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배달된 신문을 펴든다. 각종 기사와 광고들로 도배된 신문을 보며 새로운 정보들을 습득한다. 여전히 여야가 답답하게 대치중인 정치면, 낙관과 비관의 경제전망이 팽팽이 맞선 경제면, 고질적인 사교육 문제를 다루는 사회면, 아프리카의 질병 문제의 심각성을 다룬 국제면, 그리고 신문하단의 광고들을 대략 훝어 본다.
그리고 이내 컴퓨터를 켜고 간밤에 온 이메일을 체크하고 인터넷 포털에 게시된 속보성 뉴스들을 확인한다. 종합 일간지 하루치에 실린 정보의 양이 17세기 유럽의 평범한 농부 한사람이 평생 습득하는 지식의 양만큼 된다. 그 만큼 우리는 과거에 비해 지식과 정보가 풍성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방대한 정보 가운데에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소비를 권하는 메시지들이 있다. 제품의 편리함을 이야기 하는 이성적 메시지에서부터 오감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메시지 그리고 특정 브랜드를 구매하면 금방이나 신분이 상승하고 격조 높은 삶을 살것 같은 신데렐라풍의 메시지까지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직간접적으로 하루 3000회 이상 이러한 광고 메시지를 전달 받게 된다.
광고는 사람들의 소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를 갖게하고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 전반적으로 이념적인 색채가 엷어 지면서 사람들은 더욱 더 소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소비는 단순히 아줌마들의 재래시장 장보기 수준이 아니라 일명 ‘몰링’ 이라 불리는 대형 쇼핑몰에서의 문화생활로 격상됐다. 풍족해진 경제력 만큼 소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만족을 얻고 인정을 받기 원하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소비는 과연 ‘미덕’(美德) 일까?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박제가는 저서 ‘북학의’에서 근검절약과 검소함으로는 나라의 경제를 발전 시킬수 있는 없다 하면서 소비를 장려해 생산을 촉진하고 상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소비 미덕론'을 펼쳤다.
200여년전 실학자 박제가의 말처럼 소비는 미덕일까? 소비가 미덕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주 오랜 세월 논쟁이 되었던 문제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소비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소비위축은 곧 경제 불황과, 투자위축, 실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의 적절한 소비는 미덕’ 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소비가 미덕이 되려면 그 소비는 환경파괴나 자원고갈을 초래하거나 가난한 나라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 있는 소비를 가리켜 일명 ‘윤리적 소비’라고 한다. 윤리적 소비란 사람과 동물, 환경,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만들어 낸 물건을 적극적으로 사서 쓰는 것을 말한다.
윤리적인 소비는 아무리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일지라도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환경에 악영향 미치고 동물을 가혹하게 다루거나 유통과정에서 하청기업을 착취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구매를 하지 않는다. 재활용 및 절약,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소비, 제3세계 생산자를 고려하는 공정무역 등이 윤리적 소비의 대표적인 모습들이다.
윤리적 소비를 처음 시작한 18세기 영국 기독인들
윤리적 소비 운동이 처음 시작된 곳은 영국이다. 18세기 후반 양심있는 영국의 기독인들은 노예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두었다. 하나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생각아래 노예무역과 노예제도의 부당함을 이야기 하고 끊임없이 노예 해방 캠페인을 펼쳤다. 이 운동에는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 뿐 아니라 양심 있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노예제 반대론자들 가운데는 소비자 운동을 통해 적극적인 행동을 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중남미 서인도제도로 팔려가서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재배를 하고 그 설탕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구조에 주목했다. 그리고 고질적인 노예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세계 최초의 윤리적 소비운동이고 소비자 주권운동노예들이 만든 중남미산 설탕 불매 운동을 펼쳤다. 당시 영국이 해외에서 수입하는 제1의 품목이 설탕이었던 만큼 설탕이 갖는 경제적인 상징성은 상당히 컸다.
1791년과 1820년 두 번에 걸쳐서 일어난 노예들이 만든 설탕 불매 운동은 당시 영국 사회에 노예제 폐지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실제로 서인도 제도산 설탕 판매가 줄어들고 대신 노예 제도가 없는 동인도산 설탕의 판매량이 높아졌고 영국의 소비자들도 노예제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했다. 노예들이 만든 설탕 불매운동은 1807년 노예무역 폐지 1833년 노예제도 폐지에 선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윤리적 소비’는 어디에
윤리적 소비자는 처음에 소비문화 운동에 동참하던 소수의 사람들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커다란 소비 트렌트를 이끄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기업인 테스코, 나이키, 스타벅스 등은 윤리적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들을 앞 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매장에서 친환경 제품과 공정무역을 제품을 판매하고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환경보호, 생산자의 인권, 현실적인 임금 지급등 새롭게 출현한 윤리적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최근의 윤리적 소비는 초창기 비윤리 제품의 불매에서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제품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제품의 자체에만 가치를 두지 않고 제품과 해당 기업의 사회적 역할 및 윤리성까지 고려한다.
서구 선진국에서는 오래전 부터 윤리적 소비를 가이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기업의 업적을 평가하는 미국의 경제우선권협의회(CEP Council On Economic Priorities)는 1991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더나은 세상을 위한 쇼핑 shopping for a better world>란 책자를 발간해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지역공동체, 환경, 노동, 여성, 소수자 같은 사회적 이슈를 제품의 생산, 유통 과정과 연관시켜 소비자들의 실질적인 구매를 가이드 해주는 일종의 사회 책임 쇼핑 (Socially Responsible Shopping)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윤리적 소비라는 개념을 일반 소비자들이 아직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지식인들과 운동가들 사이에서 윤리적 소비의 필요성에 당위성에 대한 논의와 생활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소비시장 형성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경향신문 2007년 12월 24일자에는 이런 광고가 실렸다.
