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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천군> - 남북한 군대의 이순신 장군 만들기 프로젝트





개봉 2005년

감독 민준기

출연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 공효진 등



‘선조실록’에서 얻는 영감


“왜적대장 평수가(平秀家)는 무리를 이끌고 종묘로 들어갔는데, 밤마다 신병(神兵)이 나타나 공격하는 바람에 적들은 놀라서 서로 칼로 치다가 시력을 잃은 자가 많았고, 죽은 자도 많았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스물여섯번째 권에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다. 이 책이 기록된 임진왜란(1592~1599) 당시 하늘이 내린 병사라면, 분명 천자(天子) 즉 명나라의 황제가 보낸 명군(明軍)이라는 것이 설득력 있는 해석이지만 민준기 감독은 여기에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 구절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젊은 시절의 이순신 장군을 만난다”라는 픽션을 생각해 냈다. 추측만 있고 그 정체에 대한 설명이 일절 없는 '신병(神兵)'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미래에서 온 주인공들이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시대 사람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려 온 군대인 '천군(天軍)'일 수도 있다는 발칙한 생각을 한 거다.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는 각종 기록에서 비교적 자세하게 나타나있다. 그런데 장군이 28살 무과 시험에 낙방한 1572년부터 무과에 급제하고 함경도에 군관으로 부임한 1576년까지는 4년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민준기 감독은 이 4년을 상상력의 시간과 공간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순신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이순신을 이야기 한다. 과거에 낙방하고 방황하는 이순신 그리고 그 시대로 날아간 남북한 군인들...



새로운 ‘이순신’을 만나다.


영화 <천군>은 한반도 모처에 마련된 남북한 합작 핵무기 개발연구소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남북한 군인 및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핵무기 '비격진천뢰'를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국가와의 이해관계속에 남북 당국은 핵무기 양도를 결정하고 연구소의 과학자와 군인들은 이를 아쉬워한다.


“힘이 모자라 헤어집니다. 다시 모입시다”


한국군 박정우(황정민) 소령은 분위기를 달래며 이렇게 건배 제의를 한다. 하지만 북한군 소좌 강만길(김승우)은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핵무기 비격진천뢰를 빼돌려 압록강으로 도망치게 되고 박정우가 중심이 된 한국군은 이들을 추격한다. 이때 433년만에 지구를 지나는 혜성의 이상 작용으로 남북 군인들은 순식간에 강력한 빛에 흡수돼 사라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들이 떨어진 곳은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 1572년 조선의 압록강 근처다. 이들 앞에는 오랑캐 여진족의 습격으로 무고한 조선의 백성들이 희생 당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북의 군인들은 최신식 무기로 오랑캐를 무찌르고 이를 지켜본 민초들은 하늘이 내려준 ‘천군(天軍)’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주변에서 28살의 청년 이순신(박중훈)과 맞닥뜨린다. 하지만 이순신은 위엄이 있는 모습이 아닌 무과에 떨어지고 국경지대로 숨어 들어와 제멋대로 사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순신을 존경해 해군이 된 한국군 박정우는 그가 이순신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하지만 코믹하게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순신의 사인을 받는 것이었다.


영화 초반부의 이순신은 한마디로 허랑방탕한 한량이다. 민족의 영웅을 지나치게 희화화 했다는 비판이 나올만도 하다. 사실 영화의 이순신 캐릭터 자체엔 정치성이 없다. 그저 그 시대에 부합해 살아가는 힘없는 청년일 뿐이다. 하지만 이순신에게 미래에서 온 군인들은 끊임없이 그가 짊어져야 할 운명에 대해 역설하고, 그의 삶에 끊임없이 관여한다. 무과 시험에 떨어져 인생을 포기한 이순신에게 "당신은 4년 후 무과에 붙을 거고 훌륭한 영웅이 될거야"라고 최면 아닌 최면을 걸어댄다.



‘이분법’ 그리고 ‘민족주의’


이순신을 바라보는 남북한 군인들에게는 나름의 시각차이가 존재했다. 북한에서 이순신은 남한에서 만큼 그리 유명한 위인은 아니다. 남한의 박정우 일행이 이순신의 ‘회복(?)’에 매진하는 동안 북한의 강만길 일행은 어딘가에 떨어진 핵무기 비격진천뢰를 찾는데 집중하며 은근히 이순신을 외면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북한 군인들도 이순신에게 지극 정성을 다한다. 결국 이들의 정성에 힘입어 이순신의 침체된 마음은 추슬러지고 ‘애국 애족’으로 충만해 진다. 이순신이 영웅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관객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 정도로 힘이 넘친다. 이순신과 남북한 군인들은 조선의 백성들과 함께 오랑캐와 맞서 싸우고 미래로 귀환 할 수 있게 된 남북의 군인들은 그 기회도 마다하고 여진족과 처절하게 싸우다 전사한다.


