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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우리에게 통일은 현재진행형 (아주대 학생들과 백두산 탐방을 마치고) “여기는 백두산. 우리의 맥박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맑고 깨끗한 민족의 정기.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담아 드리고 싶습니다.” 1992년 여름 백두산을 배경으로 제작된 모 식음료의 광고의 카피다. 당시 19살이었던 필자는 화면 속에 펼쳐진 백두산을 바라보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민족에 대한 열망을 같이 품었다. 그 후로 25년. 이젠 어엿한 중년의 나이가 되어 청년들과 함께 백두산을 찾았다. 다시 찾은 백두산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개발의 흔적으로 옛 모습의 정취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연변 조선자치주 역시 순수한 ‘연변 사람’ 이미지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선명 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와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더보기
만약에...중국 문화혁명이 일어 나지 않았더라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던 1959년~1976년은 참 묘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와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이 당시 중국의 초점은 대외보다는 대내였다. 10억 인구를 바탕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사회주의 이상 국가를 건설하며 선진국을 따라 잡으려고 했다. 대외무역이나 외국 자본 및 선진 기술 도입을 통한 산업화 같은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에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전략을 통해 단순 임가공부터 시작해 경공업, 중화학 공업, 전자산업 등을 추진해 산업화에 길에 들어선다. 저렴한 임금의 우수한 노동력, 외자 도입, 정부의 강력한 수출 진흥책 등이 한국 경제를 키운 요인들이다. 이때 아시아에서 한국의 경쟁자는 대만, 홍콩, 싱가폴 같은 한국보다 체구가 작은 곳들이었다. 한국은 이들과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