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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gets to say innovation, questions beyond slogans" Yesterday, a presidential candidate in Korea announced that he was running for office.During his speech, he mentioned the debut of Seo Taiji in 1992.He used Seo Taiji as a symbol of starting a new era, which was an interesting choice. But this makes us ask an important question:Has this candidate really played the role of a pioneer and innovator like Seo Taiji?Or has he been more like the judges.. 더보기
"혁신을 말할 자격, 슬로건 너머의 질문" 어제 한 대선 후보가 출마선언을 하며 ‘1992년 서태지의 데뷔’를 소환했다.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서태지의 예를 든 건 흥미로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본인이 과연 ‘서태지’처럼 시대를 앞서간 개척자이자 혁신자의 자리에 있었는지,아니면 서태지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를 비난했던 심사위원의 자리에 있었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단지 슬로건만으로 열리지 않는다.누구나 과거의 혁신 사례를 인용할 수는 있지만,그 사례 속 주인공과 같은 역할을 실제로 해왔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대선 후보의 살아온 길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그가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서 걸어온 길은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이제는 인생의 후반기를 사회에 봉사하며, 책임 있는 삶으.. 더보기
NED 이후의 길, 한국형 기금으로 나아가자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나 통일 문제를 넘어서,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며, 그 목표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 자체가 부족했다고 본다. 아마도 6월 이후에는 지난 3년간 쌓여온 일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북한·통일 분야의 위축은 분명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통일을 지향하는 다양한 단체와 개인 간의 상호 이해와 존중은 정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이는 이해관계자들 간의 지속적인 노력과 소통이 필수적이다. 통일운동의 주체들이 서로를 경쟁 상대로 보거나, 정파적 프레임에 갇혀 단절되는 상황은 오히려 통일 담론의 생명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나 역시 통일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떻게 할 것인가(how to)’..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