허구의 영화 속 이지만 어떻게 그리 될 수 있었을까? 바로 이순신과 남북한의 군인이 ‘우리’이기에 가능했다. 영화 <천군>은 '우리'와 '그들'을 철처히 이분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표출한다. '천군'의 메시지는 우리만의 '민족성'이다. 민족성은 한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지금의 시각으로 다시 되새기게 한다. '천군'은 이런 민족성에 대해 상당히 직설적이다.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지만 어떤면에서는 다소의 부담감도 준다.


영화 초반부에는 한반도와 강대국간의 핵무기 보유를 둘러싼 미묘한 긴장관계를 만들어 진다. 그리고 나온 “힘이 모자라 헤어집니다. 다시 만납시다”라는 말은 16세기 오랑캐의 침략에 바람 잘 날 없는 조선 시대 역시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조선시대부터 일본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라는 영화속 대사처럼, 남북한 군인은 ‘청년 이순신’을 향해 나라를 구하는 '충무공 이순신'이 될 것을 주문하는 ‘대의(大義)’를 부여하다. 영화 <천군>은 한국 내에서만 소통과 공유가 가능할 뿐, 한국의 울타리를 넘기 힘든 구조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다. 이순신에게 '영웅'의 운명을 강요하는 남북한 군인들처럼 말이다.



‘위인’을 바라보는 남북의 눈


‘임진왜란의 이순신’

‘임진조국전쟁의 리순신’



남북은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을 이렇게 달리 부른다. 한국 사람중에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존경하는 사람을 뽑으라면 이순신 장군은 늘 Top 5 안에 들 정도로 한국인에게는 위인중의 위인이다. 어떤 이들은 이순신을 가리켜 ‘거룩한 영웅’이란 의미의 ‘성웅(聖雄)’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이순신 띄우기 작업은 과거 군사정권의 정치적 메카니즘과도 무관하지 않다. 군 출신이 정권을 잡고 있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무신(武臣)의 이야기는 문신(文臣)의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강조 되었고 비중있게 다뤄졌다. 이순신 장군의 업적 그 자체만을 보고 기념하는 것을 뛰어 넘어 이를 교묘히 활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순신을 성웅으로 받아들이며 미화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김일성 일가를 성웅화 시켰기에 이순신은 그 뒤로 밀려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에서 이순신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천군>에서 북한 병사들은 처음에는 이순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음을 표현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북한은 남한 만큼은 아니지만 언론 매체등을 통해 "임진조국전쟁(임진왜란) 시기 간악무도한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와 겨레의 운명을 수호한 수많은 애국명장 중에는 무적의 해전명장 리순신 장군도 있다"식의 긍정적인 보도를 가끔씩 내보내기도 한다.


또한 북한과 남한은 보는 관점에 따라 위인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북한은 고구려의 막리지 연개소문과 같은 인물을 외세에 굴하지 않고 나라의 자존심을 지킨 위대한 영웅으로 받들고 있으며 신라의 김춘추를 외세에 의존해 나라를 팔아 살아나간 비열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반면에 남한은 김춘추를 외교력으로 나라를 살리고 삼국통일에 기여한 인물로 보고 있고 연개소문은 임금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부분이 많이 묘사된다. 동일한 사건, 동일한 인물이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그 해석은 확연히 달라진다. 주변 상황을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는 것과 자신의 관점을 기준으로 상황을 파악하여 접근하는 것은 분명 그 값이 다르게 나타난다. 사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의 경우 그들이 안 배운 역사에 대해 신기해 할 때도 있지만 그들이 다르게 배운 역사에 대해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또 하나의 ‘상상력’을 바라며


흘러간 옛 일은 임의로 만들거나 지울 수 없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슬픈 기억이든 평생 우리를 따라다니며 현재를 있게하고 미래를 만들어 나간다. 영화 <천군>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 인물을 재연해내는 데 급급하지 않고 나름의 해석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인간' 이순신을 발견해낸 점이 인상적이며 남북한 군인들이 함께한다는 설정이 상상력의 샘을 자극한다. 영화 <천군>은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지는 못하지만 바퀴에 뭉개진 희망의 싹을 조금이나마 복원하려 애쓴다. 오늘날의 상황과 대비시키며 말이다. 영화는 미래에 대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역사의 현장에 개입하여 감정을 이입해 보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게 하는 상상의 나래를 제공해 줄 뿐이다.


답을 찾기 전 다시한번 깊은 상상의 바다 속에 한번 빠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