내놓아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학계는 깐수 교수가 '아랍인 학자'의 눈으로 한반도-이슬람 교류를 본격 연구해낸 데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깐수가 이야기해왔던 '필리핀 태생', '아랍인 학자'는 처음부터 거짓말이었다. 원래 이름이 정수일인 깐수는 함경도에서 북간도로 흘러간 유랑민의 아들로 중국 옌볜에서 태어나 베이징대학을 졸업했다. 중국에서 25년, 북한에서 15년을 살았고 다른 나라에서 10여년을 보내며 국적을 세탁한 뒤 1984년 한국에 들어왔다. 남파간첩 깐수는 선거 정세 분석, 군사장비 도입 같은 수집정보를 주로 호텔의 팩스를 이용해 북에 보고했다. 그는 북한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구속된 깐수는 1997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다. 2000년 여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 2003년 사면·복권됐고 대한민국 국적까지 얻었다. 2007년엔 보호관찰처분을 벗었다. 재판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생활체험을 통해 전향의사를 명백히 하면서 잘못을 뉘우친 점", "출소 후 제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인정했다. 오랜 생활 국적을 세탁하고 아랍인 ‘무하마드 깐수’ 행세를 하던 간첩 생활을 청산하고 대한민국 국민 정수일로 다시 태어났다.
정수일은 이후 연구에 매진 80세가 가까운 나이에 14세기 아시아를 두루 여행하고 책을 쓴 이탈리아 수사(修士) 오도릭의 ‘동방기행’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사실 정수일 박사는 동양어 7종과 서양어 5종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꿈도 아랍어를 꿀 정도의 언어실력을 갖고 있으며 국내 '동서문명교류사'와 '아랍 이슬람학' 분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가이기도 하다. 만약 분단이 없었다면 정수일은 연구에 더욱 매진하여 지금 보다 진일보한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렇든 분단은 사람의 삶을 힘들게 하고 아픔을 주었다.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1996년 교수 간첩 깐수가 체포될 당시 같이 살던 깐수의 아내도 남편이 남파간첩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정수일의 이름을 되찾고 교도소에서 틈 나는 대로 아내에게 글을 썼다. "나를 잊어주오"라는 절규를 아내는 "당신을 기다리겠다"는 사랑으로 감쌌다. 이 옥중 편지들은 2004년 책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로 출간되기도 했다. 정수일은 이 책에서 간첩활동을 위해 아내를 속였던 과거를 참회했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정갈한 문체로 표현했다. 어쩌면 정수일에게는 이념, 혁명, 간첩 이런류의 단어 보다 가족간의 사랑과 학문에의 열정이 더 운명적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이념의 수레바퀴 속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돌아서면 누구의 남편이요 스승이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사람의 가장 기초적인 감정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정수일 역시 돌아가야 할 곳은 바로 가족과 가족과 같았던 학계였다.
영화 <의형제> 역시 마지막 부분에 가족을 이야기한다. 간첩 잡는 남한의 국정원 직원과 '전향한 배신자를 처형하는' 북한의 공작원 역시 가족이 있고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영화 <의형제>는 분단 역시 결국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소소한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영화는 남과 북의 요원이지만 가족을 부양하거나 걱정해야 하는 두 남자의 안타까운 처지를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가족 같은 동료가 죽었어요. 하지만, 진짜 가족은 먹여 살려야 하잖아요"라는 영화 속 이한규의 대사는 이런 분위기를 집약해 전한다. 가장의 어깨가 무겁다는 점에서 남과 북의 남자들은 다르지 않다. 영화 속 이한규와 송지원도 현실속의 교수 간첩 깐수 정수일도 다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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