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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혁신/사회적기업(SE)

(마이크로크레딧) 데이비드 부소,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북한으로 가다.

 


마이크로크레딧과 데이비드 부소

지난 2005년은 UN(United Nations 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The Year of Microcredit)였다. 마이크로크레딧은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의 이용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소액대출해 주는 금융을 말한다.

UN에서 ‘인간이 만든 제도’를 UN의 해에 주제로 삼은 것은 처음이었다. 지구촌에서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인 빈곤을 퇴치하는 데에 ‘마이크로크레딧’이 큰 기여를 하였고 마이크로크레딧의 해의 이듬해인 2006년 마이크로크레딧의 대명사격인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전세계에는 그라민은행과 같은 3,000개 이상의 마이크로크레딧 운영기관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사람이 있는데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북한까지 진출한 오퍼튜니티 인터내셔널 (Opportunity International)의 공동 설립자겸 대표로 있는 데이비드 부소(David Bussau)다.

데이비드 부소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부소는 1940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10대 중반 축구장 스탠드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해 35세에는 건설, 주방용품, 건축 자재 등 20여 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호주에서 제법 알아주는 백만장자가 됐다.






인생의 2막, 마이크로크레딧 사업가

1974년 말 싸이클론이 몰아친 호주 다윈 지역 구호 활동을 시작으로 사회적 필요에 자신의 사업적 재능을 활용하는 사회적 기업가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이듬해인 1975년에는 좀더 체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모은 재산을 출연하여 신탁기금인 마라나타 트러스트(Maranatha Trust)를 설립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지진 복구 사업을 계기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주고 직업훈련을 시키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부소가 처음 투자한 금액은 미화 100달러였는데 투자를 받은 사람은 케투 수위라(Ketut Suwira)라는 인도네시아 농부였다. 케투 수위라는 이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아내와 함께 가내 수공업 형태의 작은 기업을 차려 사업을 꾸려 나갔다. 이 사업을 통해 가난을 극복한 수위라는 현재 무역회사 및 수상 택시 회사 사장이며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이기도 하다. 이것이 데이비드 부소가 시작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의 첫 열매다.

이후 부소는 국제적인 NGO인 오퍼튜니티(Oppirunity)와 연합하여 국제 구호개발 단체인 오퍼튜니티 인터내셔널 공동 대표로가 된다. 오퍼튜니니 인터내셔널은 1970년대 초반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시작한 단체 중에 하나다. 부소는 이 단체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 사업과 직업훈련 및 창업 프로그램을 실시해 세계 27개국 108만 고객에게 125만 건 이상의 대출 사업을 주도하게 된다.

부소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가 활동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인 언스트앤영(Ernst&Young)사가 주관하는 '2003 올해의 호주 기업인상'을 받았다. 언스트앤영사는 해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에 상을 수여하는데 일반 영리 회사가 아닌 비영리 기관의 대표가 상을 받은 것은 데이비드 부소가 처음이었다. 또한 부소는 호주의 대표적 국가 리더에게 주어지는 '2008 올해의 호주 시니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소는 고아로 자란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어린 시절의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빈곤 탈출에 도움을 주고 있는 사회적 기업가다. 어려웠던 시절 좌절 하지 않았고 이를 극복하여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다가가 진정한 섬김과 나눔이 무엇인지 직접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부소, 평양에 가다

부소는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반쪽 북녘 땅에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평양 사람들은 부소가 자신의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한 마라나타 트러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좋은 일을 하는 외국기업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라나타 트러스트는 2004년 북한 재무성과 합작으로 조선-마라나타 신용회사를 설립해 평양을 중심으로 공장, 기업소, 개인 등에 경영 활동에 필요한 자금 대출 및 컨설팅 지원을 시작했다.

북한 시장에서는 조선-마라나타 신용회사에서 빌려간 돈으로 상점을 임대해 상품을 파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상품들은 음식과 비닐봉지, 화장지, 약품 등 다양하다. 지구상에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에서의 이러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의외의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변화가 없는 나라 인 듯 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마이크로크레딧란 시스템을 통해 그들 나름대로 시장과 자본주의의 개념을 느리지만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부소의 마라나타 트러스트는 기회가 허락된다면 평양 중심의 사업장을 전국 단위로 확장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이들이 전략적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지역이다.

북한 당국은 2002년 경제개혁 조치 이후 기초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위해 각종 법률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2006년에는 국가 중심의 단일 자금 공급체제를 탈피를 뜻하는 상업은행법을 신규 제정했다. 데이비드 부소는 북한에서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인정받아서 최근 북한 당국으로부터 상업을 설립해서 운영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데이비드 부소는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그는 기업가 정신으로 사람들에 직면한 ‘가난’을 극복하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적 기업가다. 특별히 그는 우리의 반쪽 북한에서도 이러한 아름다운 사업을 하고 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정치적인 체제도 다르다. 아마도 그가 북한에 가게 된 것도 고아로 자란 자신의 환경에 좌절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빈곤 탈출에 도움을 주고 그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