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 2005년 감독 : 조명남 출연 : 감우성, 김수로, 신구, 성지루, 신이
한국영화 최초의 ‘북한 촬영’
2005년 2월 21일 화창한 늦겨울의 오후. 영화 제작사인 ‘두사부필름’이 만드는 영화 <간큰가족>의 배우, 스텝, 기자 180여명을 태운 버스 행렬이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한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분단 이후 북한 땅에서 처음 이루어진 남한 영화의 촬영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금강산에서 영화 촬영이 이루어지기 까지만 많은 난제들이 있었다. 촬영을 떠나기로 한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제작진은 북한 촬영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산가족 상봉만큼이나 극적으로 성사된 북한 촬영은 어디까지나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준 현대아산과 북한 간의 오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화 <간큰가족>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현대아산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북한 촬영을 조심스레 추진했다. 실향민의 상봉을 금강산에서 실제로 하는 것처럼 직접 그곳에서 촬영을 하는 것 만큼 좋은 그림이 없었고 무엇보다 북한과의 영화 교류라는 큰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여러 영화들의 북한 현지 촬영이나 북한 시사회가 성사의 문턱까지 갔다 좌절된 적이 많아 그리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영화 <간큰가족>은 남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깊이 다루고 있지 않기에 촬영을 허가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남한 사람들에게 금강산은 온통 안되는 것 투성이었다. ‘휴대전화’, ‘인터넷’, ‘MP3', '성능 좋은 카메라’, ‘북한 주민들과의 속 깊은 대화’ 등등... 그리고 영화 촬영에 대한 세밀한 것 까지 북한측과 철저한 협의를 거쳐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제작진이 ‘금강산’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간큰가족>가족의 북한 현지 촬영은 더욱 더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토록 바랬던 통일이 오다 (?)
영화 <간큰가족>은 북한에 가족을 두고 한 실향민과 그가 그토록 염원했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남한의 부인 (김수미) 앞에서 북에 두고 온 마누라 타령만 해대는 간큰 남편 김노인 (신구)은 오매불망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게 인생에 남은 마지막 소원이다. 여느 때처럼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 신청서를 내고 돌아오던 김노인은 그만 발을 헛딛고 계단에서 굴러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병원에서 건강검진 중 가족들은 김노인이 ‘간암 말기’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김노인에게 오래전에 사놓은 시가 50억원 가량의 땅이 있다는 것도 알게된다. 또한 김 노인의 유언장에 ‘통일이 되었을 경우에만 땅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아주 기이한 조항을 달려 있음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과 자칫 통일부로 전액 기부 될 수 있는 50억 유산을 사수하기 위해 가족들은 ‘통일이 되었다’는 담화문을 담은 가짜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해 임종 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감쪽같이 가짜 통일 상황을 믿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김 노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가족들이 다 같이 행복(?)해질 찰나... 곧 세상을 떠날 것 처럼 보였던 김노인의 병세가 ‘통일이 되었다’는 한마디에 기적처럼 호전되고 만다. 게다가 가짜로 만들어 낸 통일신문을 본 김노인이 ‘남북 단일팀 탁구 대회’를 봐야겠다는 통에 가족들은 졸지에 탁구선수가 되어 경기장면까지 카메라에 담아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평양 교예단이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는 가짜 기사를 본 김노인은 다짜고짜 ‘서커스를 보겠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가족들이 이제 와서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말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져버렸다. 게다가 큰 아들 명석(감우성)이 진 빚을 받기 위해 찾아온 악덕 사채업자 박상무(성지루) 마저 집에 눌러 앉게 되면서 상황은 더욱 꼬여간다. 결국 명석은 박상무를 포섭한 데 이어 동생 명규 (김수로)를 짝사랑하는 춘자 (신이)까지 통일연극에 참여시키며 직접 평양교예단의 서커스 공연을 실연해낸다. 그러나 아버지 소원을 사수하기 위해 벌였던 거짓말은 이들의 행동을 수상히 여긴 이웃주민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통일 자작극’은 들통이 나고 만다.
때마침 김 노인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뽑혀서 가족들과 함께 북한 금강산에 가게 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꿈에 그리던 가족을 보지 못하고 양호실에 누워있게 된다. 김 노인 대신 상봉장에 나간 두 아들 명석과 명규는 아버지의 북한 아내와 딸이 이미 사망했다는 소식을 아버지의 북한 처가 식구들로부터 듣게 된다. 명석은 김노인에게 처가 식구들을 아버지의 딸로 위장에 아버지 앞에 데려간다. 김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한다. 명석이 한 두 번째 거짓말은 유산 50억원이 아닌 아버지를 위한 거짓말이었다.
