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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한국

우리 앞에 놓인 역사의 과제를 생각하며

전병길(토론문).hwp


권희영 교수의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분열과 통합의 역사에 대한 회고와 전망 : 지구사적 관점으로’를 잘 읽었다. 글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적어본다.



우리에게 국민국가는 계속 민족국가(?)


국민국가는 공통의 사회·경제·정치생활을 영위하고 공통언어·문화·전통을 지닌 국민공동체를 기초로 하여 성립된 국가를 말한다.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한 근대에는 국민국가는 곧 민족국가(民族國家)라는 의미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와는 달리 현대에는 국민들의 민족 구성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남한)만 봐도 그렇다. 2010년 6월 기준으로 국내 결혼이민자는 18만2671명, 이들의 자녀는 12만1935명이다. 체류 외국인 역시 113만9283명으로 5년간 2배가 늘었다.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국민들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도 변화했다.


2010년 여성가족부, 국가브랜드위원회,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한 한국인의 ‘다문화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다문화사회라는 데 74.7%가 동의했다. 한국인 10명 가운데 7명은 한국을 다문화사회라고 보고 있는 셈이다.


아직 한국 사회는 다문화에 대해 긍정적인 편이다. 응답자의 79.5%가 다문화 사회에 대해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부정적 평가는 긍정적 평가의 1/4에도 못미치는 17.2%를 기록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높아진다’가 57%로 가장 높았다. 이어 ‘노동인구 유입으로 국가경쟁력이 높아짐’(16.6%), ‘관련국과의 교류가 증진돼 대외 이미지 향상’(11.7%),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를 억제하는 효과’(10.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문화가족 증가가 사회 통합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보였다. 다문화가족 증가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는 ‘문화적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유발된다’(46.9%)가 절반 가까이 됐다. ‘단일민족 국가 전통이 약화되므로’(22%), ‘한국 고유의 문화가 변질되므로’(19.4%) 등 한국 고유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데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세계화의 영향 속에 다문화사회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높은 것이 지금의 모습이지만 다문화 현상이 2-3세대 지속되고 이들의 자녀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진학, 취업, 결혼의 과정에서 현실적인 장벽에 본격적으로 부딪히는 시점이 되면 분명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서유럽을 보면 문제가 어떻게 전개 될지 모습이 그려진다.


이제는 우리의 의식속에 막연히 있는 국민국가=민족국가에 대한 생각을 재정리해 볼 시점이 되었다.



다문화시대의 통일담론


한국사회는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는 아직 단일민족 문화의 정서를 토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통일 논의는 1989년 노태우 정부때 발표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기초로 변형 발전 되어 왔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지난 20 여년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민자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면서 다문화 가정이 급증하고 100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이들과 함께 할 수 통일에 대한 논의나 프로그램이 없다. 특히, 다문화 가정 자녀의 경우 자라나면서 통일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가 없을 경우 이들은 통일 무관심층, 혹은 통일 반대층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겐 백두산 천지도 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한국전쟁의 비극도 자신들과 크게 관련이 없다. 그것은 단순히 단일민족인 한민족의 관심 사항이지 다문화 가정 출신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어쩌면 다문화 가정의 고민은 한국과 엄마(혹은 아빠)의 나라가 축구 경기를 할 경우 어디를 응원해야 할까가 더 관심 사항일지 모른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학계에서 부터 전통적인 `단일민족' 국가를 상정한 기존의 통일론에서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통일론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는 이러한 다문화 사회의 대안으로 ‘연성복합통일론’을 제시했다. 연성복합 통일이론은 통일의 최종적 목표로 하나의 단일민족 국가의 완성에 둔 기존 방안에서 탈피하여 전통적 민족주의보다 한반도내의 이질성과 다원성을 적극 포용하는 '열린 네트워크형' 통일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열린 네트워크형' 통일이란 한민족공동체통일 방안에서처럼 점진적이고 단계적 통일을 추구하되 무력이나 강제력보다는 문화적이고 지적이며 이질적인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연성권력 즉,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중시함으로써 정부 대 정부 중심의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통일보다 비정부기구, 시민단체와 개인들의 유연하고도 부드러운 연결을 바탕으로 한 통합을 지향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이수정 교수도 ‘다문화주의와 통일담론’이란 글을 통해 탈냉전과 세계화, 다양한 이주민의 존재로 한국 국민을 더 이상 민족적 범주로만 묶기 어렵다고 밝히고 개인·집단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다문화주의를 새로운 통일론의 기반으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또 차이를 무시하고 타자를 수용하지 않는 태도는 진정한 통합에 장애가 되며 통일의 주체는 더 이상 선험적으로 주어진 기준에 근거한 동질적 주체가 아니며, 다중화된 주체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역사로부터 얻는 인사이트


