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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영화 <만남의 광장> (2007) - 땅 속에서 이루어진 마을 사람들의 속삭임






대형 태극기(太極旗)가 있는 대성동 마을


경기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군사분계선을 바라보면 초대형 태극기와 인공기 마주하고 있다. 남측의 대형 태극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서남쪽 바로 옆에 있는 남측 비무장지대(DMZ) 내의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인 대성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대성동 마을에서 군사분계선 까지는 대략 400미터 정도로 이곳에는 약 200여명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다.


해방 직후 이곳은 행정구역상 경기도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 대성동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이전까지 대성동과 그 주변은 한적한 한국의 농촌 마을이었지만 전쟁 기간에는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전선의 교착점이었다. 1951년 대성동은 정전회담이 열리던 판문점 근처라 다행히도 그러한 교전에서 제외되어 일반인들의 거주가 가능했다. 군사분계선 넘어 북측 비무장지대의 마을로는 기정동 마을이 이곳과 똑 같은 이유로 민간인 거주가 가능하다. 이 두 마을사이의 거리는 800미터에 불과하다.


대성동 마을은 대한민국정부가 아닌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하에 있다. 이는 '정전협정' 제1조 10항 "비무장지대 내의 군사분계선 이남의 부분에 있어서의 민사 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이 치외법권지대는 아니며, 대성동 주민이 범법 행위를 하면 일단 대성동에서 추방되는 형식을 거친 후,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여 규제를 받는다. 또 대성동 주민은 참정권과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갖는 면은 다른 지역의 국민들과 같으나, 국방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는 면제받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대성동 마을 주민 대부분은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데 여기서 나는 농산물은 청정 자연환경에서 재배돼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마을 주민의 평균 소득은 7,000~8,000만원 정도 수준으로 한국 중산층의 평균을 상회할 정도다. 하지만 주민들이 마을을 장기간 떠나 있을 때는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매일 저녁 호구 조사를 받는 등 생활면에서 각종 제약을 받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북한과 가까운 지역에 농사를 지으러 나갈 때는 반드시 경호를 위해 군인들과 동행해야 한다. 또한 수십 년 농사를 지어도 땅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으니 주민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북쪽과 물리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가까이 있으나 접촉할 수 있는 틈새 조차 허용 되지 않는 곳이 바로 대성동 마을이다. 설사 그러한 만남이 있다 할지라도 주변의 촘촘한 경계의 눈에 포착되어 신속하게 처리 되는 것이 그곳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남측 대성동과 북측의 기정동 마을 사람들이 몰래 지하에 굴을 파 놓고 내통(?)을 하고 있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현실상으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미 영화 속에서는 실현 되었다.



영화 <만남의 광장>


분단 상황을 풍자한 김종진 감독의 영화 <만남의 광장>은 블랙코미디 영화다.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자신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을 해야 했던 가족들의 만남을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맛깔나게 풀어낸고 있다. 1953년 어느 날 강원도의 어느 작은 마을 청솔리 언덕에 군인들이 찾아와 철책을 세우기 시작한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뭐하는 거야? 어쨌든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주자"며 일손을 거든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막아선다.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형은 북쪽으로, 동생은 남쪽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이 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뉜 청솔리 주민들은 만남을 위해 땅굴을 파게 되고, 그로부터 30년 뒤에 벌어지는 소동이 영화속에 그려진다.


1980년 어느날. 평화롭지만 웬지 수상한 청솔리 마을 학교에 선생 공영탄(임창정)이 부임하게된다. 영탄은 원래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고지식한 성품의 섬마을 청년이었다. 청운의 꿈을 좇아 부모의 가산까지 털어 서울로 상경한 그는 어수룩해 보인 탓인지 서울역에서 돈이 든 가방을 강탈당하고 만다. 애꿎은 행인을 넘어뜨려 도둑을 잡기는커녕 경찰서에 잡혀온 그는 ‘교육대’라는 단어에 솔깃한 나머지 삼청교육대에 자진(?)하는 지경에 이른다. 갖은 어려움을 겪던 중 대열에서 이탈해 멱을 감는 선미(박진희)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마을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청솔리 마을에 도착해서는 ‘삼청교육대’를 ‘교육대학’으로 잘못 이해한 사람들 덕에 새로 부임한 교사로 오인 받아 얼결에 교단에 서게 된다. 실은 원래 마을학교에 부임하기로한 교사(류승범)는 청솔리로 오던 중 길을 잃고 산속에서 지뢰를 밟은 상태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중이다.


