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03년 감독:정초신 출연:조인성(철수), 김사랑(영희), 허영란(혜영)
평양에 간 남한 여대생
매년 여름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공항과 항만에는 해외여행을 떠나려고 하는 이들로 북적인다. 약간의 돈과 시간만 있으며 외국에 나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남짓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만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9년 1월부터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었다. 그 이전에는 보통 사람이 여행을 목적으로 외국에 나가는 것이 그저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해외여행 자유화된 그해 여름 남한의 한 여대생이 북한 평양을 방문하며 나라 안팎에 큰 충격을 일으킨다. 이 여대생의 이름은 ‘임수경’(현재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다. 1989년 한국 사회는 평양에서 열리는 사회주의권 행사인 ‘세계청년학생축제’ 참여문제로 연일 소란스러웠다. 남한 정부는 청년학생들의 평양축전 참가를 허용할 듯 했지만 결국 불허하고 만다. 당시 대학생 연합단체인 ‘전대협’에서는 평양에 보낼 ‘평균적 대학생’을 물색한 끝에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4학년 임수경을 찾아냈다. 그녀는 학생운동과 관련해 구속된 전력이 없는데다 당시로서는 발급받기 어려웠던 ‘여권’을 가지고 있어 언제라도 출국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1989년 6월21일. 임수경은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집을 나섰다. 도쿄·베를린·베이징 등으로 비행기를 바꿔 타며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열흘만인 6월30일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도착과 함께 그녀의 평범했던 삶은 사라지고 이전과는 다른 운명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남과 북 모두에서 말이다.
임수경의 방북으로 남한에서는 한 바탕 난리가 났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친북 좌경화된 철부지의 치기어린 행동으로 치부되어 지탄을 받았다. 귀국 후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사법처리 되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반면 북한 주민들은 맑고 화사한 얼굴의 임수경에 매료됐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임수경의 모든 것은 북한에서 핫 이슈였다. 축전 내내 임수경이 입고 다닌 티셔츠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이른바 ‘임수경 패션’이 유행할 정도였다. 또한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전역에 방영된 임수경의 집 내부를 지켜보면서 권력에 저항하는 인민의 집에 컴퓨터와 기름진 음식이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 북한에 불고 있는 한류의 원조는 단연 임수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야기속 남북의 청춘(靑春)들
임수경의 등장에 가장 열광했던 사람들은 북한의 청년 대학생들이었다. 한반도 북녘의 청춘들이 남한의 청춘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북한을 방문한 남한의 여대생은 친근하면서 낯선 그리고 신비롭고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같은 청춘이기에 더 열광했고 같은 청춘이기에 더 마음 깊숙이 받아 들였다. 어쩌면 남모르게 임수경을 짝사랑한 북한 남자 대학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남과 북 청춘들의 이야기는 영화, 소설, 드라마 속에도 종종 등장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우정’ 보다는 이성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남한 남자와 북한 여자가 사랑을 꽃 피워가는 경우가 많다. 어떤 평론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타자에 대한 호기심’의 반영이라고 설명 한다. 여기에서 ‘타자’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과거 미모의 북한 응원단이나 해외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의 매력적인 여종업원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주며 그들을 북한의 또 다른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도 다 ‘타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각종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남한남자-북한여자의 구도는 어쩌면 북한을 소유하고픈 남한이 가진 남성성 일지도 모른다.
정초신 감동의 영화 <남남북녀>는 이러한 구도에 충실한 코미디물이다. 영화제목부터 ‘남남북녀’ 아니던가. 원래 ‘남남북녀(南男北女)’라는 말은 조선시대 말 실학자 이능화의 ‘조선여속고’(朝鮮女俗考)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남북녀’는 당시 시중에 떠도는 말을 채집해 놓은 것으로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 가운데 미남미녀가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남남북녀>속에서 남한 국가정보원장의 아들인 대학생 철수(조인성)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고 여성에게만 관심이 있는 바람둥이다. 철수의 지도교수는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중국 연변에서 있게 될 남북 대학생 고구려 고분 발굴 탐사에 참가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고구려 고분발굴단에 참가한 철수 앞에 북한 여대생 영희(김사랑)가 나타난다.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딸인 영희는 북한 최고의 대학에서 일등상을 받는 우수한 모범생으로 고구려 고분 발굴단에 선발 되는 특전을 얻었다.
