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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통일한국 스토리텔링

북한, 물난리를 겪은 남한을 지원하다...(1984년 이야기)

  




언론에서 종종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보도를 한다. 의약품, 식량, 생필품 등 구호품들이 인천항에게 컨테이너 박스에 실려 북한 남포항으로 선적 되는 모습을 뉴스에 방영한다. 남북관계에서 대북지원은 없어서는 안 될 단골 메뉴가 되어 버렸다. 그럼 언제부터 남북간에 이런 구호물자들이 오갔을까?

때는 1984년....지금처럼 남한이 북한에 지원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때는 오히려 북한이 남한에 물자를 주었다. 1984년 9월 남한 수도권과 중부권역에 태풍이 불고 집중 호우가 내렸다. 국가적인 위기가 도래 할 만큼 큰 자연재해도 아니었고 상대적으로 큰 피해도 입지 않았다. 북한이 적십자사를 통해 의례적으로 물자원조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전에도 북한이 원조를 하겠다고 몇 번 제안한 적은 있지만 남한은 늘 거절 했었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의 물자지원 제안을 받아 들였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지원한다는 북한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대남지원’(?)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북한에서 쌀을 비롯한 구호품들이 들어왔다. 이 구호품들은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양질의 제품은 아니었지만 금단의 땅 북에서 왔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북에서 온 구호품을 서로 받으려고 하는 일종의 품귀현상(?)도 있었다.

결국 북한의 대남지원으로 어렵게 트인 남북 대화의 물꼬는 다음해인 1985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 방문과 예술단 공연으로 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1990년대 중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 되면서 북한의 가세도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개혁과 개방 보다는 철저한 고립주의 택한 북한은 식량, 에너지, 외화, 생필품 부족이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차원에서 ‘고난의 강행군’이라는 김일성 항일 투쟁당시의 전설적 일화(?)를 다시금 내세워 위기 극복을 하려했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는 탈북자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결국 북한은 남한과 국제 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민족애와 인도주의 정신에 호소를 한 것이다. 이렇게 대북지원 사업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