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가을, 이승만 정권 말기의 3·15 부정선거, 이 대통령의 하야와 망명, 이기붕 일가의 집단자살 등 4․19 혁명을 다룬 정치성이 짙은 영화 <잘 돼 갑니다>가 촬영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김지미(박 마리아), 장민호(이기붕), 박노식(조병옥), 허장강(최인기 내무장관), 김희갑(이발사) 등 당대 일류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이화장(이승만 생가)과 조병옥 생가 등 역사의 현장에서 촬영이 이루어졌으며, 이승만 대통령과 닮은 배우를 찾기 위한 공개 오디션을 하는 등 최고의 배우들과 정부 당국의 적극적인 촬영 협조로 영화는 흥행 성공이 예고되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68년 1월 30일 촬영이 끝난 후, 이 영화는 정치 세태를 풍자했다고 해서 오랫동안 상영이 보류됐고 20년 후인 1988년에 와서야 상영금지가 풀렸다. 어수선한 시국에서에서 대통령 전용 이발사는 대통령에게 “잘 돼갑니다.”와 “모릅니다.”라는 두 마디 밖에 할 수 없었다. 또한 대통령을 둘러싼 ‘인(人의) 장막’에 대한 묘사는 권력 집단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이승만 정부 말기 대통령은 민심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들의 삶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들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주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참모들이 올리는 보고서의 내용은 영화의 제목처럼 ‘잘 돼갑니다’였다. 한국전쟁 이후 복구는 계속되고 있었고 국민들은 굶주려 있었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었고 거리에는 전쟁고아와 부랑인들로 넘쳐났다. 이미 ‘독립운동가’, ‘국부’로서의 이승만은 먼 옛날의 추억일 뿐 이었다. 국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나와 내 가족의 배고픔을 달래는 길이었다.
땅에 떨어진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권력층이 사용한 방법은 이승만과 그의 정권에 대한 지지를 획득하기 위하여 여러 문제를 내어서 대중시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1952년에서 1956년의 기간 중 이승만을 재선에 나서도록 부추겼던 대중시위 등을 통해 여론을 선도해 나가려고 했다. 이러한 시위는 어느 정도까지는 이승만의 인기를 회복시키고 유지시켜줄 수가 있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국민들 사이에 이승만의 개인적 인기는 사라졌고, 그의 권력은 오로지 경찰의 강제력에 의하여 유지되었다. 결국 1960년 대통령 부정선거에 항의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들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4월 혁명이다.
4월 혁명은 시민들이 일어나 부패한 권력을 무너뜨리고 민주정부를 새롭게 세운 의로운 항쟁이었다. 하지만 4월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이승만 정부 이후에 들어선 장면 정부는 정국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고 경제문제에 대해서도 특단을 대책을 못했다. 민주정부의 틀을 갖추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다. 1961년 혼란이 가중된 상황에서 육군 소장 박정희 비롯한 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한국에는 군사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통일한국 > 통일시대를 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87년 6월의 함성 (0) | 2014.09.02 |
---|---|
‘긴급조치’는 왜 그리도 많이 필요했을까? (0) | 2014.09.02 |
타는 목마름으로 (0) | 2014.09.02 |
1980년 5월 광주 (0) | 2014.09.02 |
전설의 프로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와 ‘호남’ (1) | 2014.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