철수는 돌아가신 엄마를 빼닮은 영희에게 반하게 되고 영희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하지만 콧대 높은 영희는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이에 오기가 생긴 철수는 고구려 상통고분을 먼저 발견하는 것으로 영희의 콧대를 꺾으려 하고, 영희 역시 이에 지지 않는다. 하지만 작업 도중 고분입구가 무너져 철수와 영희는 고분 안에 갇히게 된다. 고분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다투지만 결국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이러한 이들의 모습이 남북 당국에 보고되고, 소식을 들은 남북의 아버지들은 이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각기 요원을 급파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철수와 영희는 고민 끝에 사랑을 택하게 되고 남북 요원들에게 쫒기다 결국 각기 자기의 조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역사학자가 되어 평양을 방문한 철수는 영희에게 다시 사랑을 고백하게 되고 둘의 사랑은 결실을 맺게 된다.
영화 <남남북녀>는 중국 연변에서 남북의 고위층 자제들이 고구려 고분 발굴을 같이 하며 사랑을 키워간다는 신선한 소재이다. 그러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면 지금의 남북관계 만큼이나 답답함을 내포하고 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남녀사이라지만 영희가 무엇 때문에 철수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철수와 사랑에 빠지면서 영희는 적극적이고 실력 있는 대학생이 아니라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나약한 여주인공으로 변해버린다. 또 나이트클럽에서 영희가 추는 딱딱한 체조 댄스 동작이나 남학생을 혼내주기 위해 공중돌기를 하는 과장된 장면들은 쉽게 공감이 가지 않는다. 영화 <남남북녀> 속의 남북의 청춘들의 관계는 마치 사우나의 냉탕과 온탕을 수시로 오가는 느낌이다.
청춘의 가능성과 상상력
영화 <남남북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극장에서 개봉한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간판을 내렸을 뿐 아니라 2003년 평론가와 관객이 선정한 ‘워스트(worst)’ 영화 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영화평론가는 영화의 주인공인 철수와 영희를 빗대어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 첫머리에서 따온 이 상징적인 이름이 영화의 지적 수준에 걸맞은 진정 탁월한 선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품성과 흥행면에서 실패했지만 이 영화에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의 공간적인 배경은 중국 연변 즉 ‘만주’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한 때 우리 민족이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곳이고 지금도 200만영에 가가운 우리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이 영화는 우리의 고토(古土) 만주에서 남북한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조상의 얼이 담겨 있는 고구려 고분을 발굴한다는 나름 의미 있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소재는 지금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생각한다면 현실에서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거대한 공룡이 되어 버린 중국은 현재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과거의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 불리는 이 작업은 ‘만주’속에 있는 우리의 흔적들을 통째로 삼키고 있다. 그래서 만주에 있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한국인들의 접근을 까다롭게 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에 속해 있지만 엄연히 만주는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곳이다. 비록 영화속이지만 상상력을 통해 우리는 고구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도 남북의 젊은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서 말이다.
영화 <남남북녀>가 주는 또 하나의 매력은 바로 남북 청춘들의 만남 그 자체이다. 살아온 배경이 다른 남북의 청춘들이지만 갈등 끝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사랑의 싹을 틔우게 된다. 한국 현대사를 보면 청춘의 사랑과 열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사회를 변동 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부패한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1960년 4.19혁명이 그랬고 민주주화를 이룬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그랬다. 공교롭게도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이 성공한 직후 두 번 다 남한의 청춘들은 북녘의 청춘들과 민족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 ‘남북학생회담’을 추진했다. 이때 이들이 외친 구호는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였다. ‘남북학생회담’은 성사 되지 못했지만 이들이 가졌던 순수하고 뜨거운 함성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
청춘이 희망이다.
1980년대 한국의 대학가는 NL(민족해방)과 같은 운동권 세력들이 청년학생운동을 이끌었다. 1990년대 들어 공산권이 붕괴되고 세계화의 바람이 불면서 이들의 힘은 약해졌고 한국사회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 직후 모 정당의 폭력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없어진 줄 알았던 지나간 시대의 가치와 투쟁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보았다. 실망을 넘어 분노와 증오가 이들을 향해 가해지고 있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집어 볼 것이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이다. 군사독재라는 괴물을 잡기 위해 그럴싸한 ‘사람중심의 주체(?)’를 북한에서 차용해 왔지만 어느 샌가 이들 역시 그토록 타도하고 싶어했던 그 괴물이 되어 있었다.
지금 이들의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해서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졌던 순수했던 첫 마음까지 폄하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들이 가졌던 그 첫 마음은 바로 청춘의 열정과 갈망이었고 역사를 움직이는 에너지의 원동력이었다. 누구에게나 청춘의 시간이 있다. 그리고 육체적 나이가 들어도 청춘의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람도 많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푸른 봄날의 시냇가처럼 대립과 갈등을 녹이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뜨겁게 포옹하는 그럼 마음이다. 푸른靑 봄春 그게 청춘(靑春) 아니던가.
그 청춘이 바로 우리의 미래요 희망이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 민태원, 청춘예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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