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을 떠나 농민에서 노동자로 바뀐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일을 해야 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본주들은 일정기간 일에 대한 댓가를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는 방식의 고용관계가 형성 되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법정근로시간, 최소임금제, 고용보장, 아동 노동학대방지 등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낮은 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노동환경 등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산업혁명은 노동자들의 희생의 댓가를 치르면서 이루어졌다. 당시에 일반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희망이 없는 절망의 늪에서 일하는 기계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흘러 열악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가 높아졌고, 나아가 노동자들의 이런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중에서도 “노동자들의 이와 같은 처지는 결국 공장이나 그 설비 등과 같은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하기 때문”이라며 사유재산제도를 폐지하여야 한다는 일련의 사상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은 이를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소규모 집단거주지에서 생산수단을 공유하며 평화롭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를 실제적으로 실천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로버트 오웬(1771-1858)이다
로버트 오웬은 1771년 영국 중부에 위치한 웨일즈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고 있었던 당시의 영국사회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시민과 아이들을 노동의 굴레 속에 가둬두고 있었다. 오웬 역시 고용살이를 통해 쓰라린 경험을 했으며, 16세 때에는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맨체스터로 가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생애에 큰 전환기를 가져오게 된다. 3년 후인 19세 때에는 독립해서 공장 경영주가 됐으며, 20세 때에는 직원 500명을 거느린 대공장의 지배인이 된다. 또한 1800년에는 뉴라나크로 진출해 대공장의 경영을 맡게 된다.
오웬은 이 공장에서 이윤의 추구 보다는 노무관리나 후생설비에 전념하면서 생산율과 수익을 증대시켜나갔다. 특히 그는 아픈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 마련 등 노동자의 인권과 복리후생에 많은 신경을 썼다. 또한 오웬은 6세에서 7세정도였던 아동의 노동연령을 10세 이상으로 제한했고 10세 미만인 아동들을 위해 세계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하여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산업혁명이 가져다 준 병폐를 몸소 체험한 오웬은 이러한 문제점을 정리해 『신사회관』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게 된다. 이후 체계화된 사상을 기본으로 자신이 경영하는 방직공장 내에 ‘성격 형성신학원’이라는 이름의 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또한 오웬은 아동노동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공장법 제정운동을 추진해, 결국 1819년에 이를 이루게 된다. 아동권익이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오웬은 자본주의 경제의 문제점이 화폐가 가치로부터 유리되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고 기계를 이용한 산업이 인류에게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오직 사람의 힘만으로 괭이 등 원시적인 농기구들을 이용하여 경작하는 농업공동체를 제안했는데, 모든 농경 작업과 생산물을 공유하며 아이들도 공동으로 보육하는 이 공동체를 '어쏘시에이션(association)'이라 명명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1824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오웬은 인디애나 주에 땅을 사서 '뉴 하모니 타운'을 설립했고 실제로 자신의 공동체 모델을 실험한다.
하지만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고 그는 1829년에 다시 영국으로 귀국한다. 이후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고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쉬지않고 노동조합운동, 협동조합운동 등 사회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경영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브랜드의 필요성 (0) | 2012.05.01 |
---|---|
과학적 공산주의를 말한 칼 마르크스 (0) | 2012.04.11 |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 (0) | 2012.04.09 |
여성부 선정 여성 유망직업 100선 (노동부, 교육인적자원부 등 공동연구) (0) | 2012.04.06 |
대한상공회의소 선정 7대 분야 유망 직업 (0) | 2012.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