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이 동산에 할 일 많아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 날에 일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가 삼천리 강산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봄 돌아와 밭갈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 날에 일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가 삼천리 강산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곡식익어 거둘때니 사방에 일꾼을 부르네
곧 이 날에 일가려고 누구가 대답을 할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가 삼천리 강산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남궁억 선생과 무궁화
우리나라의 국화는 무궁화다. 무궁화는 무더운 여름 햇볕 아래에서도 지지 않고 꽃을 피운다. 하나의 꽃이 지면 바로 또 다른 꽃이 피어나며, 끊임없이 피고 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무궁화는 한민족의 강한 생명력과 끈기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진다.
무궁화의 영어 이름은 **The Rose of Sharon(샤론의 장미)**이다. 성경에서는 이 장미를 예수님을 상징하는 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사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라네” (아가서 2장 1절, 현대인의 성경)
“I am a rose of Sharon, a lily of the valleys” (Song of Songs 2:1, NIV)
여기서 **샤론(Sharon)**은 이스라엘의 평야 지대를 말하는데, 험하고 거친 세상을 뜻하기도 한다. 샤론의 들판에 핀 장미는 흔한 야생화이지만,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강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 그리고 향기로운 삶을 닮았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무궁화 역시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다. 들꽃처럼 강인하고, 희생적인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꽃이라고 볼 수 있다.
무궁화를 지킨 사람, 남궁억 선생
강원도 홍천은 지금도 무궁화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 지역이 무궁화의 고장으로 불리게 된 데는 한 사람의 노력이 컸다. 바로 남궁억(1863~1939) 선생이다.
남궁억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8년, 홍천을 중심으로 무궁화를 널리 퍼뜨리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그리고 기독교인이었다.
처음에는 조선 정부의 관료로 근무했는데, 청렴하고 바른 태도로 당시 부패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후 독립협회와 YMCA에서 활동하며 언론과 교육, 시민운동을 통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기반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다고 큰 나라가 아니다. 땅이 작고 인구가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진정한 강국이다.”
1907년, 서울 YMCA 강당에서 이 말을 들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큰 감동이 퍼졌다.
무궁화를 심으며 민족을 키우다
1918년, 남궁억 선생은 서울에서의 교사 생활을 접고 강원도 홍천 모곡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거기서 모곡학교를 세우고, 교육과 계몽 운동에 힘을 쏟는다.
그의 학교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풍금 소리에 맞춰 ‘일하러 가세’, ‘무궁화 삼천리’, ‘철 잃은 나비’ 같은 노래를 부르며 우리 민족의 정신을 배우고 익혔다. 학교 구석구석에는 무궁화가 심어져 있었고, 그 꽃들은 조국의 희망처럼 계속 피어났다.
남궁억 선생은 77년의 인생 중 22년을 이곳 홍천 모곡에서 살았다. 그리고 1933년, 일제가 우리의 말과 역사, 정체성마저 없애려 한 황국신민화 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무궁화 관련 사건으로 체포되어 1년 3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감옥에서 나온 뒤 후유증이 심해진 그는 결국 1939년 4월 5일, 7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하나님과 조국을 사랑한 남궁억(南宮億) 선생은 많은 찬송시(찬송가 가사)를 남겼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조선 사람들이 고통을 받기 시작하던 시기에, 그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찬송시를 써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바로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이다. 1922년 발표된 이 찬송가는 당시 교회에 큰 소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 노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멜로디도 이탈리아 오페라 ‘루치아(Lucia di Lammermoor)에서 따온 경쾌한 선율이어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이 찬송가가 민족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나라 사랑 정신을 강하게 담고 있다며 1937년에 ‘금지 찬송가 1호’로 지정해 부르는 것을 금지했다.
하나님 주신 동산에서 일하자
이 찬송은 이렇게 시작한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비록 나라를 빼앗긴 상태였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땅과 자연, 희망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 땅에서 다시 일어나자는 외침이었다.
2절과 3절에는 밭, 일꾼, 곡식 같은 농촌과 관련된 단어들이 등장한다. 당시 조선인의 약 80%가 농민이었기 때문에 이 노래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남궁억 선생은 이 찬송을 통해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다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땀 흘리며 미래를 준비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금수강산의 일꾼들
세상에는 사람을 나누는 다양한 기준이 있다. 그중 하나는 ‘인종(人種)’이다. 인종은 피부색, 머리카락, 얼굴 생김새, 체형 등 외적인 특징으로 구분한다.
또 다른 기준은 ‘민족(民族)’이다. 민족은 같은 지역에서 태어나,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역사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말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외모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민족의식, 민족정신, 민족문화는 우리 삶 깊숙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것은 자부심, 책임감, 독립의지로 이어진다.
민족을 위한 신앙, 교회가 희망이었다
우리 민족이 민족정신이라는 말을 깊이 새기게 된 것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다.
나라를 빼앗긴 후, 우리 국민은 “역사를 되찾고, 문화를 지키고, 조국을 되찾자”는 마음으로 민족운동을 시작했다.
그 중심에 한국 기독교와 교회가 있었다. 많은 청년들과 지식인들이 교회로 모여들었고, 교회는 민족 독립의 희망이자 정신적인 중심이 되었다.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것이 곧 자유를 찾고 독립된 나라를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라를 위해 일한 기독교 민족주의자들
기독교는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들어왔지만, 이후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위한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예를 들어,
- 이상재(李商在)
- 안창호(安昌浩)
- 이승훈(李昇薰)
- 조만식(曺晩植)
이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한 사람들이다.
지역도 다르고 활동 분야도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하나님이 주신 삼천리 금수강산을 지키고, 그 땅에서 일꾼으로 살아가겠다는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