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한국/통일시대를 살다

조정래의 소설 <한강>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보며 소설가 조정래는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GDP가 1만 달러가 되었고, OECD에 가입해야 된다고 분주해 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당시 앞만 보고 달려온 한국 사회는 국민소득 1만 달러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꿈처럼 여겨왔던 1만 달러의 달성이 놀랍기도 했고 그 다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 없이 통계 수치상의 선진국 진입을 이야기했다. 이 무렵 조정래 작가는 불후의 명저인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거쳐 해방 이후를 다룬 새로운 대하소설 <한강>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가 <한강>을 집필하려고 했던 의도는 비교적 간단했다. 시위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시끄러운데 나라는 망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되었다는 것에 놀라 그 저력을 한 번 파헤쳐 보고 싶다는데 데서 동기를 찾았다.


조정래는 <한강>에서 6·25 이후 남북한 정권이 민족 분단을 어떻게 획책·강화시켜왔는가 하는 점과 함께, 우리의 경제발전은 어떤 경로를 거쳤고 그 참 주인공들은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동안 <태백산맥>과 <아리랑>에서 보여 주었던 작품 세계와는 사뭇 다른 이야기들을 전개해야 했다. 조정래는 작품을 구상하고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포스코의 철강 생산과 중동 여러 나라에서 벌어들인 오일달러 두 가지가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이룩해낸 주역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보수의 원조, 철강왕 박태준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을 만나 살아 있는 경험담을 듣고 소설 <한강>을 써 나간다.


<한강>은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민족분단과 경제성장에 가려진 한국인의 진정한 초상을 유일민과 일표 형제, 일민의 선배 이규백과 김선오의 시각을 중심으로 그린다. 이들은 현실 앞에 좌절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청춘을 불사르기도 한다. 급속한 경제성장 이면의 그늘 아래 수많은 군상들의 눈물과 웃음, 배반과 음모가 인간과 사회의 거대한 대 서사시 <한강> 속에서 유유히 펼쳐진다.


<한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 이웃들의 자화상이며, 이 인물들이 겪게 되는 현실은 바로 지난날 우리들이 걸어온 길이다. 그리고 대하소설로서의 일관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현실의 갈등들은 역사적 진실로서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한반도의 현실로까지 이어져 진정 이 시대를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