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중심으로 세계를 볼 수 있고, 자국 중심으로 역사를 볼 수도 있다. 이것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만족감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세계와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없게 하고, 이들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세계와 역사가 온통 복잡하게만 느껴지고, 자기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불만과 분노만이 일어날 뿐이다. 이러한 상태로는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할 수 없다.”
- 배기찬,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 중에서
냉엄한 현실 속에서
배기찬 전(前) 청와대 동북아비서관은 저서 <코리아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다>에서 한반도와 패권세력의 역학 관계에 대한 분석을 했다. 배 비서관은 한반도에서 통일, 분열 등 정치적 대변동은 거의 예외 없이 중국대륙의 패권 변화와 연관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중국대륙이 통일되었을 때 한반도에서도 통일 또는 새로운 국가의 생성이 있었고, 대륙이 분열되었을 때는 한반도 역시 분열되는 국면을 맞이했다. 우리가 '자주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는 고구려로부터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은 중국대륙 패권질서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 흐름에 지혜롭게 대처해왔다. 무조건적인 자주가 아니라, 패권질서에 순응하며 조화로운 공존이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거대 패권세력 바로 옆에서도 민족의 '자주성'을 지켜올 수 있었다. 중국과 국경을 인접한 나라 중에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흡수되지 않은 민족은 한국과 베트남 단 2개의 민족뿐이다. 16세기 이후 조선은 이러한 '패권질서의 파도타기'에 실패하여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사대'(事大)라는 수단이, 민족의 번영과 생존이라는 목적을 대신하게 되고,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버린다. 혼돈 속에 빠져버린 조선은 패권질서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국제정세에 흐름에는 눈을 감아 버린다. 그리고 중국대륙 패권에 완전히 몸을 맡겨버리고 만다. 그 결과 조선은 청나라와 거의 동시에(조선 1910년, 청 1912년) 나라가 멸망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의 커다란 패권 국가의 한가운데서 분단의 현실을 살고 있고 통일을 꿈꾸고 있다. 통일문제는 민족의 문제이면서 곧 국제문제이다. ‘우리민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하지만, 아울러 국제관계를 외면한 통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관계, 점점 심해지는 북한의 중국 의존은 통일 과정에서 넘어야할 험준한 산맥들이다. 한반도의 이해 관계국인 일본과 러시아에게도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적지 않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통일의 주체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조정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바와 현실의 난제들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선배들의 도전과 아픔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있겠지만 고종의 아내로 조선 침략의 야욕을 부리는 일본을 견제하다 결국 일본 낭인들의 칼에 의해 희생된 명성황후(1851~1895)도 그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민족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백성들이여 일어나라’를 들으며 감동의 전율을 느낀다.
한발 나아가면 빛나는 자주와 독립
한발 물러서면 예속과 핍박
용기와 지혜로 힘 모아
망국의 수치 목숨 걸고 맞서야 하리
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 하리
조선이여 영원하라 흥왕하여라
뮤지컬 내용은 감동 그 자체이지만 대외 정세를 읽지 못하고 안일한 대응을 했던 우리의 모습에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우리는 그랬다. 한국은 지금 역사 앞에 또 다른 과제들을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이 되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점점 다문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남한은 성공한 개발도상국의 모델이 되었고, 북한은 유일무이한 사회주의 3대 세습이 이루어진 파탄한 국가의 모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나가느냐에 따라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동녘의 붉은 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뮤지컬 속 명성황후의 고백은 뮤지컬 속에서만 남고 더 이상 반복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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