한국사회의 다문화는 단지 과거에는 없었고 오늘의 문제로만 치부되기 쉽다. 하지만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 귀화인들이 등장했다. 특히 11세기 고려 초에는 약 100년 동안 중국인들과 유민, 포로 신분으로 온 발해인과 여진인, 거란인, 아랍인을 포함해 귀화인은 약 17만명에 달했다. 당시 고려 인구가 230만 정도였으니 8%에 달하는 적지 않은 숫자다.


고려에 귀화한 이들은 고려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고려를 만들어 나갔다. 귀화인들로부터 이전 없던 새로운 문물이 들어와 사회는 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융합된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귀화인들은 외국사정에 밝아 외교에 관련된 직업을 갖거나 외국어 교육 업무에 종사했다. 귀화한 이들중에는 뛰어난 의관제작자와 토목기술자들이 있었고 의약과 악무 발전에 기여한 귀화인들도 다수 있었다. 특히 고려 건국 초기에는 문신들이 많이 부족해 중국계 지식인들을 적극 유치했다. 그 대표적 일례가 중국 후주의 쌍기(雙冀)다. 그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지방과 중앙의 사법관청에서 봉직하면서 후주의 개혁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광종은 그의 건의에 따라 사상 처음 과거제도를 도입했다. 과거제도는 이후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의 고시제도의 모태와도 같다.


고려시대 귀화가 어느 시대보다 성행한 것은 고려가 적극적인 귀화인 수용책을 편 결과다. 고려는 ‘내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했는데, 궁극적 목적은 인재 등 인력 확보에 있었다. 고려는 귀화인들을 안착시키기 위한 일련의 사회적 시책도 강구했다. 우선 일괄적으로 주택과 전답, 미곡과 의복, 기물과 가축 등을 나누어주었다. 고려의 적극적인 개방과 귀화인 수용인 고려의 이름을 대외적으로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오늘날의 한국을 칭하는 영문 Korea도 바로 고려에서 나왔다. 고려의 힘 즉, 코리아(Korea)의 힘은 나와 다른 이질적인 것을 포용하고 이를 융합한 고려의 국력과 문화적 자신감에서 나왔다. 고려는 한민족의 코리아(One Korea) 보다는 다문화 코리아(Mosaic Korea)를 지향했다.



글을 맺으며...


제국간의 충돌과 협상의 결과로 20세기에는 수많은 국민국가가 태어났다. 신생국가인 대한민국도 그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태어나고 냉전의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서 성장해 왔다. 그리고 세계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이제는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변수에 직면해 있다. 결국 준비된 자들만이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 할 수 있고 변화를 주도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뮤지컬 ‘명성황후’의 마지막 장면 ‘백성이여 일어나라’를 들으며 감동의 전율을 느낀다.



한발 나아가면 빛나는 자주와 독립

한발 물러서면 예속과 핍박

용기와 지혜로 힘 모아

망국의 수치 목숨 걸고 맞서야 하리

동녘 붉은 해 동녘 붉은 해 스스로 지켜야 하리

조선이여 영원하라 흥왕하여라



뮤지컬 내용은 감동 그 자체이지만 대외 정세를 읽지 못하고 안일한 대응을 했던 우리의 모습에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풍전등화(風前燈火) 처럼 우리는 그랬다.

우리는 지금 역사 앞에 또 다른 과제들을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본이 되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점점 다문화 되어 가고 있다. 남한은 성공한 개도국의 모델이고 북한은 사회주의 3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파탄한 국가의 모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한발 한발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가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 ‘동녘의 붉은 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라는 죽은 뮤지컬 속 명성황후의 고백은 뮤지컬 속에서만 남고 더 이상 반복 되는 일이 없도록 해

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역사적인 과제다.