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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기업사회혁신(CSI)

자동차 산업의 수요와 공급을 같이 창출한 헨리포드

사람들은 19세기를 발명의 세기라고 부른다. 앞세기에 시작한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수많은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도 이때를 살았던 사람이다. 현대사회에는 없어서는 안 될 자동차도 19세기에 발명되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일부 괴짜 발명가들이 피크닉을 갈 때, 자신이 개발한 자동차에 귀부인들과 점잖게 앉아서 즐기던 물건이었다. 이 때의 사람들은 누구도 ‘말 없는 마차’에 불과한 자동차가 미래에 지구를 온통 뒤덮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896년 자신의 집에서 자동차를 개발한 헨리포드는 1903년 디트로이트 중소 자본가들의 자금을 모아 포드자동차를 설립했다. 포드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을 때 이미 디트로이트 주변에만 50여개의 자동차 회사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드는 기존의 자동차 회사들이 갖고 있는 자동차에 대한 철학이 달랐다. 포드는 자동차가 미래의 주요한 운송수단이 될 것이며, 자신의 발명품을 단순히 몰고 다니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동차의 생산과 소비에 대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를 부자들의 놀이기구 정도로 생각하며 생산하고 있을 무렵 포드는 자신의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에 누구나 구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먼저 포드는 판매가격을 낮췄다. 최초의 T형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1908년 당시 다른 자동차 회사들의 자동차 값은 평균 2천 달러 정도. 그러나 포드는 이때 T형 차를 8백 25달러에 팔았다. 그후 가격은 더욱 떨어져 3백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포드는 어떻게 이렇게 싼 가격으로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었을까?


포드 이전까지의 자동차가 장인들에 의해 수공 생산되던 수공품이었다면 포드는 대량 생산과 생산기술 혁신을 통해 자동차를 공산품으로 생산해냈다. 지금까지는 노동자들이 공구를 들고 작업대로 찾아가 제품을 만들고 조립해왔지만 포드에 이르러서는 컨베이어 벨트가 끊임없이 생산조립품을 실어 나르고, 노동자들은 나눠 받은 작업동작을 온종일 반복하는 풍경이 일상화되었다. 생산 비용이 절감되고 생산량이 증가했다.


포드는 이런 생산시스템으로 인해 생긴 생산비 절감의 효과를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언하고 1914년부터 노동시간을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고, 당시 동종업체의 평균임금 수준이 2.34달러였던 때에 하루 최저임금을 5달러로 인상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른바 ‘포드맨’이 되기 위해 장사진을 쳤고, 포드는 그들 가운데 우수한 인력을 채용할 수 있었다. 또한 포드의 노동자들은 경쟁업체들 보다 두 배의 소득을 올리는 만큼 구매력이 커졌고 결국 자신들이 생산한 차를 자신들이 구매하게 되었다. 포드는 기술혁신을 통해 높은 임금을 주고 낮은 가격에 자동차를 팔아서 자동차 산업의 수요와 공급을 함께 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헨리포드에게 긍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동차산업 발전의 선견지명을 갖고 있던 포드도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등 몇몇 오점을 남길만한 행동을 했고 모델 T의 성장에 흠뻑 취해 신규모델 개발이나 기술혁신에는 다소 소홀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헨드포드의 탁월한 직관력 실천력은 대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새장을 열었다. 말하자면 헨리포드는 ‘현대(Modern)’를 발명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