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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 북한에 부는 마케팅 바람> 서문

 

 

코로나 창궐로 인해 한창 사회가 우울해질 무렵인 2020년 3월 오랜 지인인 한국자유총연맹 이용호 차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선배, 저희 회사에서 <자유마당>이라는 월간 잡지를 발행하는데요 통일문제와 관련된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해 줄 수 있나요?”

 

“이 차장, 좋은 제안이긴 한데… 남북관계도 안 좋고 코로나 바이러스 로 인해 사회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쓰지?” 

 

“예전에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을 가다듬어 올려 주셔도 좋고 선배만 의 시각으로 북한과 통일문제를 분석한 글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부 담 갖지는 마세요. 연락 기다릴게요.”

 

통화를 마치고 이내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여년전 젊은날을 떠 올려 보았다. 2000년 여름 한반도는 남북화해의 열기로 뜨거웠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았고 경제/사회교류도 늘어났다. 당장 통일까지는 아니지만 오랜 갈등의 세월을 극복하리란 믿음도 커졌다. 이때 한국은 정보기술(IT) 혁명 의 한복판에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수 천만 명, 휴대폰 보급대수 천만대를 돌파한 것이 이 시점이다.

 

통일문제를 북한의 정보기술과 세계화 등에 접목 시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용호 차장을 처음 만난 것도 이즈음이다. 이 차장과는 활동을 같이 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야기들 중에는 북한의 경 제와 기업, 남북경제협력, 한반도 디지털화 등과 관련된 이슈들이 있었다. 

 

이때 틈틈이 읽었던 책과 정리해 놓은 리포트의 상당 부분이 북한의 기업과 상표에 관련된 것들이다. 당시는 관련 자료도 개인적 역량도 부족 했던 때라 기회가 되면 종합적이면서 체계적인 분석을 해보리란 생각을 하 곤 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이차장의 전화를 받고 그때의 일들이 생각 났다. 그리고 그때의 관심 주제였던 북한 경제, 기업, 상표를 되내어 보았다. ‘이 제 다시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이용호 차장에게 연락을 했다.

 

“이 차장, 한번 도전해 볼게요. 내용이 좀 엉성하더라도 도전해 보죠. 그리고 제 글에 오탈자가 좀 많아요.”

 

이후 원고 기획에 들어갔다. 정기적으로 잡지에 기고할 주제는 ‘북한 에 부는 마케팅 바람’으로 정했다. 영어로는 ‘Marketing In North Korea’다. 2020년 4월부터 2년여간 25회의 연재를 하였고 기고한 내용들을 정리하여 이렇게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마케팅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용어다. 영어 단어 Marketing 은 Market(시장)에 현재진행형 ~ing를 붙였다. 마케팅은 시장과 시장 주변 의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각종 행위를 의미한다. 마케팅이 학문으로 정립된 것은 100년이 채 되지가 않는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 교과목이 ‘마케팅원론’이며 직장인들이 자기계발 차원에서 가장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야가 바로 ‘마케팅’이다.

 

‘북한’과 ‘마케팅’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마케팅에 북한을 접목하 는 것에는 웬지 모를 부담감이 있다. 특히 ‘북한 내에서의 마케팅 현상’은 더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에게 두 개의 조합을 이야기 하면 ‘사회주의, 전체 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는 북한에서 자유로운 기업활동이 가능한가?’ ‘자본 주의의 꽃이라 불리우는 마케팅, 브랜딩, 광고 등이 북한에서 과연 현실성 이 있는가?’라며 반문하곤 한다.

 

폐쇄적인 북한이지만 비효율적인 내부 시스템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 지는 분명히 있다. 북한은 기술혁신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고 자원의 낭비 를 줄이고 효율적인 상품 유통을 하고 싶어한다. 또 소수이긴 하지만 구매 력이 있는 북한 소비자들은 세련된 디자인의 상품을 필요로 한다.

 

외부에서 바라는 대변혁은 아니지만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각종 시 스템을 개선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아직 미비하기는 하지만 경영 기술과 창업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했으며 생산현장에서는 품질개선 교육 과 원격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이전 보다 많은 소비재 상품 을 생산하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과 디지털 결제서비스도 도입했다. 그리 고 브랜드의 지적 재산권, 패키징, 디자인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해 석은 분분하지만 분명 북한에도 마케팅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 책은 지금 북한 사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업과 마케팅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먼저 ‘북한에 부는 마케팅 바람’의 기획을 제안해 주신 한국자유총연맹 이용호 실장께 감사드 린다. 그리고 21년전인 2001년 북한 브랜드에 대한 첫 리포트 썼을 때 부족 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영수 서강대 명예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 체제의 작동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는 김 교수님의 말씀은 이번 책쓰기에 좋은 밑바탕이 되었다.

 

본 기획에 있어 여러모로 조언을 해준 동아대 강동완 교수에게도 감 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접경지역인 서해5도를 다니며 북한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를 줍고 그안에 담긴 정치/경제적 함의를 분석하는 모습은 늘 새로 운 도전을 준다.

 

그리고 일터인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의 이영선 이사장님, 이종원 상 임이사님을 비롯한 임직원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재단 식구들과 함께 통일의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귀중한 선물이자 값을 매길 수 없는 특권이다. 덧붙여 이러한 인연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신 주용중 조선일보 편집국장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 영라와 올해 중학생이 된 아들 예찬에게 도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아들 예찬이가 훗날 기성 세대가 되었을때 ‘통일’이란 단어가 미래의 바램이 아닌 역사책의 한구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22년 가을 바람을 맞으며  전 병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