윤리적 소비는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지구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친환경제품을 구매하는 일부터
아동학대와 노동착취가 없는 공정무역 물품을 구입하고
겨울철 농가소득을 돕는 친환경 우리밀을 찾는 일까지 -
소비활동에서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나와 우리 이웃,
지구환경까지 생각하는 가치있는 소비입니다.
소비만 잘 해도 지구환경을 지킬 수 있습니다.
소비만 잘 해도 더 많은 사람들이 웃는 세상이 됩니다.
윤리적 소비 iCOOP생협에서 시작됩니다.
한국의 윤리적 소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윤리적 소비에 대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생활협동조합(생협)과 아름다운가게의 아름다운 커피 등이 윤리적 소비 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최근에는 YMCA 카페 티모르, 커피밀, 공정무역 의류 그루 등 사업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를 뛰어넘어 일반기업, 대학, 교회로 까지 그 관심과 활동이 확대 되고 있다.
또한 2007년 정부 주도로 사회적 기업이 제도적으로 시행되면서 윤리적 소비를 통한 사회적 기업의 판매망 확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육성 지원하는 ‘함께일하는재단’ 은 윤리적 소비자들을 위한 가이드 북 ‘착한가게(Making a lifestyle change)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데 여기서 ’착한‘이란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윤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착한가게는 일상생활속에 사회적 기업 및 친환경, 공정무역 관련 제품과 서비스를 잘 활용 할 수 있는지 구체적 사례에 대해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착한소비자 K씨의 하루
마포에 사는 K씨.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며, 한 기업의 직원인 그녀의 일상 속에는 늘 착한 소비가 함께 한다.그녀의 행복한 일상을 한번 들여다보자.
07:00 기상. 이른 아침 출근준비를 하는 K씨. 중증장애인을 고용한 사회적기업에서 제작하는 칫솔로 이를 닦고, 우리쌀 미강유로 만들어 우리 농촌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는 천연비누로 세수를 하니 얼굴이 환하다.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네팔의 가난한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친환경소재 옷을 입으니 오늘 하루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08:00 아침.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하루가 편하다. 오늘 아침은 우리콩으로 만들어 담백한 건강두부와 유기농으로 재배한 새싹채소에 팔레스타인 농민들이 일일이 손으로 따서 만든 최고급 등급의 올리브유를 사용한 건강 식탁을 준비해 보았다.
14:20 업무. 회사에서도 그녀의 착한소비는 빛을 발한다. 환경을 생각해 폐카트리지를 재사
용한 재생 토너와 재생 종이로 만든 종이 볼펜을 사용하니 처음에는 무관심했던 사무실 사람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나른한 오후에는 장애인들이 우리밀로 만든 쿠키와 네팔과 동티모르 농민들에게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한 커피로 졸음을 달래본다.
18:00 퇴근. 퇴근 길, 시골에 계신 부모님 건강이 걱정되어 우체국에 들러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들이 직접 재배한 건강콩으로 만든 청국장 가루 세트를 보내주었다.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보내드리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19:30 저녁. 저녁 식사 전 우리 아이를 위한 간식으로 새터민 들이 만든 영양간식 느릅찐빵과 유기농콩으로 만든 유기농 콩버거를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지역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앞치마와 친환경 수세미 사용을 잊지 않는다.
또한 착한가게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윤리적 소비를 향상을 위한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착한 소비 10계명’을 제안하고 있다. 착한 소비자 K씨의 하루가 삶속에 윤리적 소비가 나타나는 드러나는 것이라면 착한 소비 10계명은 이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들이라 볼 수 있다.
1. 착한생산물 매장 방문하기
2. 재활용품으로 만든 물건 사용하기
3. 매달 하루는 착한소비의 날로 정하기
4. 착한 선물로 감동 두 배 전하기
5. 주변에 ‘이로운몰(착한기업쇼핑몰) 추천하기
6. 착한 기업에서 자원 봉사하기
7. 제품의 탄생과정의 과정에 관심 가지기
8. 상품에 대한 착한라벨 확인하기
9. 동물 실험 및 학대하지 않는 제품 구매하기
10. ‘착한소비’에 대해 블로그에 홍보하기
윤리적 소비는 지속되어야
한국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이미 서구 선진국들은 50~60년 이상 이 문제를 갖고 고민해 왔고 수많은 부침들을 거치며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윤리적 소비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가 않다. 좋은 취지이지만 친환경 제품의 경우 일반 제품들에 비해 가격이 비싸 소비자들이 구매를 머뭇거리게 하고, 공정무역은 자유 무역론자들로 부터는 시장을 교란 시키며 가난한 생산자들을 좀 덜 가난하게 만들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러 비판적인 목소리들에도 불구하고 윤리적 소비는 새로운 대중적인 소비문화로 부상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 보다는 좀 더 낳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현명하고 윤리적인 소비자들이 있다.
윤리적 소비는 단순히 가이드 책자를 발간하거나 쇼핑몰을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자와 쇼핑몰은 윤리적 소비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일 뿐이다. 이제는 시민들의 의식이 윤리적 소비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직접 구매에 이르는 과정에 좀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윤리적 소비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꼭 해야할일들중 하나다. 경제를 이야기 하며 The Winners takes All...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자본주의 만을 이야기 하지 말며 우리 주변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눔의 경제’도 함께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운동이 단지 몇몇 지식인들이나 운동가들의 전유물이 아닌 평범한 소비자들도 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부분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윤리적 소비자들이 조금 씩 늘어나게 되면 우리 사는 세상도 조금씩 밝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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