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 2012년 감독 : 문현성 출연 : 하지원, 배두나, 한예리, 박철민 등
“한반도가 땀을 흘렸다. 한반도가 갈증을 풀었다.”
1991년 4월 29일 오후 6시 43분 일본 지바의 닛폰컨벤션 센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4시간여 동안의 경기가 끝나고
코리아 단일팀 우승이 확정된 순간,
흰색 바탕에 청색 한반도 지도를 가슴에 품었던
리분희·현정화 선수의 온몸은,
7천만 겨레의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분단 46년 만에 첫 남북한 단일 탁구팀 -
그 오랜 숙원 만큼이나 풀리지 않았던 겨레의 갈증을
이제 우리가 풀기 시작했습니다.
스포츠로 시작된 민족화합이 정치, 경제, 문화 교류로 이어지고
통일로 향한 염원이 보람의 땀방울로 맺힐 때
게토레이가 다시 한 번 7천만 겨레의 갈증을 풀고 싶습니다.
1991년 5월초 국내 일간신문에 실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을 소재로 한 스포츠 음료 ‘게토레이’의 광고 카피다. ‘게토레이’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갈증 해소 음료’의 컨셉에 맞추어 탁구단일팀의 선전을 겨레의 갈증이 풀리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1990년대 초 분단국가인 독일이 통일 되고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된 직후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정치적으로 총리급 인사를 대표로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열리기 시작했고 고위급 회담을 통해 남북한 사이의 화해 및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도 만들어진다.
남북 당국이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었던 그해 봄 남북은 기적과도 같은 한편의 ‘각본없는 스포츠 드라마’를 만든다. 바로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 탁구 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이다. 사상 최초로 만들어진 남북탁구단일팀은 구성단계에서부터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역사적인 남북단일팀의 합의서는 다음 3가지 사항으로 구성 되어있다.
첫째, 선수단의 호칭은 우리말로 ‘코리아’로, 영어로는 ‘KOREA’로 한다.
둘째, 선수단 기(旗)는 흰색바탕에 하늘색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놓고 제주도를 제외한 섬은 생략한다.
셋째, 선수단 가(歌)는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부르던 ‘아리랑’으로 한다.
지금 남북 화해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한반도기’와 함께 부르는 ‘아리랑’의 전통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남북 탁구 단일팀 선수들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선수는 남북한의 여자 에이스인 현정화(남한), 리분희(북한)였다. 이들은 환상적인 호흡으로 만나는 팀들을 모두 격파하고 결승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을 물리치며 정상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여자복식 경기에서 남북단일 ‘코리아팀’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3백여명의 응원단이 한꺼번에 관중석 스탠드에서 내려와 선수단과 얼싸 앉고 눈물을 흘렸다. 시상식에서는 남북이 합의한 대로 ‘한반도기’가 올라갔고 남한과 북한의 ‘애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 모인 남북한 해외동포 모두가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이 순간만큼은 남과 북도 그리고 한국과 연계된 재일교포 조직인 ‘민단’과 친북 재일교포 조직인 ‘조총련’ 사이의 구분이 없었다. 단지 ‘코리아’만 있을 뿐이었다.
남북이 함께한 46일간의 감동 스토리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코리아>는 탁구 영화다. 탁구공의 빠른 움직임과 소리, 스포츠 경기의 긴박감 영화의 흥미를 돋운다. 영화 <코리아>는 또한 탁구로 하나 되었던 남과 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녹색 테이블 위 네트를 사이에 두고 라이벌로 마주했던 남과 북의 탁구선수들이 이념을 허물고 한 팀이 되는 46일간을 그리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탁구 복식 우승으로 스타가 된 현정화 (하지원)는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언론은 분단 46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이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며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지만 정작 현정화를 비롯한 남쪽 선수와 코치진은 이 같은 결정에 당혹스러워한다. 게다가 대회 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40여일뿐이다. 이념이나 체제 경쟁 같은 것은 차치하더라도 동료로서의 신뢰도, 인간적인 애정도 없는 상태에서 순식간에 ‘코리아’라는 이름의 한 팀이 된 남북 선수들은 사사건건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남한의 간판선수인 현정화 역시 라이벌 관계이자 북한의 맏언니 격이었던 리분희(배두나)와 갈등을 빚는다.
영화의 실제 인물인 현정화에게 북한의 리분희는 탁구 최강 중국과의 대결에 앞서 통과해야 하는 어려운 관문이었다. 한마디로 남북대결의 구도 아래서 현정화에게 리분희는 숙적이었다. 1984년 세계무대에 혜성 같이 등장한 북한의 리분희는 데뷔 이후 한국 선수를 상대로 16연승을 구가하며 ‘한국 탁구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고, 1980년대 말 세계 랭킹 3위에 오른 에이스중의 에이스였다.
