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케팅의 세가지 물결
기업이 최선을 다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랭하다면 어떻게 될까? 재정적인 타격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마음으로부터 기업 자체가 멀어지게 될 것이고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내는데 실패를 거듭한다면 결국 기업의 문을 닫아야만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에게 소비자는 섬겨야 할 권력 그 자체가 되었다. 20세기 중반까지 만해도 경제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공급 업자들이 주도했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니 소비자들의 목소리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상황은 역전되기 시작했다.
기술개발과 대량생산으로 공급이 확대되고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결정되기 시작했다. 거대기업 GM을 상대로 싸워 승리한 랄프 네이더(Ralph Nader) 같은 소비자 운동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소비자 운동이 시민운동의 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기업들 역시 소비자들의 만족을 위해 제품 개발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더욱 더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이때 생겨난 학문이 바로 경영학의 마케팅이다.
헤미쉬 프랭글은 저서 <공익마케팅>에서 마케팅의 세가지 물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성, 감성, 정신의 순서로 이어지는 3가지 물결의 시작은 19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구 사회에 텔레비전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광고의 붐이 일어났다. 이전의 주먹구구식 마케팅에서 벗어나 과학적인 사실을 도입해 마케팅 되었는데 이를 첫 번째 이성적 물결이라 부른다. 이성적 물결의 시대는 브랜드 보다 물리적인 상품의 차이가 더 중요했다. 대표적으로 일회용 반창고인 밴드에이드(Band Aid)는 품질을 직접 보여주는 실연 광고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기업은 가격과 품질을 최우선으로 하고 시장에서는 수요가 공급에 앞서며 상품의 시장침투율이낮아 소품종의 상품을 대량생산 대량 판매하는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을 특징으로 한다. 소비자는 상품이 제공하는 기능을 구매해서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판매되는 상품의 품질이 보장되고 가격이 구매에 장애가 되지 않는 상품은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상품을 생산하는 기술수준이 낮고 소비자욕구가 세분화되기 이전의 초기마케팅시대였다. 생산된 상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서 대리점과 소매점을 잇는 수직적인 유통경로를 이용했으며 상품판촉을 위한 광고활동으로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와 같이 매체 커버리지(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경우)가 높고 일방적(1Way) 정보 전달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매스미디어(Mass Media)를 주로 사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장판매를 위한 상품생산과 소비자구매를 촉진하는 마케팅활동이 본격화 되었다.
마케팅의 두 번째 물결은 감성적 물결이다. 1964년,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이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라는 저서를 출간했던 시점부터 감성적 물결은 시작 되었다. 마케팅에서의 ‘감성’적 흐름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들며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감성마케팅은 늘 감동적인 메시지와 아름다운 화면이 동시에 제공되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상품에 감성이 첨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들은 그 상품을 본질적으로 다르게 받아 들였다. 예를 들어 콜라를 마시더라도 상품성이 아닌 브랜드를 보고 마시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품생산기술의 발전과 함께 소비자들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면서 소비자는 개개인의 기호에 맞는 다양한 상품을 요구하고 기업은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생산해서 판매하는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로 발전하게 된다. 소비자는 점점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욕구를 중요시하게 되며 이렇게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룹화됨에 따라 기업은 시장의 요구에도 부응하고 총 수익도 높일 수 있는 타겟마케팅(Target Marketing)을 개발한다. 또 상품은 기능적 가치 이외에 소비자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미적 소비경향)시켜 줄 수 있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브랜드는 이렇게 기능과 감성이 융합된 상품이 소비자 자신을 표현하고 상품과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등장하였다. 상품가격은 이제 원가에 의한 가격책정뿐 아니라 마케팅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나 타겟이 되는 소비자의 가처분 소득(더불어 한계효용에 따라)을 겨냥한 가격을 요구하게 되었다.
두 번째 물결인 감성적 마케팅은 1990년대 서구사회에 불기 시작한 ‘애타주의’ 분위기 확산으로 새로운 가치관과 브랜드에 관한 의식의 변환을 계기로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취하게 된다. 바로 정신적인 물결이다. 물리적 차원의 상품보다 브랜드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바디샵(The Body Shop)이 환경 문제를, 미국에서는 리즈 클레이본(Liz Claiborne)이 가정 폭력 예방과 같은 특정 사회 이슈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제 3의 물결을 선도해 나갔다. 마케팅 제3의 물결은 기업의 이윤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존의 마케팅 정의와는 다르게 사회적 가치 창출이 필요하게 된 새로운 마케팅의 탄생, 마케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마케팅 제3의 물결은 마케팅이 ‘사회적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마케팅이냐는 것이다. 3세대에서는 상품생산과정도 소비자의 욕구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의 개발, 재생산(Recycle), 재사용(Reuse), 비사용(Non-Use) 그리고 공유사용(Sharing) 모두를 포함하여야 한다. 품질, 가격 그리고 이미지에 이어서 사회적 의미를 상품구입에 중요한 가치요소로 생각하는 시민소비자(Citizen Consumer_사회적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소비자를 일 컷는 말)는 자신과 공동체를 지속가능 하게 만들 수 있고 사회적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건강, 환경, 공유이익을 전제로 상품을 구매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자제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상품정보를 적극적으로 공유한다.
이러한 흐름을 마케팅의 석학 필립코틀러는 마켓 3.0으로 설명한다. 1.0 시장이란 ‘이성’을 키워드로 품질 등 제품력으로 승부를 걸던 시장이며 낮은 가격에 쓸모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판다는 개념의 제품 중심의 시장이다.
2.0 시장이란 ‘감성’을 키워드로 서비스와 고객만족으로 승부하던 시장이다. 정보화와 함께 소비자가 좋아하고 원할 만한 물건을 파는 소비자 지향 시장이다. 지금 수많은 기업이 채택하고 있는 마케팅 방식이다.
3.0 시장은 이익 실현과 고객 만족을 넘어 기업이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활동을 하고 소비자들도 발달한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장이다. 마켓 3.0에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기업의 활동은 그 자체가 곧 마케팅이 된다.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가 기업을 상징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결정하고 있다. 코틀러 교수는 3.0은 승자독식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함께 창조하고 함께 만드는 공동체적인 특성을 가지며, 압도적인 기술을 통해 다른 기업을 따돌리면서 사람들의 '영혼'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발상 전환에 능한 기업만이 3.0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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