우연찮게 꿈에 그리던 교편을 잡은 영탄은 밤중에 마을을 돌아다니다 꿈에 그리던 선미가 이장과 은밀히 만나는 것을 보고 의심을 품는다. 알고 보니 선미는 이장의 처제.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선미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를 꺼린다. 더 더욱이 선미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란다. 도대체 어떤 영문인가? 실은 선미는 남쪽 청솔리가 아닌 북쪽 청솔리 사람이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에게도 수상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영탄은 의혹에 휩싸인 채 마을 곳곳을 뒤지면서 주민들의 비밀을 캐기 시작한다.


청솔리 마을에 휴전선이 생기면서 마을이 반쪽으로 나뉘었지만 남북으로 갈린 마을 주민들은 핏줄의 끈을 놓지 못해 땅굴을 통해 여전히 30여년째 소통하고 있었다. 집요한 추적 끝은 영탄은 이들의 실상을 알아 버렸고 ‘그들만의 비밀’을 알아버린 영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마을 사람들은 고민하게 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영탄과 선미를 결혼 시켜 영탄을 ‘그들만의 리그’에 합류 시키려한다. 우여곡절 끝에 영탄과 선미는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하지만 남북 청솔리를 잇던 땅굴의 운명도 곧 끝날 조짐이 일기 시작한다.


청솔리 마을 주민들의 행동은 남북 모두의 군대로부터 서서히 의심을 받기 시작하고 이윽고 남북의 주민들이 땅굴에 모여 큰 할머니(김수미)의 칠순잔치를 하게 되었을 때 30년간 은밀하게 진행된 그들만의 잔치는 끝을 맺게 된다.



진정한 ‘만남의 광장’을 꿈꾸며


남북으로 갈라진 마을에서 은밀하게 진행된 사람들의 만남은 결국 북쪽 마을 사람들이 남으로 내려오고 본인들의 의도와는 달리 북에 남은 주인공 영탄과 선미도 시간이 흘러 탈북하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남으로 넘어온 이들이 외딴 섬으로 가게 되는 좀 생뚱 맞은 설정도 있지만 영화는 어찌했든 해피엔딩에 가깝다. 실제로 남북이 마주하고 있는 마을 대성동과 기정동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적막함 속에 긴장이 흐르고 있다. 한국전쟁 이전 이곳은 경계가 모호한 시골이었다. 같은 개성 생활권으로 마을 사이에 왕래도 잦았다. 마을을 오가며 농사와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거나 팔기도 하고 빌리기도 했다. 그리고 두 마을 처녀 총각 사이에 혼례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명확한 경계와 보이지 않는 대립과 경쟁이 가득하다. 1997년에는 마을 주민 2명이 도토리를 줍다가 북한군에 납치돼 닷새 만에 풀려난 적도 있었다. 분단선이 철책으로 명확히 표시된 게 아니어서 주민들도 늘 마음을 졸이며 영농활동을 한다. 대성동 마을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같은 남북 간 군사 대치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출입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마을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흐른다.


대성동 마을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에는 158m의 인공기 게양대가 있다. 남북은 두 마을에 게양대를 설치한 뒤 경쟁이라도 하듯 게양대 높이를 점점 높여왔다. 대성동 마을의 국기게양대도 99.8m로 국내에서 가장 높지만,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 게양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높이를 자랑한다. 이 게양대에 달린 인공기는 가로 30m, 세로 15m다. 대성동 마을 국기게양대의 태극기는 가로 18m, 세로 12m로 성인남성 2명이 들어가 누울 수 있는 크기다. 워낙 큰데다 바람으로 마모가 심해 2~3달에 한 번씩 갈아줘야 한다. 한번 갈아주는데 200만원이 든다. 북한 기정동 마을 인공기 게양대는 이 보다 더 많은 품이 필요하다.


대성동 마을에는 학교가 하나있다. 바로 대성동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지금 파주시 학부모들이 가장 보내고 싶은 학교로 손꼽힌다. 이 학교는 학생 30명에 교사 25명으로 1대1 과외가 가능한 선진형 학교다. 졸업생들은 경기도 내 국립학교 중 어디든 원하는 곳을 택해 갈 수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소속 미군들은 주 2~3회 이 학교를 방문해 직접 학생들에게 영어 과외도 해주고 있다. 대성동 초등학교는 한때 전교생이 10명을 넘지 못하면서 폐교 위기를 겪다 정부 지원으로 발돋움했다. 이미 다른 지역 같았으면 폐교가 되었을 법 하지만 대성동 마을이기에 존속할 수 있었고 미군의 도움을 받아 영어 특기교육까기 실시하며 도시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어쩌면 대성동 초등학교는 분단이 낳은 또 따른 모습이기도하다.


오늘도 남한의 최북단 마을, 북한의 최남단 마을 아니 남북이 만나는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는 긴장과 경쟁이 계속 되고 있다. 언제쯤 다시 올 수 있을까? 대성동 마을 사람들이 산속에서 도토리를 자유롭게 줍고 윗마을 기정동 사람들과 편안히 만날 그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