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Chicago)는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오대호와 미시시피 강을 이어주는 육로 수송지로 발전하면서 19세기 중반부터 빠르게 성장한 시카고는 1837년 시로 승격되었다. 오늘날 시카고는 경제, 무역, 산업, 과학, 통신, 교통의 국제적인 중심지이다.
오헤어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혼잡한 공항이며, 미국에서 가장 많은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오늘날 시카고 세계의 도시들 가운데 도시 계획이 잘 되어 있고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이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1871년 대화재로 도시가 전소된 이후 새롭게 도시를 건축했기 때문이다.
시카고의 아름다움은 도시의 미관뿐 아니라 시카고를 거쳐한 수많은 영적 거장을 통해 그 빛을 발한다. 초등학교 졸업에 구두 수선공을 거쳐 18세에 하나님을 믿어 62세에 하늘나라에 갈 때가지 19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사로 활약했던 미국의 D. L 무디(1837~1899) 목사는 회심후 시카고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부흥의 첫 은혜를 누렸다. 시카고에는 무디 목사를 기념하는 무디신학교가 운영 중에 있다.
1860년 시카고 인근에 설립 된 휘튼대학은 수 많은 크리스천 인재들을 배출 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휘튼 동문이 바로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 (1918~ )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젊은 시절 영성과 지성을 훈련했다.
또한 휘튼 출신 동문 중에는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자세로 선교지에 들어간 짐 엘리엇(1927~1956)이 있다. 1956년 1월 8일 짐 엘리엇과 네 명의 선교사는 그들을 만나자마자 하나님의 사랑과 메시지를 한마디도 전하지 못하고 아우카족의 창끝에 살해됐다. 29세 전도가 유망한 청년의 죽음에 대해 라이프지와 타임지 등 언론은 대서특필하며 분노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권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발도 쏘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훗날 예수님의 사랑으로 화해와 용서가 그 땅에 임했고 그 후 아우카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됐다. 짐 엘리엇을 죽인 청년은 나중에 목사가 됐다. 짐 엘리엇은 휘튼대학 시절 일기장에 이런 말을 남겼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 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이런 신앙의 유산을 이어 받은 시카고 휘튼대학에서는 정기적으로 ‘세계한인선교대회’와 한인학생수련회인 ‘코스타’가 열리고 있다.
☞시카고를 위한 기도
① 무디 목사가 가졌던 비전과 열정이 다시금 시카고에 일어나게 하옵소서
② 제2의 빌리 그래함과 짐 엘리어트와 같은 헌신된 이들이 시카고에서 나오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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