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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기업사회혁신(CSI)

19세기 사회적 책임을 다한 초코렛 명가, 캐드버리 가문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모순을 보며 과학적 공산주의를 고민하던 시절 자본가도 노동자도 하늘 아래 평등한 사람이라는 비전을 가진 기업이 있었다. 그 기업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사업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바로 <캐드버리>기업이다.


오늘날 미국의 허쉬(Hershey)와 함께 양대 초콜릿 브랜드로 불리는 캐드버리(Cadbury)는 1824년 퀘이커교도 캐드버리에 의해 시작되었다. 캐드버리는 처음에 차와 커피 무역을 주 사업으로 하였으나 열대 식물인 코코아에서 새로운 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한 후 코코아 음료, 초콜릿 가공식품 등으로 사업의 영역을 넓혔다.


존 캐드버리가 초콜릿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이유는 간단한다. 술은 사람을 가난하고 궁핍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술을 마시는 것이 자신의 윤리적인 가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코코아 음료를 생산해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존 캐드버리의 아들 조지 캐드버리(1839~1922)는 1861년 아버지의 사업체를 이어받아 코코아·초콜릿 제조회사인 캐드버리 브러더스사로 크게 번창시켰다. 사회개혁가이기도 한 그는 작업환경의 개선, 주택공급, 도시계획 등을 시험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879년 조지 캐드버리 형제는 그들의 회사를 산업도시인 버밍엄에서 전원지역인 우스터셔로 옮겨 '본빌'(지금의 버밍엄에 속함)이라고 불렀다. 본빌에서 그들은 사립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작업환경을 당대 최고의 수준으로 개선했다. 1894년부터 조지 캐드버리와 그의 건축기사 알렉산더 하비는 노동자들의 주거지를 지었는데, 이 주거지는 노동자 계급의 주택치고는 특이하게 넓은 정원과 생활의 편의를 제공하는 여러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1900년경 캐드버리가 그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본빌 빌리지 트러스트(Bournville Village Trust)’를 세웠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캐드버리의 실험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으나 19세기 후반의 다른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이러한 노력은 혁명적 발상이었다.


캐드버리는 기업이 존재 이유가 단지 경영진의 이익만이 아닌 같은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삶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 그 책임을 다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