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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영화로 읽는 통일코리아

영화 <한반도>, 남북이 통일을 약속한 이후 벌어진 국권 침탈의 위기







“지금의 상황은 110여년 전 외세가 우리를 갖고 놀면서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황제를 독살하던 때와 대동소이하다. 외세에 대해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대응한다는 것을 영화로 알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다.”

- 강우석 감독, 영화 <한반도> 제작자



‘경의선’이 재개통된 가상(假想)의 날

2006년에 개봉된 영화 <한반도>의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다. 영화는 남북한 사이에 화해무드가 무르익어 마침내 남과 북, 그리고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경의선 철도가 완전 개통하는 가상(假想)의 날에서 시작 된다. 경의선 개통식 현장에서 남북의 정상과 양측 인사들은 금방이라도 깃발을 흔들며 들떠 있지만, 세계 각국의 축하사절단과 외빈들의 빈자리가 싸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경의선 개통을 앞두고 일본 정부는 경의선 운영권을 영구히 일본에 넘긴다는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1907년의 외교문서를 들이밀며 “경의선 개통을 허락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온다. 그러면서 일본은 한국이 이를 무시한다면 157조원의 차관을 빌려주지 않고, 한국에 제공된 첨단기술을 회수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대한 한국 내 정치리더십은 현실론 대 이상론이 극명하게 대립한다. 일본의 존재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현실론을 대표하는 총리(문성근)는 이를 수긍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최근 정치인으로 전업한 배우 문성근의 영화 속 캐릭터는 자신의 갖고 있는 실제 정치적 지향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며 국가적 자존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통령(안성기)은 한일합방의 무효성을 연구해온 국사학자 최민재 (조재현)에게 희망을 건다. 정통 역사학계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역사학자 최민재 (조재현)는 100여년 전 조약문서에 찍힌 국새는 고종이 직접 만든 가짜이며, 진짜 국새를 찾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다시 쓰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민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 대통령은 ‘국새발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그에게 일임하고, 한일관계의 불화를 가져올 가짜 국새의 파장을 우려하며 총리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에게 최민재를 저지할 것을 명령한다.



냉엄한 현실 속에서

영화 <한반도>는 냉엄한 국제관계의 현실과 이상적인 나라의 구현이라는 상상을 결합하면서 20세기초 암울했던 과거에서 부터 통일한국 여명의 그날까지를 대비시킨다. 영화는 명성황후의 시해와 고종 황제의 독살 등을 보여주면서, 이 100년 전의 사건이 현재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궤를 함께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다. 강우석 감독은 좌절했던 100여년전의 우리 역사를 강조하면서 왜곡과 분노로 얼룩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주변관계에 새로운 관심을 환기 시킨다.

100년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정세를 아우르는 만큼 영화 <한반도>는 큰 스케일에 대범한 이야기를 가졌다. 하지만 과거 역사에 대한 무거운 인식이 배경에서 전개되는 영화 속 이야기들은 관객에게 부담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또한 영화 <한반도>에서 제기된 일본의 ‘경의선 소유권’과 같은 가상의 문제 같이 내용과 형식에만 차이가 있을 뿐 통일 이후에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발생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가상의 ‘경의선 소유권’ 보다도 더 큰 문제들이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일문제는 민족의 문제이면서 곧 국제문제이다. ‘우리민족끼리’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하지만 아울러 국제관계를 외면한 통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관계, 점점 심해지는 북한의 중국 의존은 통일과정에서 넘어야할 험준한 산맥들이다. 한반도의 이해관계국 일본과 러시아에게도 통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적지 않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은 통일의 주체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조정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영화 <한반도>에서 20세기 초 일본에 의해 부설된 경의선이 주요 소재였지만 실제 통일이 이루어 졌을 때는 북한과 중국 사이에 맺어진 경제 관련 협약들로 인해 통일 코리아의 미래 자원이 상당 부분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자료들은 없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에 처하게 되면서 중국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대신 북한 내 자원 개발과 SOC (사회간접자본) 부설권을 중국에 넘겨주었다는 보도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구체적인 지역과 사업내용에 대해 보도된 것들도 있지만 실은 우리가 잘 모르는 북한과 중국과의 이러한 협약은 더 많을 것이라는 것의 전문가의 견해다. 이미 북한 땅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북한의 지하자원을 개발하거나 각종 시설들을 만들어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거나 취할 예정에 있다.

만약, 통일이 될 경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처리는 북한과 중국 사이의 기존 계약이 존속 되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북한의 특정 자원에 대해 50년간 채굴권을 얻었다고 했을 경우 앞으로 50년 이내에 통일이 되어도 중국은 50년간의 채굴권을 보장 받는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통일 코리아의 미래 자원들이 하나 둘씩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미래를...

영화 <한반도>에서 일본의 갑작스런 경의선 소유권 주장은 결국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외교 문서에 사용된 국새가 가짜임이 판명 되면서 무위로 끝나고 만다. 해피엔딩인 같지만 그것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험난한 미래의 폭풍전야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며 막을 내린다. 영화 <한반도>는 민족자존, 동북아 국제관계, 통일과 같은 질문에 해답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강대국을 비난하고 일본의 논리를 옹호하는 이를 응징하려 하는 아주 단순한 감정적인 노리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현실세계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방법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 라는 영화 <한반도>의 광고 카피를 기억해야 한다. 영화의 카피처럼 마음대로 통일을 앞당길 수도 없고, 마음대로 기뻐할 수도 없는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 선배들의 도전과 아픔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한다. 다양한 역사적 해석이 있겠지만 고종의 비로 조선 침략의 야욕을 부리는 일본을 견제하다 결국 일본 낭인들의 칼에 의해 희생된 명성황후 (1851~1895)도 그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민족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백성들이여 일어나라’를 들으며 감동의 전율을 느낀다.


한발 나아가면 빛나는 자주와 독립

한발 물러서면 예속과 핍박

용기와 지혜로 힘 모아

망국의 수치 목숨 걸고 맞서야 하리

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 하리

조선이여 영원하라 흥왕하여라



뮤지컬 내용은 감동 그 자체이지만 대외 정세를 읽지 못하고 안일한 대응을 했던 우리의 모습에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풍전등화(風前燈火) 처럼 우리는 그랬다. 우리는 지금 역사 앞에 또 다른 과제들을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이 되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점점 다문화 되어 가고 있다. 남한은 성공한 개발도상국의 모델이고 북한은 유일무이한 사회주의 3대 세습이 이루어진 파탄한 국가의 모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한발 한발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가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동녘의 붉은 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라는 뮤지컬 속 명성황후의 고백은 뮤지컬 속에서만 남고 더 이상 반복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인 과제다. 이제 영화 <한반도>의 광고 카피인 ‘우리는 한 번도 이 땅의 주인인 적이 없었다!’라는 문구는 그냥 영화속의 울림으로 끝을 맺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