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1959년~1976년은 참 묘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초점은 대외보다는 대내였다. 10억 인구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주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며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고 했다. 대외무역이나 외국 자본 및 선진 기술 도입을 통한 산업화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전략을 통해 단순 임가공부터 시작해 경공업, 중화학 공업, 전자산업 등을 추진해 산업화에 길에 들어선다. 저렴한 임금의 우수한 노동력, 외자 도입, 정부의 강력한 수출 진흥책 등이 한국 경제를 키운 요인들이다. 이때 아시아에서 한국의 경쟁자는 대만, 홍콩, 싱가폴 같은 한국보다 체구가 작은 곳들이었다. 한국은 이들과 비교해서 나름 비교 우위를 누리며 빠른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존재하지 않지만 한번 생각을 해보자. 만약,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류사오치가 자본주의 시스템을 빨리 받아들여 1960년대 초부터 덩샤오핑이 추진했던 개혁개방 정책을 10여년 앞당겨 실시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한국은 더 힘겹게 경쟁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중국을 방문한 첫 미국 대통령은 1972년의 닉슨이 아닌 케네디나 린드 존슨이 되었을 것이고 미국과 서방세계는 중국에 신경 쓰느라 한국에겐 신경을 덜 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한국 경제는 중국의 성장과 서방의 무관심에 위축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비관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중국의 침체가 한국에겐 호기이고, 중국의 성장이 한국에겐 위기라는 공식이 반드시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일찍 개혁․개방정책을 추진 했다면 한국은 좀 더 일찍 중국 시장을 활용했을 것이고, 동북아 역학 관계가 바뀌면서 남북 관계도 새롭게 조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한국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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