영화 속에서 리분희와 현정화를 비롯한 남북한 선수들은 'KOREA' 라는 커다란 민족적 대의를 입었지만 서로 다른 체제에 길들여 살아왔기에 좌충우돌의 시간을 겪는다. 상호 이질적인 탁구 용어, 훈련 방법, 팀 분위기 그리고 주변의 기대어린 시선까지 받아가며 낯선 환경에서 한 팀을 이루어 팀웍을 다져 나가야 했다. 40여일의 시간을 함께하며 현정화와 리분희는 환상의 짝궁이 되어 일을 내고야 만다. 그것도 탁구 최강 중국을 꺽고 세계를 놀라게 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영화 <코리아>에도 다소 불편한 점들이 있긴하다. 이 영화는 아무래도 남북 단일팀이 이룬 쾌거를 민족주의 속에서 호소하다 보니 ‘착한’ 우리 편(코리아팀)의 단합을 위해 중국 등 상대팀의 비열함이 부각되거나 북측 선수들이 당의 지시에 따라 갑작스레 경기를 중단하려다 남측 선수들의 호소로 다시 경기에 나오는 부분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스포츠의 이면, 정치 체제 대결의 장(場)
영화 <코리아>에는 스포츠를 통한 남북의 화해와 연합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스포츠는 이러한 감동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나 체제의 홍보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스포츠를 정치 선전의 도구로 가장 교묘하게 활용했던 인물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해 헤비급 복싱선수 막스 슈멜링을 이용했으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전체주의 나찌 독일을 대외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우리에게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군사 병영화 된 독일의 모습을 만천하에 선전포고한 대회의 성격이 짖다. 베를린 올림픽 3년 뒤인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은 12년간 열리지 못하게 된다.
스포츠는 또한 정치적 대리전의 역할을 한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현재 러시아)의 스포츠 대결은 한마디로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이기도 했다. 특히 국제대회 결승전에서 미국과 소련이 맞붙을 경우 전 세계의 이목의 집중 되었으며 양국은 피할 수 없는 자존심 대결을 벌여야 했다. 또한 중요한 정치군사적인 사건이 발생 될 때마다 스포츠는 그 의견을 표명하는 장이기도 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직후 미국, 영국 등 서방 세계는 1980년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했으며 서방세계의 불참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은 1984년 미국 LA올림픽에 불참하기도 했다.
이념이 배어 있는 스포츠 대결은 남북한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기 전까지 남북은 체제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한 각축을 벌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특히,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스포츠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북한은 1966년 열린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남한은 북한 축구가 두려워 아예 잉글랜드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북한에 패배하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때부터 남한은 북한이 나오는 대회는 아예 기피했다.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과의 대진을 피하려고 다른 나라와의 경기에서 일부러 진일도 있었다. 남쪽의 박정희 유신체제와 북쪽의 김일성 유일체제 사이에 적대적 경쟁과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그 시절 스포츠 남북대결은 한마디로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사격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북한의 이호준이 “미제의 털가슴에 총알을 날리는 심정으로 쐈다”고 수상 소감을 말할 정도로 스포츠는 이념의 시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흔히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분명 이념의 장벽은 존재했다. 열려있는 그라운드에서 남북한 선수들은 마음을 닫고 이기기 위한 투쟁을 해야 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말이다. 이기는 것이 곧 애국이요 상대에 대한 비교우위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그 때 그 현장에서 있었던 선수들 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역사와 추억의 한 페이지를 기억하며
영화 <코리아>의 문현성 감독이 남북 탁구 단일팀을 소재로 영화로 만들기 위해 당시 선수로 뛰었던 현정화 감독에게 찾아 갔을 때 현 감독의 반응은 “왜 이제야 찾아 왔느냐?” 였다고 한다. 1991년 4월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잊혀진 추억이었지만 현 감독에는 지워지지 않는 ‘살아있는 역사’ 였다. 현정화 감독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탁구 경기장면 연출을 위해 7개월 동안 배우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는데 왼손 전형' 북한 에이스 리분희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리분희 역의 배두나에게 '왼손 탁구'를, 북한 유순복 역할을 맡은 '왼손잡이' 한예리에게 '오른손 탁구'를 가르쳤다. 현정화 감독은 영화의 기획, 배우 섭외 및 훈련, 홍보까지 자문료, 개런티 없이 무보수를 자청했다. 탁구에 대한 사랑과 남북이 하나가 되었던 20여 년전 일본 지바에서의 감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그리고 현정화 감독은 틈틈이 강연을 다니며 당시의 감동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야기 한다.
"스포츠와 문화 교류를 통해 체제 이질감이나 남북 간 군사적 긴장관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각자가 맡은 분야에서 북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 소통하고 대화하다 보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남북의 마음이 열리면 통일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현정화 감독, 2012년 3월 7일 이화여대 특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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