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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1948년 5월 31일...이윤영 목사의 기도...(2006. 5. 31)

매년 제헌절 (7월 17일) 즈음이 되면 기독언론들이 지면을 통해 그리고 목사님들이 설교를 통해 대한민국 국회는 기도로 시작 되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제헌국회의원중에 이윤영이라는 감리교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기도를 하셨죠...지금으로로 부터 꼭 58년전인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날 말입니다. 여기서 제헌국회라 함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정하기 위해 선출된 제 1대 국회를 말합니다. 나라의 국법을 만들기 위해 모인 국회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로 시작한 셈이죠.. 이에 대한 자세한 배경은 뒷 부분에 이야기 하기로 하고 먼저 당시 이윤영 목사님의 기도 내용을 한번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써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민생의 도탄이 오래 갈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만 확대될 것이오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속히 이 땅에 임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읽어 보아도 민족을 일제의 압제에서 인도하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 또 민족의 앞날을 향한 즉 통일을 향한 소망의 기도가 가슴 절절히 와 닿습니다.

 

당시 이 기도는 순서에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 하기에는 정말 즉흥적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에도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도 사건(?)은 독실한 감리교 신자였던 이승만 당시 임시 국회의장이 임의적으로 감리교 목사이며 초대 제헌의원이었던 이윤영 목사에게 순서에도 없던 기도를 요청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윤영 목사님도 거절하지 않고  가슴속에 담고 있던 고백을 차분히 기도로 표현하셨죠. 제헌의원 198명중 기독인은 대략 50명가량 되었다고 합니다. 타종교나 종교가 없는 이들이 반발할 일이지만 예상외로 조용히 넘어 갔다고 하더군요...지금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나라가 씨그러울 일이지만요...

 

이 기도문을 여러 차례 읽으며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기도가 드려진 것이 48년 5월 31일입니다. 분단은 일제가 패망한 45년 8월 15일 이후 3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 이었고 남한 단독으로 총선을 치루었던 상황 이었습니다.

 

기도문을 자세히 보면 통일에 대한 언급이 두번이나 나옵니다.

 

분단 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준비하지 않고 즉석에서 이루어진 기도에서 통일에 대해 두번씩이나 언급하다니...과연 기도하신 분은 어떤 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윤영이라는 분에 대한 추적에 들어 갔습니다. 이 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이 날 국회 개원식에서 드린 기도는 즉흥적인 중언 부언이 아니라 이분의 삶의 고백임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890년 평북 영변에서 태어난 이윤영 목사는 평양 숭실사범학교와 서울 협성신학교 (현재의 감신대)를 졸업하였고 젊은날을 평안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교육과 목회활동, 민족운동을 하며 보냈습니다. 3. 1운동 당시에서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루었고 40년대 초반 일본의 기독교 탄압에 반대하여 구속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해방후에는 북한지역의 대표적인 민족인사인 조만식 선생과 함께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 주도적으로 우익활동을 하였으며 소련의 탄압이 극심해 지자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을 하였고 북한 출신의 대표 지도자로 자리 매김하였습니다.

 

서울 종로에서 제헌의원에 당선 되었고 사회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경희대 학장등을 역임하여 사회 봉사 활동을 하였습니다.

 

이윤영 목사가 제헌국회에서 기도를 하게된 그  시점은 그가 평양에서  공산주의의 탄압을 피해 남한으로 내려오고 2년 뒤의 일입니다.

 

분단의 아픔과 신앙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그 이기에 그리고 평생을 교육과 사회 그리고 목회에 전념해온 그 이기에 국회 개원식에서 그러한 기도가 나오지 않았나 합니다. 월남 이후 반공주의자로 살은 그의 삶...그리고 이승만 정권에서 장관고 총리서리를 지낸 그의 이력을 놓고 한마디 하실 분들도 계시겠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민족의 주인이 하나님께고 통일을 소망하며 기도했던 그의 모습을 보며 역사 앞에선 신앙인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1948년 5월 31일...대한민국 국회는 이윤영 목사의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평생을 교육자요 사회운동가요 목회자로 살아온 그가 고백하는 기도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