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독교계에도 세대간 그리고 이념간의 갈등의 확대 되고 있다.
모든 한국교회가 여기에 해당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우파세력를 대표해온 대형교회 중심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개혁 및 좌파 진영의 '새벽이슬', '교회개혁연대'등이 지난 11일(토요일)과 19일(주일) '평화를 위한 기도회'개최에 대해 갈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을 낳은 것은 12월 대선을 앞두고 전국을 휩쓸었던 여중생 추모 촛불시위와 1990년대 중반이후 한국 사회에 몰아닥친 반미 열풍 때문이다.
이번 평화 기도회를 주최한 측은 한기총 소속의 금란교회,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같은 대형교회다. 몇몇 대형교회의 주도아래 국민일보, 기독교TV 등 기독 언론매체등이 후원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한기총측은 이번대회를 통해 "한국교회와 민족의 죄를 회개하면서 화해와 희망의 마당으로 나갈 것을 다짐하고 호소문을 통해 '북한 핵 개발의 중단과 포기'와 '미국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반대'와 '반미감정'의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기독인의 사명과 의무이지만 기도회 개최 성격과 주도한 사람들의 언변 그리고 정치적 성격에 대해서는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기도회의 개최는 몇몇 카리스마를 지닌 목회자들에 의해 주도 되었고 대형교회의 인원동원으로 한국 교회 전체 목소리를 대변하기 보다는 특정교회들간의 집회였을 뿐이다. 이러한 동원방식은 과거 70~80년대 여의도 집회와 같은 신도 동원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한 바 크고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과거 인원동원의 구습을 답습했다. 한기총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했다면 대형 메머드 집회 보다는 한기총에 가입한 교단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했고 거리로 뛰쳐나가야 했던 것이 아니라 특정 주일을 "평화를 위한 주일"로 설정하여 각 교회의 예배를 평화를 위한 예배로 진행하고 각 교회별로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했어야 했다. 한기총 차원에서는 단지 '공동 기도문' 정도 내는 수준에서 그쳤어야 했다.. 기도는 1천만 기독인이 하는 것이지 한기총이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집회를 주도한 몇몇 사람들의 언변을 보면 과연 저 사람이 목사인지 특정 정치세력을 대변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면이 보인다. 참석한 대부분의 목회자와 신도들이 평화를 위해 기도하였지만 몇몇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극우세력을 비호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집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 세력의 이익을 위해 집회를 하는 것 같았다라는 참가자들의 평가가가 심심치 않게 들려 오고 있다. 한기총은 집회 강사 선정에도 신중해야 했다. (행사 개최 자체가 체계적으로 진행 되지 않았으니 집회 강사 선정도 주먹구구 식일 수 밖에....)
그리고 무엇 보다 이번 집회는 정치적 성격이 강했다. 젊은 기독인들은 거의 없었고 40대 이상의 집사님 권사님 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대선의 2030 대 5060의 구도가 교회에도 역시 나타난 듯 싶다. 그리고 진보교단의 인사들은 거의 참여 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의 집회 임에도 극우세력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애국 기독교'니 하며 집회를 선동 했고 자신들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이 집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란 극우 기독인들의 행태가 자라나는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과 또한 교회를 등지고 있는 이들에게 그리 선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이기 자명하다... 이번 집회를 통해서 이들은 "한기총=극우보수=친미사대=반개혁적"의 이미지를 고착화 했으란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 젊은이들이 과연 이러한 상태에서 정체성을 찾고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착실히 매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극우 세력으로 부터 일명 '애국 기독교'로 불리는 이번 집회의 주도층을 면밀히 보면 왜 이러한 일이 발생을 했는지 대강 알 수 있다. 이들은 한국교회 성장의 한축을 담당했다. (긍정적인 면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교권 성장 및 확대는 개발시대의 논리와 권력층의 이해 관계가 어느 정도 부합 되었기에 가능 했던 이야기다.
지금까지 한국의 주류 교회는 양적으로는 성장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극우, 친미, 반공 으로 편향 되어 있었다.우리는 이러한 교회와 교단의 형태를 일명 보수교단으로 불렀다. 이들의 정치성향은 일정 하였으며 한국의 주류 정치세력과 거의 궤를 같이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이들의 영향력은 조금씩 쇠퇴하기 시작한다.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던 한국 교회가 90년대 중반이후 정체 현상에 빠지고 과거의 목회 스타일이 성숙된 평신도들에 의해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고 교권세습, 교회 재정의 투명성 등 각종 문제들로 인해 권위주의 리더십은 타격을 받기 시작한다. 교회내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민주화, 종교의 역할에 대한 냉정한 평가등으로 대 사회적 영향력도 급속히 떨어지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이후 과거 줄을 대던 권력 기반의 상실...교회 청년 세력의 냉소화 및 이탈 등으로 교회의 노령화 현상 발생 등 기존 보수 교회는 잠재적인 리더십의 위기 현상을 갖게 되었다.
작금의 보수교단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리더십의 위기에서 나온 조급한 issue making 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issue를 만들어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한 방책을 쓴것이다. 일종의 세불리기 통한 관심 끌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기도회의 취지와 본질은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것과 북핵, 반미 문제등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한국교회 성도의 사명이요 의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기도할 곳은...
광장이 아니라 각기 처한 처소요 골방이다.
그리고 광장에 나가 기도하려면...무엇보다 기도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일치 시키고, 정치적 중립성, 자발적 참여가 전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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