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하순 유럽(영국, 독일) 필드 리서치를 가는 길에 잠시 중국 상하이에 들릴 예정입니다.
그동안 상하이에 갈 때 마다 익숙한 곳 위주로 갔습니다. 볼것 많은 신티엔디나 와이탄 등을 주로 갔고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중국공산당 1대회지, 루쉰공원(옛 홍커우공원), 그리고 상하이 소재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을 방문했었지요.
이번에는 그동안 안 갔던.. 아니 엄밀히 말해 알지 못했기에 갈 수 없었던 곳을 가보려고 합니다.
먼저, 한국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흔적을 찾아 ‘진자샹성당’을 찾을 예정입니다. 개신교 신자인 저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1880년대에 조선에 온 아펜젤러, 언더우드, 알렌 등 개신교 선교사 위주로 배웠습니다.
하지만 어느때 부터인가 가톨릭 신앙을 가진 친구들과 교분을 갖기 시작하면서 가톨릭 신앙의 한반도 전래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었죠. 김대건 신부가 1840년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는 것은 얼핏 알고 있었지만 어디서 받았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2년전 호기심과 열정에 가득한 청년 김대건을 다룬 영화 <탄생>을 보면서.. 그 장소가 상하이 푸동지구에 있는 ‘진쟈상성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영화를 보며 한 청년의 신앙, 국가, 신문명, 역사,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초’라는 말은 곧 ‘개척’, ‘고독’과 동의어 이기에 연약한 한 인간이 황무지 같은 현실 앞에서 진리를 알고 그것을 전하기 위해 몸부림 치며 자유함을 얻는 것을 보았습니다.
청년 김대건에게는 그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든 공간 중 하나가 바로 상하이였습니다.
이번에는 상하이에서 180년전의 24살 청년 김대건을 만날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 가볼곳은 1937년 일본과 중화민국 사이에 벌어진 상하이전투의 상징적인 공간인 ‘사행창고 항전 기념관’입니다.
2020년에 이를 배경으로 개봉한 영화 <800>에는 이전의 전쟁영화와는 다른 낯선 장면을 보았습니다. 일본군과 중국군은 격렬히 싸우고 있는 반면 강건너 공동조계지역에서는 평온함을 유지하며 밤이되면 화려한 조명과 함께 파티가 벌어지죠. 그 당시 상하이에서는 전쟁과 파티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당시의 국제 정세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800>인 이유는 800명의 중국군 결사대가 2만명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영화를 보며 한가지 알게 된 사실은 당시 일본과 싸웠던 중화민국(현재 대만) 군대의 스타일이 독일군과 유사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 보니 당시 중화민국은 군대를 선진화 하기 위해 독일과 협력하고 있었습니다. 히틀러 집권 초기에도 이러한 협력관계는 유지가 되었죠.
역사의 아이러니인 것이 당시 일본과 독일은 동맹을 맺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중국은 2차대전 이전 군대 선진화를 위해 독일로 부터 도움을 받았고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과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루었습니다. 어찌보면 전쟁은 모순과 광기의 집합체요 표출의 장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이들을 만나보고자 합니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에서 중국 상하이는 커다란 용광로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속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한곳 한곳씩 찾아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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