‘한 가족 두 지붕’...그리고 돈-돈-돈
영화 <간큰가족>에서 이야기의 발단은 아버지의 유산 50억원이다. 통일이 되면 유산은 가족에서 분배 될 것이고 통일이 되지 않으면 유산은 통일부로 넘어간다. 통일은 김 노인 가족들에게 일확천금의 기회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유산 처럼 돈이 통일의 현실적인 문제에서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유산의 일부를 받기로 하고 통일자작극에 직접 투자한 사채업자 박상무의 대사처럼 “돈 없으면 통일이고 나발이고 못해!” 처럼 말이다. 아니 “돈이 안 돼면 통일이고 나발이고 못해!”가 우리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통일과 돈은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을 해보자. 북한에 두고 온 김노인의 북한 아내와 딸이 사망하지 않았고 유산 50억원의 존재를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남한 법원에 유산의 일부를 달라고 하는 소송을 벌일지도 모른다. 아니 벌일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이미 북한에 두고 온 직계가족들이 남한의 가족을 대상으로 유산 상속 소송을 하고 있다. 2011년 7월 서울 중앙지법은 남북분단으로 재산분할 과정에 참가하지 못한 북한 주민의 상속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 상속권의 이해 관계자들은 평안남도 출생인 윤모씨(1987년 사망)의 북한자녀들과 남한자녀들이다. 윤모씨는 1933년 결혼해 2남4녀를 낳았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윤씨는 큰딸만 데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윤씨는 전쟁이 끝나고 본적을 서울로 고치면서 북한에 있는 부인과 큰딸만 호적에 올렸다. 다른 자녀들은 따로 등재하지 않았다. 윤씨는 남한에서 재혼한 뒤 2남2녀를 더 낳았고 1987년 상을 떠났다. 윤씨가 남긴 100억원대 재산은 모두 남한의 자녀들에게 돌아갔다.
윤씨와 함께 피란온 큰딸은 2008년 미국 선교사를 통해 북에 남은 형제들 소식을 듣게 됐다. 큰딸은 선교사의 도움으로 형제들의 자필 진술서와 위임장을 건네받아 ‘재산 되찾기’에 나섰다. 친생자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모발과 손톱 샘플도 건네받았다. 큰딸은 북한 당국이 보관하고 있는 주민대장을 촬영한 영상까지 받았고 2009년 2월 서울가정법원에 친생자 관계 확인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동산 소유권 이전등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유전자 감식을 통해 북한에 있는 자녀들을 윤씨의 친자로 인정하고 조정을 시도했지만 양측 모두 재산을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버텨 공방이 계속됐다. 결국 법원은 판결을 통해 북한 주민의 상속권과 부동산 소유권을 공식 인정했다. 북한 자녀들에 대한 상속권이 인정 되면서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상속 및 재산분할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산가족 상봉,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의 인도적인 해결에 대해 불편한 속내를 보이던 북한도 유독 이 문제에서 만큼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마도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일거다. 남북 가족 사이의 분쟁에 대비해 정부에서는 ‘남북 주민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했으며 2012년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가족끼리 사랑을 주고받고 행복을 누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때에 가족이기 때문에 법적인 분쟁이 발생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참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하나의 겨레요 핏줄을 이야기 하지만 ‘한 가족 두 지붕’의 현실에서는 풀어야할 매듭이 너무 많은 듯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 매듭을 풀고자 노력해야 한다.
“너희들한테 통일이 뭐가 대수겠냐만은.......”
영화 <간큰가족>은 동독의 열혈 공산당원인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통일 전과 같은 상황을 꾸미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과 유사해 표절 시비가 일기도 했다. 표절 시비가 일기만 했지만 <굿바이 레닌>을 베낀 영화는 아니다. 이 작품은 1997년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으로 오히려 <굿바이 레닌>보다 약 5년 앞서 시나리오가 나왔다. 이 두 영화는 분단을 체험한 나라에서만이 상상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다. <간 큰 가족>과 <굿바이 레닌>은 모두 시한부 생을 사는 부모를 위한 거짓말을 다룬다. 영화 속 거짓말의 당사자들이 자꾸만 부풀어 오르는 거짓말을 지켜나가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통일을 두고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다는 점에서 <간큰가족>은 독일영화 <굿바이 레닌>과 반대의 상황에 있다. <굿바이 레닌>이 통일된 독일을 거짓말로 갈라놨다면, <간큰가족>은 분단된 한반도를 거짓으로 통일시킨다.
무엇보다 <간 큰 가족>은 희극적인 요소와 함께 실향민의 비애를 통해 대변되는 민족주의 정서라는 감동의 선율을 담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라는 말이 과거에 비해 진부하지만 ‘남북 통일에 전격 합의’라는 뉴스에 할 말을 잃은 김 노인의 이슬 맺힌 눈과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장소에서 흘러내리는 두 아들의 눈물을 그저 가벼운 최루성 신파로 폄하 할 수 만은 없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통일을 그렇게 염원하던 김 노인은 아들 명식과 명규에게 가족에 대해 고마움을 담은 잔잔한 편지를 쓴다. “너희들한테 통일이 뭐가 대수겠냐만은.......” 이 고백이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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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아! 명규야!
엄 변호사한테 얘기 다 들었다.
처음에는 무척 화가 났었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내게 해준 선물 고맙게 생각한다.
사실 너희들한테 통일이 뭐가 대수겠냐만은 이 애비는 그렇지가 않단다.
살아있는 부모 형제들을 두고 평생 만나 볼 수 없다고 생각을 해 보거라.
세상에 그 처럼 슬픈일이 어디있겠니?
그래서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남아 있는 유산은 명석이 네가 결정을 해서 가족끼리 조금씩 나누고 나머지는 이 아버지 뜻에 따라주기 바란다.
이 이배는 평생을 살아 오면서 요 며칠 동안이 가장 행복 했었다.
너희들의 마지막 선물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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