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은 각 산업 분야의 기술혁신을 가져왔고 이를 통해 대량생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생겼고 이들중 상당수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신대륙 미국을 찾아 이민을 떠났다. 그래서 19세기 내내 미국 동부의 주요 항구에는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러한 이민의 행렬에는 훗날 미국의 철강왕, ‘존경받는 부자’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앤드류 카네기도 있었다.
1835년 영국 스코틀랜드 던펌린에서 직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에 증기식 직조기가 보급 되면서 아버지가 실직하게 되자 열세살 때 새로운 기회를 찾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피츠버그에 정착한 그는 전신국과 철도회사 등에서 일하며 사회를 경험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침대차 사업과 석유사업 등에 투자하며 사업을 익힌 카네기는 제철 사업에 관심을 갖고 1892년 우리가 잘 아는 카네기 철강회사를 만든 것이다.
카네기 철강회사는 발전을 거듭하여 당대 미국 철강의 생산의 1/4이상을 차지하고 이후 1901년 카네기는 모건계의 제강회사와 합병하여 미국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는 US스틸사를 탄생시켰다. 이 합병을 계기로 카네기는 사업에서 손을 뗀 교육과 문화사업에 몰두하면서 제 2의 경영자적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당시 기업들은 사업 수익을 통한 주주 이익 극대화에만 신경을 쓸 뿐 사회봉사나 재산의 환원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었을 때였다.
카네기는 ‘돈 벌기’에만 급급해 한 것이 아니라 그 부(富)를 사회에 환원시킨 존경할 만한 경영자로 거듭났다. 이전의 부자들이 돈을 버는 데만 급급했던 소위 ‘샤일록(Shylock)형 부유층, 졸부’로 평가받았다면 그는 최초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라는 개념을 경영에 접목시켜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간 경영자가 됐다.
결정적으로 카네기는 3억 달러 이상의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그는 사회적, 문화적, 인도적 견지에서 교육 및 학술연구의 진흥, 그리고 사회 봉사활동을 위해 2억 3,600만 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신탁해 카네기재단을 설립했다.
또한 그는 미국인 및 영국연방 주민간의 지식보급과 이해의 증진을 목적으로 1억 3,500만 달러의 기금으로 뉴욕 카네기 문화 재단을 설립하였다. 대학과 그 외의 교육시설, 성인교육, 미술교육, 기타 계획을 재정적으로 원조하고 있으며 1946년 이후 특히 사회과학의 진흥과 교육법의 개선에 중점을 뒀다. 세계 기업사에서 카네기의 경영철학(자선문화 정착, 기업가 정신)은 20세기 세계 경제에서 미국 경제가 주역 역할을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카네기는 저서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을 통해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를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철학을 이야기했다. 그는 인생에 두 시기가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돈을 버는 시기이며, 또 하나는 돈을 나누는 시기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철학이었던 두 개의 시기를 아름답게 이루었다.
'사회혁신 > 기업사회혁신(CS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비자운동의 기수 랄프 네이더 (0) | 2012.04.15 |
---|---|
자동차 산업의 수요와 공급을 같이 창출한 헨리포드 (0) | 2012.04.14 |
19세기 사회적 책임을 다한 초코렛 명가, 캐드버리 가문 (0) | 2012.04.12 |
전략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와의 소통이다. (0) | 2012.04.08 |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0) | 2012.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