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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기업이준비하는통일

일제시대, 일본·조선·만주는 하나의 광역권



일본의 철도 부설은 한반도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은 일명 만철(滿鐵)’이라 불리는 남만주철도부설권을 확보했다


만철은 러일전쟁 이후부터 약 40년 동안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의 침략을 목적으로 경영한 철도이다. 원래는 1901년 러시아가 요동반도 조차조약에 의해서 취득한 부설한 것을 1904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로 간판을 바꿨다


만철의 광대한 철도과 그 부속지는 일본의 만주 침략의 전초기지로 활용 되었다. 일본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조선철도와 만주의 철도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다. 철도를 통해 일본 조선 만주는 하나의 광역권이 되었다. 당시의 신문들을 보면 일본조선만주를 가리켜 약어인 일//만으로 통칭하며 하나의 광역권임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연결하며 일//만 사이에 수 많은 물자와 사람이 오고 갔다. 대표적으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도 일본대표 선수단의 일원으로 15일간 기차를 타고 경성(서울)을 출발하여 만주-시베리아와 유럽의 독일로 갔다.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 위성국가인 만주국을 세운다. 일본의 점령하여 놓인 만주는 한때 동양의 서부로 불렸다. 중화학·군수공업 단지 건설에 힘입어 19312억 엔 수준이던 공산품 생산액이 1943년에는 40억 엔 수준으로 뛰었다


일본이 1930년 세계를 휩쓴 대공황을 가장 빨리 벗어난 것도 일종의 만주 특수 덕분이다. 우리민족도 만주국의 주요 구성원 중 하나였다. 1940년대 만주인구 중 조선인은 210만 명 정도였다. 19세기 만주에는 한족·만주족·러시아·조선인·일본인·몽고인들 외에도 프랑스·독일·폴란드·우크라이나·타타르 등 50개가 넘는 민족, 45개 언어가 혼재했다. 만주는 다양한 민족을 빨아들인 블랙홀이자 욕망의 공간이었다.

 

이때 적지 않은 조선의 기업인들이 만주로 진출했다. 대표적으로 국내 최초의 브랜드이자 민족 기업인 동화약품의 부채표 활명수1937727일 만주국 봉천 (현재의 심양) 중앙 특허사무소에 특허 출원하며 만주에 진출했다. 만주 진출의 교두보로 193812월 만주 안동지점을 개설했다. 활명수는 만주에서도 인기가 좋아. 한반도 남부에서 올린 매출보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국에서 올린 매출이 더 많을 정도였다. 일본 조선 만주가 하나의 광역권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물론 철도의 건설 및 운영 주체와 그 수익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